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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마로해역’에도 봄은 오는가?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마로해역’에도 봄은 오는가?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4.07.26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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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마로해역’에도 봄은 오는가?

- 끝나지 않은 김(海苔) 전쟁(戰爭) -

 

상생·발전의 해법?

지난 3월 21일 ‘진도·해남 마로해역 상생·발전을 위한 확약식’에서 진도군수와 해남군수는 ‘해상 경계 권한쟁의 심판 재청구 금지’ 확약서를 작성하였다.

이에 따라 양군 수협간 합의서에는 ‘마로해역 양식업권 1,370ha 가운데 약20% 정도인 260ha를 올해 진도군에 반환하고, 나머지 면적 1,110ha는 2030년까지 시용 후 2030년 재협의하기로 하였다’는 내용이며, 또한 해역 미 반환면적에 대해 상생 협력금 2억원(줄당 3만원)을 진도군에 지급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협약의 내용으로 한겨레신문은 지난 7월11일 ‘전남 마로해역 40년 김 양식 갈등 풀렸다’고 보도하였고, 한국경제신문은 6월18일 ‘진도 vs 해남 '김 양식장 갈등'…42년만에 풀었다’고 했다. 중앙지의 관점에서는 갈등이 해결되었다고 평가했다. 과연 진도민들은 갈등이 풀렸을까?

 

전년 대비 98% 증가…역대 최대 위판가 기록

최근 세계적으로 ‘K-푸드’열풍에 힘입어 김밥의 인기에 편승해 김의 수출이 급등하면서, 2024년 김 산업 진흥구역인 진도군은 물김 위판액 2,284억원을 기록했다고 홍보하였다.

전국 최대의 생산량을 보유한 진도는 김양식장 16,128ha, 235,658책 시설을 보유하고 있고, 생산량은 지난해 9만 5,000톤보다 10% 증가한 10만 4,378톤을 생산하였고 위판액 또한 1,154억원이었던 지난해 보다 98% 증가한 2,284억원으로 역대 최대 위판가를 경신했다고 진도수협은 발표하였다.

 

전쟁은 정치적 의도를 따르는 것

나폴레옹 시대의 탁월한 전략가이며 서양 최초의 군사 사상가이자 철학가라 불리우는 프로이센의 클라우제비츠(Clausewitz Karl von. 1780~1831)는 그의 저서 <전쟁론>에서 “전쟁은 우리의 적대자로 하여금 우리의 뜻을 완벽하게 이행하도록 강요하는 폭력 행위다”라고 했다. 또한 그는“전쟁은 단순히 정치적 행위일 뿐만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정치적 수단이고, 정치적 의도를 따르는 것”임을 강조하였다.

진도의 영토 즉 영해(領海)인 마로해역(해남 어민들은 ‘만호해역’이라 칭함)을 그동안 사실상 점유하고 있던 해남군은 진도와 해남의 경계는 진도와 해남의 중간이 영토의 경계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마로해역은 해남의 영해 영역이니 반환을 할 수 없다면서 법원에 제소하였고, 결국 대법원 판결에 의해 기존의 마로해역 경계선이 진도의 영역임을 확인 받았다.

 

영역은 배타적 지배권이다

헌법학(김철수著, 박영사)에서 국가의 영역(領域)이라 함은 ‘국가가 국제법상의 제한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배타적 지배를 할 수 있는 장소적 한계인 공간’으로 정의한다. 이 영역에 대한 국가권력을 영역권 또는 영토고권(領土高權 국가가 자국 영토에 대하여 갖는 최고 권력)이라 하는데, 이것은 첫째 영역 자체를 자유로이 사용·수익·처분할 수 있는 권리와, 둘째 영역내에서 자유로이 통치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주지하듯이 여기에는 영토(領土), 영해(領海), 영공(領空)이 있다.

 

전쟁은 자본의 이윤추구를 보증하기 위한 각축

한국전쟁에 대한 <전쟁과 사회>의 저자 김동춘은 그의 저서에서 “현대사회에서 전쟁이나 군사주의(militarism)는 산업주의(Industrism) 혹은 자본주의(Capitalism)와 무관한 것처럼 이해되지만 자본주의 세계 질서 속에서 국가 간의 전쟁이나 내전은 일국 내에서의 정치적 갈등이나 초국가적 차원에서 자본의 이윤 추구를 보증하기 위한 국가 간의 각축에서 발생하였다”고 하였다.

결국 국가 간의 갈등과 적대관계는 자본주의적인 경제 질서의 산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진도와 해남간의 해양 영역의 갈등은 그 안에 내포된 엄청난 자본과 수산양식업 막대한 경영 수익의 갈등이 그 근본 원인이다.

 

지도자의 정치력이란

손자병법의 오사(五事)와 칠계(七計)를 보면, “그러므로 다섯가지 원칙을 근거로 하고 일곱가지 계산법으로 비교하여 적과 나의 상황에 대하여 정확히 분석해야 한다. 그 다섯가지 원칙은 첫째 지도자의 정치력, 둘째 하늘의 기후조건, 셋째 땅의 지형조건, 넷째 장군의 능력, 다섯째 제도라 할 수 있다.(故經之以五事 校之以七計 而索其情, 一曰道 二曰天 三曰地 四曰將 五曰法)” 고 하였다.

여기에서 “지도자의 정치력이란 민중들로 하여금 지도자와 같은 의지를 갖게 하여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마음으로 전쟁에서 어떤 위험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道者 令民與上同意也 故可與之死 可與之生 而不畏危也)”라 하였다.

 

지도자의 리더쉽

손자가 말하는 도(道)는 ‘정신적 초탈이나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 아니다. ‘전쟁을 하기에 앞서서 지도자가 전쟁의 명분과 대의를 제시하고 국민들은 그 비전에 공감대를 느끼는 정치적 상황과 그 상황을 만들어 가는 지도자의 리더쉽’을 말한다.

진도의 지도자는 군민들과 합의된 정치적 상황, 불굴의 의지, 결연한 각오, 싸우면 이긴다는 자신감 등 무형의 정신적 요소를 갖추고 불멸신화 울돌목의 수호신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을 지휘하듯 ‘나를 따르라!’ 면서 진군가를 부르며 과연 마로해역으로 진격하였을까?

 

마로해역 20%만 반환 받아

군민들은 내 땅, 우리 땅 찾아달라고 아우성이었지만 정작 진도군의 결론은 해남군과 ‘해상 경계 권한쟁의 심판 재청구 금지’ 확약서 작성으로 20% 찾은 영토를 전부 찾은 것 마냥 영토를 찾았다고 미리부터 홍보하였다.

현재 마로해역은 진도군 영해(領海)임을 국가가 인정하였음에도 실질적이고 실효적 지배는 해남군이 갖고 있다. 2030년에 재협의하면 영해를 반환 받을 수 있을까? 말 그대로 새로이 협상을 해야 한다. 몇%, 일부 또는 전부를 반환받겠다는 확약이나 내용은 아예 아무것도 없다.

주인의 것을 경작자가 주인행세 하면서 마지못해 주인에게 1/5을 반환 하면서 마치 은전을 베풀 듯 하고 있다. 누가 주인이고 누가 머슴인지 알 수가 없다. 갑과 을이 뒤바뀌고 주종관계가 전도되었다.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마로해역’에도 봄은?

지금처럼 김(해태)이 ‘K-푸드’로 전세계적으로 인기있는 식품으로 부상하여, 해외 수요의 폭발적 증가로 수출이 급증하는 상황이고, 이에 따라 수협 물김 위판가격이 해마다 새로운 가격 고점을 찍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 양식 어가의 수익과 소득은 급증하는데 해남군에서는 앞으로 금년을 포함하여 7년만 더 점유하고 반환한다? 점유 인정 후 반환 받겠다?

한해 몇십억 이익이 되는 사업, 그동안(40여년) 경영한 수 십년 간의 엄청난 수익, 그리고 미래에 기대되는 천문학적 수익을 해남 어란 수산 양식업자들이 김 양식어업을 포기하고 양식장을 진도에 되돌려 준다? 되돌려 줄 것이다? 그들은 마로 해상에서, 진도 군청앞에서 폭력적 시위까지 하였었다.

 

현대는 경제전쟁 시대

현대사회는 영토전쟁이 아닌 경제전쟁의 시대이다. 여기에도 강자의 논리, 힘의 논리,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쩐(錢)의 전쟁시대이다. 국가가 인정한 영토도 수복하지 못하고, 경제전쟁에서도 처참하게 대패한 상황이다.

마로해역의 해묵은 갈등을 전남도에서는 ‘진도 수협이 2030년 면허지 90%의 조건없는 반환’을 요구하였으나 묵살되었다. 도지사,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과 지역의 수장은 성급히 분쟁을 덮는데 급급한 모양새다. 진도군 의회도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내 임기가 끝나고 나면 다음번에 다음 사람들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폭탄 돌리기, 책임회피다.

 

불공정, 불평등한 대우를 받아들이는 것이 상생과 평화

이번의 합의를 보면서 전문가들이 엘리트를 표현할 때, 가장 즐겨쓰는 말처럼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들’이거나, 혹은 ‘지나치게 낙관주의자들 이거나 지나치게 순진한 사고의 소유자들’이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양 군수들의 합의한 ‘상생과 평화’는 과연 진도민을 대표한 대표자가 진도민의 의견을 수합하고 다수의 전문가나 어민대표, 주민들의 의견수렴과 수많은 숙의와 토의과정을 거친 결과였나 의문이다.

영국의 자유주의 철학자이며 정치 이론가인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 1909~1997)은 “완벽하게 정의롭고, 평등하고, 건강하고, 조화로운 사회라는 이상은 위험한 환상이며, 자유 민주주의 국가는 그런 이상에 한번도 도달한 적이 없다.”고 했다.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마로해역)에도 봄은 오는가?

누구를 위하여 종(합의)은 울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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