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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의 샘 노옹(老翁)
슬기의 샘 노옹(老翁)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0.01.11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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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지금의 농장을 일굴 때 오른쪽에 흑염소 우리가 있었다.

노인은 내 일할 때면 곁에 와서 말을 걸어왔다.

“이 땅 들 모두 내가 벌던 땅이야. 이곳에서 참깨 키워 열 가마 이상 하던 일이 있었어. 요 아래쪽엔 배추가 잘 되지.”

“선생이라고?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데…’

가끔은 약 올리는 말을 했지만 웃어 넘겼다. 밭에서 염소가 잘 먹는 풀들이 탐스럽게 자랄 땐 베어다가 흑염소 우리에 넣거나 우리 앞에 쌓아 두었다. 올라와서 보고

“뭐야, 김 선생이 풀 넣어 줬어? 뒤에 먹이 줬다고 나누자고는 안 돼.”

10년이 넘는 기간 노인의 신세가 확 바뀌었다. 어르신은 올해 여든넷이다. 고향이 함경북도 무산이란다. 일제 강점기에는 아버지께서 순경으로 서장을 지녀 호의호식하며 지냈단다. 해방이 되고 북한에서도 일제의 앞잡이에 대한 박해가 심했단다. 갓 결혼한 처를 두고 남쪽에서 자리를 잡으면 데리려오겠다는 약속이 65년을 넘겼단다.

형과 대구에서 공원을 어슬렁거리는데 순찰차에 실려 끌려간 곳이 알고 보니 일본 땅이었다. 미군 특수 훈련을 받는 곳이었단다. 6개월의 고된 훈련을 받고 인천에 올라와 북파공작원 활동을 하였단다. 황해도와 평안도를 넘나들기 4년 그동안 휴전협정이 나고 문산 선유리에 자리 잡았단다. 미군 소속의 인연으로 미군부대에 쉽게 들어가고 가정도 꾸렸단다.

밀수품을 잘못 취급하여 미군부대에서 짤리고 60년대 어렵게 살다가 월남파병까지 갔다 왔단다. 고향과 어머니, 형제를 잃은 외로움에 돈이 생기면 술 먹는 일에 탕진하였다. 아들 셋을 두고 보니 가정을 꾸리기 위해 소도 키우고 농사도 지었으나 크게 이루지 못했다. 아주머니와 반찬 가게를 하여 살아가다 아주머니가 암 선고를 받아 7년 병수발을 들고 보니 재산도 거덜나더란다.

70이 되어 내 농장의 옆 문중 산을 조금 빌려 염소를 키우다가 나와 인연이 되었다. 2004년 봄

“나 미국 다녀와야겠어. 북파공작원 공로를 인정해주고 등뼈 총탄 박힌 게 원호대상자 지정이 되었어.” 하고서 흑염소를 치우셨다. 한 달 후 돌아오셔서 보상금을 제법 받아 오신 듯싶었다. 지금은 원호처에서 연금으로 한 달 250만원이 넘게 나오시나보다. 그 모진 세월을 이겨내서인지 정정하다. 혼자 사시니 심심하다며 염소 키우던 자리를 일구어 채소를 가꾸신다. 농담도 나누는 가까운 친구가 되셨다.

너무 추워서인지 할아버지께서는 올라오지 않는다. 전화가 왔다.

“김선생이야?”

“예, 할아버지”

“추운데 어디야? 농장이라고? 뭐하러 나와?”

“닭장에 물 끓여 줬어요.”

“그거, 귀찮게 그럴 필요 없어. 눈을 퍼서 비닐 위에 놔줘. 물은 얼어 못 먹지만 눈을 쪼아 먹으면 물대신 되어.”

“아,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내일 모임이 있는데 닭 물 땜에 일찍 들러가려 했는데 해결이 되었다. 가끔 이렇게 노옹(老翁)께선 슬기의 샘이 되어 주신다. 지난 여름 닭장의 닭들이 먹이통의 사료를 마구 후벼 허실이 15%가량 되었다.

“거 먹이통 위가 오무라진 걸로 만들면 되는데…”

그 말에 홈통을 구하여 갈라서 먹이통을 만들었더니 닭들이 사료를 헤집지를 못했다. 낫을 가는데 삽자루에 끼워 썼더니 나무토막을 구해 와서

“못 두어 개 내와 봐.” 뚝딱거리더니 숫돌집이 되었다. 소소한 생활의 지혜를 말씀 해준다.

“팥이나 녹두는 땅에 세운 체 얼면 돌팥이나 돌녹두가 되어. 삶아도 익지 않은 팥이나 녹두말야.”

그 슬기는 경륜만으로 되는 게 아닐 것이다. 늘 개선하려는 마음에서 터득된 일들이다. 오늘도 노옹(老翁)의 지혜를 받았다.(김병환. 임회면 광전 출신 귀향 교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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