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보름달처럼 환한 동행
- 추석만 같아라 -
올해 여름이 기상 관측 역사상 가장 높은 평균기온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1908년부터 기상 관측을 시작한 서울은 올여름 더위 기록을 새롭게 썼다. 올해 서울의 여름 평균기온은 26.8도로 117년 관측 역사상 가장 높았다. 기존 1위와 2위였던 2018년(26.6도)과 1994년(26.3도) 더위 기록을 줄줄이 갈아치웠다.
전 지구의 온난화 현상이 폭염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있다. 기상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이런 극한 폭염이 앞으로 더욱 빈번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하면 미래에는 폭염이나 열대야는 더 강하게, 더 많이 발생할 것”이라고도 예측했다. 걱정이다. 입추와 말복, 처서가 지났지만, 여전히 무더위가 누그러들지 않다가 9월이 되니 수그러들기 시작한다. ‘입추는 배신해도 처서는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이 속담도 무색하다. 무더위를 보내고 선선한 바람을 마중하면 추석(秋夕) 명절이 찾아온다.
더위를 이기려 책을 넘기다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 1561∼1642), 면앙정(俛仰亭) 송순(宋純, 1493∼1582)과 함께 조선 시조 시가의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히는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선생이 추석에 쓴 시를 읽었다. 윤선도 선생은 조선조 중기 15대 광해군 3년 1611년 신해년에 스물네 살이었다. 이때 생모인 순흥 안씨의 3년 상(喪)을 치르면서 추석을 맞는다. 얼마 전까지 무덥던 날씨가 어느새 가을로 바뀌자 맑은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가운데 하늘에는 두둥실 둥근 달이 떠올랐다. 시심이 동한 선생은 서늘한 바람을 배 위에서 맞으며 달밤의 흥취를 그린 동파(東坡) 소식(蘇軾, 1037∼1101)의 「적벽부(赤壁賦)」가 생각이 나서,
‘맑은 바람 밝은 달은 돈 한 푼 안 들여도 나의 것「(청풍명월불용일전매)淸風明月不用一錢買」’이라는 제목으로 청량한 시를 지었다.
맑은 바람 밝은 달은 유독 무슨 일로/淸風明月獨何事(청풍명월독하사)
백수와 상관없이 내 앞에 오셨는가/不煩白水來吾前(불번백수래오전)
흔연히 기쁘면서도 괴이하게 여겨져서/欣然自幸還自怪(흔연자행환자괴)
물리를 사색하며 선천을 궁구하였다오/坐思物理窮先天(좌사물리궁선천)
추석은 한가위 또는 중추절(仲秋節)이라고도 한다. 중추절은 가을을 초추(初秋), 중추(仲秋), 종추(終秋) 3달로 나누어 8월이 그 가운데 들어서 붙인 이름이다. 한가위의 유래는 신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가위의 ‘한’은 ‘크다’는 뜻이고 ‘가위’는 음력 팔월 보름날이다. 신라의 가배(嘉俳)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왕이 신라를 6부로 나뉘고 왕녀(王女) 2인이 각부를 통솔하여 무리를 만들고 7월 16일부터 길쌈을 하여 8월 15일 그 성과를 살폈다. 그 결과에 따라, 진 편이 술과 음식을 내놓아 이긴 편을 축하하며 가무(歌舞)와 놀이를 즐겼다. 이를 ‘가배(嘉俳)’라 하였다. 오곡백과가 풍성하여 일 년 가운데 가장 넉넉한 때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추석은 고대로부터 있던 ‘달에 대한 신앙’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중추의 밤, 하늘 천장에 떠 있는 만월의 환한 빛이 방안에 가득 드리운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설’, ‘단오’, ‘정월 대보름’과 함께 우리나라의 4대 명절에 속한다.
한국천문연구원(https://astro.kasi.re.kr/life/pageView/6)은 9월 2일 ‘2024년 추석 보름달 관련 천문정보’를 밝혔는데, 올해 추석 보름달은 서울을 기준으로 9월 17일(음 8.15) 18시 17분(진도 18시 17분)에 뜨고, 지는 시각은 04시 46분(진도 04시 53분)이다. 17일 한가위 보름달을 가장 빨리 만날 수 있는 곳은 울산과 부산으로 18시 6분에 뜬다. 보름달이 가장 늦게 뜨는 곳은 인천으로 18시 18분이다. 한가위 대보름달이 가장 높이 뜨는 시각은 추석 당일 자정을 넘어 18일 0시 4분이다.
한가위 날 아침 일찍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차례를 지내는 일이다. 차례상은 설과 달리 흰 떡국 대신 햅쌀로 밥을 짓고 술을 빚고, 햇곡식으로 송편을 만들어 차례를 지낸다.
예부터 가을이 풍요로운 것은 월신(月神)이 복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여겼기에 가장 밝고, 크고, 둥근 8월의 보름달을 향해 감사의제사를 지내게 되었고, 또한 자고로 어두운 밤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기에 밝게 빛나는 만월(滿月)은 마음의 평안을 준다고 믿었다. 이 때문에 달빛 아래서 축제를 벌이게 되었고 일 년 중 가장 큰 만월을 이루는 8월 15일인 추석을 큰 명절로 여겼다는 것이다.
추석이 되면 기후가 쌀쌀해지므로 여름옷에서 가을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래서 한가위에 입는 새 옷을 추석빔이라고 한다. 옛날 농사짓는 집에서는 머슴들까지도 한가위에 새 옷을 한 벌씩 해주었다고 한다.
우리 고장은 1년 농사를 지으면 3년을 먹고도 남아돌아 인심과 산물이 풍성해 웃음소리가 넘쳐났다. 하지만 여유와 넘침은 예전만 못하다. 계속된 어려움과 힘든 환경 탓이다. 천 년 이상 내려온 추석은 가족과 이웃끼리 정 나눔으로 가득했으면 한다. 예도(藝都:문화예술 수도) 진도를 비롯한 모든 곳에서 한가위 보름달처럼 환한 동행으로 ‘추석만 같아라’라는 소리가 넘쳐나는 따뜻한 명절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