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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명의 술술술어쩌다 또 '술'로 한 해를 보냈을까
허시명의 술술술어쩌다 또 '술'로 한 해를 보냈을까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0.01.1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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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떠돌고 사람을 만나고... 내가 술을 통해 얻은 것들

어쩌다 한 해를 다 보내버렸을까? 어쩌다 또 술이었을까? 세상에 말할 수 있는 게, 말해야 하는 게 많은데 술 얘기를 하며 한 해를 다 보냈을까?

내가 술을 관찰하고 놀이하고 학습하는 대상으로 삼아 지내온 지도 스무 해가 지났다. 처음 술을 관찰하기 시작한 것은 1999년 한산 소곡주를 맛보러 갔을 때다. 자연 풍경이 좋은 곳은 물이 좋고, 물이 좋으면 술도 좋을 거라 여겨, 그 고장의 술을 맛보면서 지역과 사람과 문화를 이야기했다. 그때는 새롭고 낯선 길은 모두 가보고 싶어 하는 여행자의 시절이었다.

술은 내게 이 땅을 떠돌게 하는 핑계였다. 유통 수단이 원활하지 않던 시절에 양조장은 동네마다 있었다. 면 단위마다 생긴 최초의 제조장이 양조장들이었다.

그런데 너무 가깝고 흔해서였을까. 술을 고유한 문화로 바라보는 시선은 부족했다. 술을 만드는 사람은 그 비법이 드러날까봐 말을 아끼고, 술을 마시는 사람은 사건 사고는 많아도 술 자체에 관심 두지 않았다. 글을 다루는 문인들도 술을 마시고 난 뒤의 소회는 밝히지만, 술 자체를 살피지는 않았다. 내게는 지역 술이 세월과 함께 퇴락해가는 풍경처럼 보였다.

내가 술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희는 흰 도포를 입고 수염을 기른 나이 지긋한 분인 줄 알았어요."

한국의 지역 술을 이야기할 때면 내가 곧잘 듣던 소리였다.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던 지역 술의 이미지였다.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온라인으로 지역 술을 구입하고,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지역 술과 음식을 올려 자신의 하루를 세련되게 이야기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났다.

술은 끊임없이 내게 새로운 사람을 소개해 주었다. 술을 빚는 사람, 술을 파는 사람, 술을 추천하는 사람, 술을 법으로 다루는 사람, 그리고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있다. 나를 반기는 사람은 내게 있는 술을 맛보고 싶어 하거나, 내가 해석하는 술을 마시고 싶어하는 이들이다. 요사이는 그 술로 새로운 일을 도모하고 싶어 하는 이들도 찾아온다.

그들은 내게 술이 무엇이냐고 굳이 묻지 않는다. 나도 술이 무엇이라고 애써 말하지 않는다. 술과 친한 이들은 모두 알고 있다. 술은 수단일 뿐임을. 술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건너다니는 운송 수단이다. 나는 그 술을 통해서 낯선 사람을 만나고 낯선 세계로 들어간다. 술에 집중하지만 술이 목적은 아니다. 목적이 작아지면, 과정이 훨씬 소중해진다. 그래서 술을 통해서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과정을 즐기는 삶의 지혜도 배웠다.

▲ 술잔을 부딪치며, 건배하다

술 없이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쩌다 술이었을까? 술에 한번 빠져들면, 술은 인간을 집요하게 만든다. 술을 만들어 이름을 얻기까지 시간이 많이 들지만, 비로소 술로 이름을 얻게 되면 생이 술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

내 수첩에 적힌 술의 장인은 술의 대열에서 결코 이탈하지 않는다. 면천두견주를 빚은 박승규, 진도홍주를 빚은 허화자, 문경호산춘을 빚은 황규욱, 그들은 생을 다하고 난 뒤에야 술과 헤어졌다. 내가 오래도록 술을 관찰할 수 있는 동력은 온 생을 바쳐 술에 매진한 그들의 삶에서 나온다. 다른 직종은 전업도 하고 은퇴도 하는데, 술의 장인들은 전업도 없고 은퇴도 없다. 기반을 마련한 양조업은 대를 이어간다. 술을 키우는 최고의 자양분은 세월이다.

술을 다룬 시간이 오래되다보니, 내가 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지, 술이 나를 벗어나지 않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나는 농담처럼 말한다. 나는 술을 싫어하는데, 술이 나를 좋아해 따라다닌다고. 나를 따라다니는 술을 나는 결코 내치지 않는다. 술이 혼자 있기를 싫어하는 줄 알기 때문이다. 술은 술잔과 음식과 음악과 춤과 신까지도 끌어들인다. 술은 가장 화려한 축제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술을 통하면 사람과 통하고 한 사회의 문화와도 통한다.

묘하다. 술을 만들수록 비밀이 많아지고, 술을 마실수록 비밀이 사라진다. 술을 만드는 사람은 진심을 다 털어놓지 않지만, 결코 상대를 적으로 만들지는 않는 미덕을 지니고 있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진심을 잘 털어놓지만 술이 깨면 그것을 곧잘 잊어버린다. 어쩌겠는가. 술을 통해서 잠시나마 생을 위로받을 수 있다면 그 거래는 만족할 만하다.

어쩌다, 술

▲ 오래된 양조 도구들 ⓒ 막걸리학교

내가 이 땅에 태어났으니, 이 땅의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나는 술이라는 렌즈로 문화를 바라본다. 신기하게도 세상이 색다르게 보인다.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불어 일본술을 취급하지 않겠다고 방을 붙인 일식집에서 맑은 한국 술을 찾는데,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단다. 외국인들이 한국 소주를 안다고 하는데, 그 술이 희석식 소주이지 전통 소주가 아니란다. 외국에서도 편하게 막걸리를 빚고 싶어 하지만, 간명한 지침서를 찾기 어렵단다.

한국 문화와 함께 한국 술이 관심의 대상이 되지만, 지금도 여전히 전통에 뿌리를 둔 술 문화가 앞장을 서지 못하고 있다. 갈 길이 창창하다. 우리가 마신 술은 한국의 전통으로부터 자라난 것인가 자신 있게 답하기도 어렵다. 어쩌다 술을 알게 되어, 인생의 일감만 늘었다. 참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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