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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진도는 孝와 禮를 세우는 고장이 되었을까?
왜 진도는 孝와 禮를 세우는 고장이 되었을까?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19.12.28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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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살 것인가? 당신은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꽃이 피어나는 정원을 거닐고 있는가.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길 기다리며 잎사귀의 미세먼지를 닦고 있는가.

바다가 담이 될 수 있을까? 신분이 겨드랑이 밑 어디엔가 새겨진 주홍글씨가 되었을까? 벽파와 녹진과 해창 앞의 물길은 몸짓 하나로 건널 수 없는 해자로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가?

조선은 섬이었다. 중국 명대와 청대를 거치면서 조선은 일본보다 더 철저하게 섬이 되었다. 아니 섬을 자처하였다. 바다를 버려 일본에게 전 국토가 유린당했지만 반성의 모습은 없었다. 일성록이나 징비록은 그들만의 변명록이었다. 체제변화가 뒤따르지 않았다.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진도 바다에서 극적인 승리로 한양 도성이 겨우 안온해졌다고 하지만 이는 곧 병자년의 난으로 이어졌다. 여전히 반상체제가 국토의 개념을 포괄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면서 이미 허물어지고 있는 계급제도의 강화로 시간을 허비해 버렸다. 다른 나라들은 이미 인공지능시대였다. 청도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첨단 교류 무역을 통해 부강의 길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총은 권력의 방아쇠이기도 하지만 문화의 발포 확산의 전진기지 깃발이었다.

진도는 섬이기 때문에 두 번이나 공도가 되어야 했다. 공로를 인정받아 전쟁 중 죽음과 맞교환한 공신녹권을 받았지만 그 후손은 여전히 신분제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노래를 들어보자. 70년대의 암울한 시대 음률의 빛을 닦아 부르던 가수 송창식의 노래다.

우리는 빛이없는 어둠 속에서도 찾을수 있는

우리는 아주작은 몸짓 하나라도 느낄수 있는

우리는 우리는 소리없는 침묵으로도 말할수 있는

우리는 마주치는 눈빛 하나로 모두 알수 있는 우리는 우리는 연인.

천둥치는 운명처럼 우리는 만났다.

우리는 바람부는 벌판에서도 외롭지 않은 우리는 마주잡은 손끝하나로 너무 충분한

우리는 우리는 기나긴 겨울밤에도 춥지 않은 우리는 타오르는 가슴 하나로 너무 충분한

우리는 우리는 연인.

수없이 많은 날들을 우리는 함께 지냈다. 생명처럼 소중한 빛을 함께 지녔다.

만날 수 없는 연인을 조국이라고 불렀다 진도 사람들은. 그리고 떠밀리고 흘려가버렸다. 왔다가 죽고 왔다가 돌아가면 기억하지 않았다. 경험은 떠밀리고 기억은 지워져갔다. 그래야 살아 남았다.

당시의 진도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전복처럼 달라붙어 “나 떠나가지 않을께!”를 흡입하고 있었을까. 수탈은 전쟁보다 더 지겨웠다. 호랑이의 난은 어쩌든 견딜 수 있었다. 액맥이굿을 치든가 바닷길을 열어 피난을 가기도 했다. 아예 호랑이굴을 습격하여 잡아 죽이기까지 했다.

오늘날 호랑이는 무엇으로 상징되는가. 여전히 이 나라의 제도는 으르렁거린다. 지방자치제는 절름발이다. 공옥진의 눈물겨운 춤사위다. 지자체의 몰락을 예견하는 여러 지표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아이들이 사라진 농촌. 다문화와 이주노동자의 전방위 취업 노동이 너무나 당연시되는 오늘의 농어촌은 한민족이라는 말이 너무 무색해진다.

그러니 바람이 불지 않아도 진도의 겨울은 체감온도가 너무 춥다. 진도교육지원청은 내년부터 새로운 제도를 들고 나왔다. 면단위 초중학교가 학생수의 급격한 감소로 폐교상태로 내몰리는 것을 그냥 바라볼 수 없는 상황에서 진도읍 관내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주소 이전 없이 지역내 전학이 가능토록 한다는 시책이다. 우리사회는 어딘가에서 누수가 일어나고 있지만 대한민국이라는 댐은 공고하다고 자기 최면에 빠져 있는 듯하다.

기억하라. 기억하라. ‘죽은시인의 사회’ 선생은 계속 외친다.

소리가 소리를 잡아먹는 세상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세상

어둠이 어둠을 잡아먹는 세상 편지가 눈물을 삼켜버린 세상

달빛이 달빛을 삼켜먹는 세상. 나는 노래가 두렵다. 시가 더 두렵다.

모든 예언은 틀리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했다. 그러나 인간이 머피의 법칙을 만들고 만다. 섬이 사라진다면 섬은 사라진다. 대한민국이 침몰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떠들어대면 디플레이션이 일어나거나 침체의 길로 가게 된다.

그러나 파랑새는 있다고 믿으면 산너머에서 파랑새는 날아올지도 모른다. 인간은 희망의 주사위에 내일은 건다. 진도는 ‘구르는 천둥’처럼 언제나 비를 부른다. 기도와 믿음만이 승리를 부른다는 것을 수천년 경험으로 익혔기에 오늘도 씻김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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