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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 허련의 ‘노송도’ 첫 공개
소치 허련의 ‘노송도’ 첫 공개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19.11.27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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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사 무상망 세한도 보는 듯…

추사가 가장 높이 평가했던 제자…열 폭 종이에 눈 덮인 소나무 담아

▲ 허련 ‘노송도’

세간에 흔히 ‘허목단’이라 불렸지만 소치는 노송도와 노매도를 대작으로 남겨 그 역량의 한계를 그치지 않았다. 운림산방을 지키고 있는 나무도 노송이다. 입선에 든 노송의 솔바람을 안내받아야 연못 한 가운데 좌정한 배롱나무 향을 만나게 된다. 어디서 거문고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옥순봉이 아취를 슬쩍 드러내놓은 봉화산은 풍만한 젖봉오리를 연상한다.

 

추사 김정희가 그 재주와 심성을 가장 아꼈던 제자 소치 허련(1808∼1893)이 만년에 그린 대형 소나무 그림이 처음 공개되어 화단의 큰 이목을 끌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1월 12일 개막해 내년 3월 15일까지 진행하는 ‘손세기·손창근 기증 명품 서화전3- 안복(眼福)을 나누다’에서 허련의 ‘노송도’를 비롯해 회화 16점을 선보인다고 밝혔다.

허련은 추사가 변함없이 높이 평가했던 제자로, 추사가 1856년 세상을 떠나자 미련없이 고향인 전남 진도에 운림산방(첨찰산 사천리)을 지어 작품 활동에 몰두했다. 노송도는 눈 덮인 산속에 홀로 우뚝 서 있는 소나무의 모습을 열 폭 종이에 그린 대형 작품이다. 둥치 껍질과 구불거리는 가지가 역동적이면서 고고하다. 19세기 중반부터 매화를 연이은 화폭에 그리는 ‘연폭매화병풍’이 유행했는데, 허련이 이런 형식을 빌려 소나무를 그렸다.

19세기 후반 한양에 오원 장승업(1843∼97)이 있었다면, 남도에는 소치 허련이 있었다. 그러나 소치는 그동안 추사의 큰 그늘에 가리워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온당히 평가받지 못한 현실이다.

남종화의 거장으로 꼽히는 소치는 초의선사 추천으로 추사 김정희를 만나면서 제대로 된 서화 수업을 받기 시작한다. 그의 나이 서른한 살 때였다. 탈속의 정신세계를 작품에 녹여낸 그는 시골 출신임에도 붓 하나로 중앙에 진출해 당대 최고 지식인들과 교류하고 임금을 알현할 만큼 뛰어난 기량을 자랑했다.

스승인 추사가 타계한 1856년, 소치는 화업에 몰두하기 위해 전남 진도에 낙향해 운림산방을 세웠다. 4대에 걸쳐 우리나라의 남종문인화의 일가를 이룬 소치 허유의 화방이었던 곳으로 아침저녁이면 연못과 호수에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의 숲을 이룬듯 하다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운림산방은 19세기 남종문인화의 거장 소치 허련의 스승이었던 추사 김정희가 세상을 뜨자 말년에 이곳에 칩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후 전통 남도의 화맥을 이어온 남종화의 산실이다. 아들인 미산 허형, 손자인 남농 허건이 대를 이은 곳으로, 의재 허백련도 이곳에서 그림을 익혔다.

바로 이러한 운림산방의 화맥은 호남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넘어 조선시대 한국회화사의 큰 전통을 형성하였으며 ‘예향(藝鄕)’ 호남의 격조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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