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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진도문화원장 玉川(옥천) 朴廷石(박정석)氏의 文化造詣
前 진도문화원장 玉川(옥천) 朴廷石(박정석)氏의 文化造詣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19.11.27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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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진도문화원장 玉川 朴廷石氏의 文化造詣

 

진도문화원장을 역임한 분들은 모두 고매한 인품을 겸비한 분들로 진도문화 발전을 위하여 헌신하셨기에 진도문화원이 도약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러 일반회원과 평생회원이 일천 명에 육박하는 방대한 조직으로 성장 하였다.

전국문화원 중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타에 추종을 불허 할 정도로 진도 문화원이 급성장한 것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近者 8년간 진도 문화원의 위상을 획기적으로 새로운 磐石에 올려놓은 前任박정석 원장의 業績을 새롭게 照明하고자한다.

1. 그 나라의 言語는 文化의 根本이다

역사를 보면 정복자들은 점령지 국민의 언어(말)부터 말살하려고 한다. 이는 점령지를 영구한 완전한 식민지로 統治하기 위함이다. 그 나라의 言語를 정복함으로써 백성의 情神을 정복할 수 있고 情神을 征服한 후 自國의 문화를 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35년간 일제 식민 통치를 경험한 세대는 이 사실을 너무나 통감할 것이다.

국가 표준어는 국가 전체의 言語이고 “지방사투리”는 지방 토속 언어문화의 근본이다. “사투리”는 진도의 우리 선조들이 수백 년간 통용하던 언어로서 결코 가벼이 할 수 없는 소중한 문화유산이 되어야 한다.

“사투리”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수 없이 진화해 왔다. 또한 이를 사전으로 편집한다는 것은 참으로 難解한 작업으로 일개 지방 문화원에서 감히 이 방대한 사전 작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으나 박정석 전 문화원장의 신념에 찬 의욕과 본 문화원 이사 梅軒 朴英寬(文學博士)의 적극적인 협조와 그 외 집필진들의 각고의 노력으로 長久한 편집기간을 마치고 드디어 방대한 량의 진도“사투리”사전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는 언어문화의 가장 소중한 遺産으로 우리후손들에게 전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或者는 우리 後世들이 전통문화 예술 가치를 等閑視 한다는 탄식을 하지만 “溫故知新”의 철학은 결코 변하지 않는 다고 敢히 말하고 싶다.

*태양에 바래지면 歷史가 되고 月光에 물들면 神話가 된다*는 名言과 같이 이 세상에 태양이 있는 한 우리의 고유한 전통문화는 어느 시대인가? 다시 소생하여 인류의 최대 가치관으로 浮上하게 되리라고 나는 確信하는 바이다.

우리의 문화가 사라지면 우리의 삶도 어두 워 질 수밖에 없다. 우리문화의 소중함을 숙고하면서 前任 玉川 박정석 문화원장의 진도“사투리”사전 발간에 대한 그 勞苦를 退任 후 慰勞하는 바이다. 이외에도 소치. 노수신. 등등 많은 문인 묵객들의 古書를 다수 번역하여 사료로 남겨 후세의 한글세대 들이 볼 수 있도록 한 것은 문화원장 으로서 보람과 큰 足跡을 남겼다고 평가할 수 있다

2.三絶의 으뜸인 漢詩 白日場 誘致

동양화 畵題 역시 漢詩의 絶句들이다. 서예작품도 거의漢詩를 작품의 素材로 삼는다. 고로 詩則書 畵則詩 라고 한다. 이는 漢詩 畵題 없는 동양화 있을 수 없고 글 없는 詩있을 수 없다. 한시는 남의 나라 학문이 아니고 오래 전 우리 조상들의 정신과 혼이 담겨진 역사요 문화요 高次元의 전래되어온 학문이다.

四書三經에 있는“詩經”을 곧 “思無邪”라고 한다. 孔子도 아들에게 詩를 알지 못하면 남 앞에서 할 말이 없다고 했다. 또한 세한지절이 되어야 송백의 푸르름을 알게 된다고 해 그 뒤로 선비들은 소나무를 절개의 상징으로 삼았다.

지금은 관리에 登用되려면 國家考試나 선거를 통하여 관료가 되지만 조선말까지 科擧試驗을 통하여 국가가 필요로 하는 능력 있는 사람을 뽑기 위한 것이 과거제도였다. 과거제도가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것은 958년(고려광종9년)이다. 고로 천년의 科擧制度 역사가 인재를 등용했다. 漢詩는 주로 문과 시험의 試題로 등장했다. 고로 한시를 공부하지 않으면 과거시험 문과에 응시 할 敢히 엄두도내지 못했다고 한다.

圃隱 정몽주가 말하기를 名詩 한 수를 짓는데 주야3일을 몰두하다보니 얼굴이 수척하고 귀밑머리가 희어졌다고 하여“詩瘦”라 했다. 瓊稿의 詩 한 수가 바로 “詩瘦”의 産物인 것이다

鄭夢周 정몽주(1337~1392) 고려 말기 文臣․學者, 字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 시호는 문충(文忠), 본관은 영일(迎日)이며 경북 영천군 임고면 우항리 출생이다. 1360년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의 검열을 시작으로 수 문하시중에 이르렀으며, 선죽교에서 피살당하였다.

圃隱으로 하여금 경북 영천은 忠節의 文鄕이라 부른다. 우리나라 전역의 漢詩 同好人들 중 아직까지는 詩의 格이 가장 높은 지역을 영남이라고 한다. 영남에서도 경북 영천을 꼽는다. 이는 圃隱의 영향을 받아 역대 영천을 다녀간 현감. 태수. 부사. 부윤. 등등이 의무적으로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는 반드시 詩 한수를 남기는 것이 前例가 되어 그렇게 모아진 영천에 관한 漢詩가 약140首에 이른다.

진도에 남아있는 한시에 관한 문헌을 보면 진도의 詩人이 전북남원 漢詩白日場에서 壯元의 영광을 차지한 기록이 있다고 전한다. 당시의 교통상황으로 보아 남원을 가려면 여러 날 가고 와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도 남원 한시 백일장에 참석했다는 것은 그만큼 漢詩에 대한 열정이 컸음을 알 수 있다

진도에서 반세기 전에 벽파 전첩비 수비식에서 전국한시백일장을 개최 한 後로 漢詩文化가 有名無實하게 斷切되었다. 60여년의 단절된 한시 문화를 복원하기 위하여 전남대학교 평생교육원 진도 캠퍼스에 2009년 한시학과를 개설하여 한시강의를 시작한지 어언 10년 세월이 흘렀다. 한시 수강생들로 의기투합하여 조직한 “沃州詩社”회원들이 전국 한시백일장과 中央 詩壇에서 多數 입상하는 영광을 받았으며 개중에는 차상. 차하. 참방. 등 우수한 성적으로 수상했다.

전국의 詩人 墨客들의 잔치인 “전국진도한시백일장”을 2015년 전남 최초로 유치하여 진도문화원과 사)한국한시협회 진도지회 공동주관으로 금년 6회째 진행 중이다.

이로 인하여 말로만 외치던 三絶의 藝鄕 진도가 詩 書 畵가 하나 되는 三絶의 藝鄕이 되었다고 敢히 말할 수 있다. 前任 玉川 박정석 문화원장의 후보공약사업이기도 한 全國漢詩白日場 진도 유치는 전국의 儒生과 대 學者들이 진도에 직접 와서 진도의 아름다운 風光을 한시로 읊었고 전국에 진도를 보배의 文鄕이라 그들은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다.

한시의 荒蕪地에서 한시가 復活되고 전국한시 백일장을 유치한 것은 前任 문화원장의 큰 業績으로 評價함에 不足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 公人을 評價한다는 것은 외람된 것이지만 前任 박정석 진도문화원장은 每事에 모가 없고 圓滿하여 他人에게 和靜의 對人관계로 多層多人으로부터 비판 보다는 好評이 많은 것이 衆論이다.

끝으로 新任 박주언 진도문화원장님은 自他가 公認하는 진도의 史學者로 진도문화사업 발전에 盡力하여 錦上添花의 진도문화를 磐石에 올리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글. 사)한국한시협회 중앙회 자문 위원 겸 한시협회 진도지회장 高山 金珉在.

*과거시험은 아무나 응시 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經國大典”을 보면 이미 관직에 있거나 범법자는 과거시험 응시를 금지하고 있다. 관직에 있는 경우 문과는 정3품 당하관인 통훈대부이하. 무과는 어모장군 이하만 응시할 수 있다. 생원진사시는 정5품 통덕랑 이하면 응시할 수 있었다.

이중 文科는 과거시험의 꽃이라 할 정도로 가장위상이 높고 합격자에게 혜택이 많았다. 科擧及第를 통해 家門을 보전하고 名譽와 地位를 유지하기 위해 오랜 세월 과거시험에 일생을 걸었다고 한다.

永川을 다녀간 前 官吏들이 남긴 詩 한 수를 옮긴다.

曺克承 조극승(1803~1877) 자는 경휴(景休), 호는 귀애(龜厓),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1831년 문과에 급제하여 공조참의에 이르렀다.

霽後公山碧似銅 제후공산벽사동

淡然秋色入軒中 담연추색입헌중

一潭光影看來好 일담광영간래호

滿岸塵埃滌去空 만안진애척거공

浩氣遠含亭外壁 호기원함정외벽

詩情時發竹聞風 시정시발죽문풍

眼前物色都收拾 안전물색도수십

誰識乾坤造化工 수식건곤조화공

비 개인 뒤 팔공산은 푸른 거울과 같고

깨끗한 가을 빛 집 가운데 들어오네

온 연못에 비친 그림자 보기만 하여도 좋으니

언덕 가득한 티끌 허공에 씻어 버리세

호연한 기운 아득히 머금은 정자 밖 절벽

시정이 때때로 일어나고 대숲 바람소리 들리네

눈앞의 좋은 경치 모두 거두어 들였는데

건곤의 조화가 훌륭함을 누가 알겠는가?

영천 이곳을 다녀간 관리들은 모두 과거시험에 급제한 분들로 한시의 格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높고 作法 또한 精巧하다고 評한다. 이런 훌륭한 文人 墨客들의 후손들이 先人들의 文脈을 이어 받아 전국의 漢詩白日場을 거의 席捲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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