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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벽파정(珍島碧波亭) _ 고조기(高兆基)가 고향 탐라로 가던 중 진도에서...
진도벽파정(珍島碧波亭) _ 고조기(高兆基)가 고향 탐라로 가던 중 진도에서...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19.12.13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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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進林中路(행진림중로) 숲속의 길을 밟고 와서

時回浦口船(시회포구선) 때로 포구의 배를 타고 돌아가네.

水環千理地(수환천리지) 물은 천리 땅을 두르고

山礙一涯天(산애일애천) 산이 물가의 하늘을 가리우네.

白日孤槎客(백일고사객) 한낮에 외로운 뗏목의 나그네는

靑雲上界仙(청운상계선) 청운에 올랐던 천상 신선이네.

歸來多感物(귀래다물감) 돌아오니 경치에 느낌이 많아

醉墨灑江煙(취흥쇄강연) 취한 시로 강 안개를 씻네. (東文選 卷9)

*고려 전기의 문신. 1149년(의종3)에 정2품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로서 판이부사(判吏部事)를 겸임하게 되면서

재상직에 올라. 벼슬살이 중 제주를 다녀온 직후 진도에서 고향의 감회를 적었다.

# 산장의 밤비(山莊雨夜) _ 고조기(高兆基)가 고향 탐라에서...

昨夜松堂雨(작야송당우) 어젯밤 송당(松堂)에 비 내리니

溪聲一枕西(계성일침서) 내에 흐르는 물소리 베개 밑까지 들려오네.

平明看庭樹(평명간정수) 먼동 트자 뜰 앞의 나무를 보니

宿鳥未離栖(숙조미리서) 새들은 잠에 취해 아직 둥지를 떠나지 못하네.

# 渡碧波口號(도벽파구호 : 벽파를 떠나며) _ 충암 김정(沖菴 金淨)

宇宙由來遠(우주유래원) 우주는 예로부터 심원하고

人生本自浮(인생본자부) 인생은 본시 떠다니는 것.

扁舟從此去(편주종차거) 조각배 되어 떠나는 이 몸

回首政悠悠(회수정유유) 나랏일 돌아봄만 아득하네.

* 충암은 조광조와 함께 개혁 정치를 펼치다가 1519년 기묘사화 때 금산으로 유배되었다.

이듬해 5월 진도로 이배된 후 그해 여름 다시 제주로 옮겨 떠날 때 벽파진 나루터에서...이듬해 1521년 10월 사약을 받고 죽었다.

# 충암의 벽파정시에 차운하여 (珍島碧波亭 借忠岩김정韻) _ 송인수

孤忠輕性明(고충경성명) 외로운 충신 곧바름 눈부시게

端棹任沈浮(단도임침부) 오로지 노 끝에 매여 파도에 부침하네.

日落芳洲遠(일락방주원) 해는 저물어 찬란한 섬 멀고 아득하여

招魂意轉悠(초혼의전유) 끝없이 떠도는 혼을 부르노라.

*충암이 떠난 지 22년 후, 송인후가 전라감사 시절 벽파정에 현판 된 시를 보고, 그의 시운에 따라 자신도 시 한 수를 읊어 정자에 새겼다. 그도 전라감사를 마친 3년 후 1547년 충암을 따라 양재역 벽서사건으로 사약을 받았다.

# 벽파정시에 답하여(爲答碧波亭詩) _ 노수신 / 김정과 김정의 시에 차운한 송인수 시에 답하여

二公天上在(이공천상재) 두 공은 천상에 있고

孤客海中浮(고객해중부) 나그네 홀로 바다 가운데 떠 있네.

幸緩今朝死(행완금조사) 이 아침까지 목숨을 이었으니

前導尙自悠(전도상자유) 앞날이 오히려 절로 유유하네.

* 노수신은 1545년 을사사화로 인하여 1547년 순천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진도로 이배된 후 괴산으로 다시 옮겨지기 까지 19년 유배생활 중... 이 시에서 두 공이란 바로 김정과 송인수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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