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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컬럼. 나무는 흔들리지 않으려해도 바람은 불고
남인컬럼. 나무는 흔들리지 않으려해도 바람은 불고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19.12.28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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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효는 백가지 행동의 근본!”

오래 사는 것은 축복이다. 가족과 사랑이 함께하는 삶은 더더욱 큰 축복이다. 진도가 가장 안전하고 행복한 고장임을 현 진도군수는 수시로 강조하고 있다. 이게 우리시대의 트랜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기후 자연적 여건이 밑바탕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 필수적인 문화인프라에 자신을 갖기에 현대인의 심리적 불안감이 가장 없는 지자체로 내세운 것이다.

진도는 다른 지역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효의 고장으로서 여러 사례가 기록에 전해오며 비각들이 남아있다. 효열비도 많다. 이는 진도가 유배지역이라는 한정된 인식을 벗어날 좋은 전거가 될 것이다.

군민의상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앞으로 건강장수 문화상과 효사랑 큰상을 선정하여 매년 시상하도록 하자고 제안한다. 현재 진도문화원이 제정 매년 시상하고 있는 옥주문화상은 그 연륜이 깊지 않지만 그 권위와 호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진도는 청정해역과 기름진 옥토를 가진 고장이다. 당연히 어르신들은 즐겨 노래를 부르며 우울증 없는 팔춘기 적령으로 살아간다. 진도읍 북상리는 구기자와 관련해 장수마을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다. 이를 더 널리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 전세계가 장수무병의 고장을 찾는다. 히말라야의 삼발라나 십승지는 이상향으로 손꼽힌다. 앞으로 진도는 지극한 효례(孝禮)가 있는 살기좋은 고장으로 거듭나야 한다. 진도의 특산물인 구기자를 비롯, 울금이나 진도홍주, 돌미역, 곱창김, 톳을 비롯한 각종 해조류는 모두 뛰어난 장수식품들이다.

진도 주민들이 다른 지역보다 월등한 장수 수치통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삶을 제대로 누리며 산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사고, 나이를 잊고 시서화가무를 적극적으로 수용 연마하여 보람과 성취감을 자랑한다는 것이다.

진도군은 매년 진도아리랑축제 진도군민의날 행사에서 군민의상을 시상하고 있다. 각 분야별로 추천을 받아 심의를 거쳐 결정한다. 수년 전에는 화가인 옥산 김옥진 선생이 받았다.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전례를 보면 그 이후 수상자가 거의 나오지 않아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물론 상의 권위가 살아있어야 하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줄 수는 없을 것이다. 분명하게 진도군의 명예와 봉사 헌신의 공로가 인정받는 분들이 받아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진도군수와 문화기관, 여성단체 등과 함께 건강장수 문화 및 효사랑 실천 사례를 찾아 선정하여 그 뜻을 기려준다면 더 많은 어르신들이 더 건강하게 오래 사시면서 진도문화의 향수를 누리며 가족애를 더욱 돈독하게 할 것으로 믿는다. 효사랑 실천은 단순하니 효부만으로 한정시키기보다는 아들 또는 딸 사위 손주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

효의 표본을 진도역사에서 찾는다면 누구보다도 대금국수로 일컬어지는 박종기 선생일 것이다.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장딴지 살을 베어 드렸다는 일화는 너무 유명하다. 이로 인해 그 분은 평생을 다리 한쪽을 절으며 살아야 했다고 알려진다.

아버지 박덕인 옹과 함께 늘 어머니 묘를 찾아 절을 하고 함께 대금을 불었다고 한다. 산새들이 함께 내려와 춤을 추었다고 하니 그 애틋한 정경이 절로 떠오르게 한다.

이 밖에도 진도에는 여러 효자열녀각이 세워져 있다. 특히 경주박씨인 박대형은 자(字)는 달수, 호(號)는 윤곡이라 하였다. 1532년 진도읍 북상리에서 태어난 그는 5살 나던 해 어머니로부터 자기가 유복자임을 알았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침착한 달수는 아침저녁으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요절한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 호곡을 하는가 하면 홀로된 어머니에게도 극진한 효성을 다하였다. 날이 갈수록 부모에 대한 달수의 효행은 더하여만 가고 마을에서부터 이웃 마을까지 소문이 퍼지고 웃어른들의 칭찬이 자자하였다.

그러던 중 세월은 흘러 달수의 나이는 약관을 넘어 섰고 어머니는 노년에 이르러 병으로 앓아눕게 되었다. 달수는 좋다는 약을 모두 구하여 봉양하였으나 날이 갈수록 어머니의 병세는 회복되지 않고 더욱 악화되어만 갔다.

그러던 중 하루는 병석에 누워있는 어머니가 숭어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였다. 달수는 어리둥절 하였다. 생전에 어머니가 자기에게 무엇을 요구하지도 않았지만 이 엄동설한에 어떻게 숭어 고기를 구한단 말인가.

그러나 달수는 어머니를 위한 일이면 무슨 일인들 못할 것인가 생각하고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을 헤치고 강가로 달려갔다. 그러나 강물은 꽁꽁 얼어붙었고 그 위에는 흰 눈이 덮여 있었다. 달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빙판 위에 한참 서서 생각하다가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이 딱한 사정을 기도하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온 몸이 꽁꽁 얼어붙은 듯 꼼짝 할 수 없는데 더운 기운이 하늘로부터 달수의 몸을 감싸듯 하여 정신을 차려보니 이상하게도 얼어붙은 냇가 얼음을 깨고 싶은 충동에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부근에서 돌을 주워 얼어붙은 강 얼음 치기를 수 십 번 하였다.

마침내 깨어져 나간 얼음 사이로 숭어 한 마리가 튀쳐 나오자 이를 본 달수는 너무나 반가워 숭어를 움켜 쥔 채로 하늘을 보고 감사한 후 한걸음에 집으로 돌아와 그 동안에 캐놓은 약이 될 만한 산나물을 숭어와 함께 정성껏 다려서 어머니께 드렸더니 눈물을 흘리시며 숭어 고기를 잡수신 달수 어머니의 병환은 몇 일 뒤에 씻은 듯 나았다고 전해온다.

이 일은 평소에 아들의 효심이 극진하므로 하늘이 감동하여 내리신 복이라 하여 군민의 칭송이 자자하였고 이때 마침 전라감사 조공(趙公)이 지방 순시 차 본군에 들러 이 소문을 들은 후 조정(朝廷)에 보고하니 조정에서도 그의 효성에 감복하여 나라의 비용으로 효자 박대형(朴大泂)의 정려(旌閭)를 세우게 하였는데 현재의 진도읍과 군내면 경계선인 정거름재(군내면 산 155번지)에 세웠다. 이것이 바로 우리 군의 효자에게 처음 세워진 정려라고 전하여 온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전설 같은 일이나 다시 한 번 선조들의 지극한 효행을 살펴서 오늘의 세대들에 효도의 귀감이 되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시대의 박대형 박종기를 찾는 효사랑 실천 장본인을 기리는 상을 제정하자는 것이다. 효가 없는 세상은 좀비들이 판치는 세상이 된다. 구태한 관습이 아닌 인간의 최고 덕목으로 재조명해야 할 때이다. 지방자치단체가 노인공경군을 제정하고 구호로만 외친다고 그 지역이 효의 고장으로 자리잡는 것은 아니다. 적극적으로 효부효자를 발굴하고 그 선행을 널리 알리는 책자 발행, 표창이 뒤따라야 한다.

물론 진도 내에서 많은 봉사단체들이 연말 연시를 비롯 다양한 불우이웃돕기운동에 나서 홀로 사는 어르신들은 “자식보다 더 낫네”라는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한다. 여성단체에서는 김장김치를 담아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어주고 집수리, 이불선물 등이 계속되고 있다.

함께 산다는 것은 이런 나눔이 있을 때 신뢰와 사랑으로 따뜻해진다. 오병이어와 빈자일등의 기적이 다시 그리워지는 세모의 계절이다.(박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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