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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의 영원한 삶을 추구한 ‘문화’의 옛 유배지 진도와 접도
상생의 영원한 삶을 추구한 ‘문화’의 옛 유배지 진도와 접도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0.02.15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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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외롭다. 시대를 거슬러 갈수록 섬은 페쇄된 공간이었다.

 

육지에서 외따로 떨어져 있는 섬. 교통이 불편했던 그 옛 날 ‘섬’은 철저히 고립된 장소였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쉽사리 벗어날수가 없었던 곳, 일일이 감시하지 않아도 되는 ‘섬’은 천혜의 유배지였다.

조선시대 유배자들은 대부분 정치에서 실각된 권력자, 문장력이 뛰어난 지성인들이었다. 섬으로 온 유배인들은 그 섬에서 남다른 유배문화를 꽃피웠다. 소외된 섬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그들을 일깨우는 역할도 했다.

예술적 영감 깨우는 섬 ‘진도와 접도’

바람과 구름조차 판소리가 되고 부지깽이만 잡아도 사군자 그림이 그려진다는 곳, 대패만 잡아도 목수가 되고 발을 내딛기만 하면 춤꾼이 된다는 곳, 진도! 그곳에서 나고 자란 수많은 예술가, 그곳이 만들어 낸 수많은 종류의 예술을 생각하면 예술가를 구분하기 위해 천상에서 보배를 내려 바다로 구분지었나 싶은 곳이 바로 진도이다.

권력자들 최적의 유배지 ‘진도’

오랜 세월 섬이었던 이 진도는 제주도와 더불어 최적의 유배지였다. 2007년 간행된 ‘진도군지’를 보면, 진도에 유배된 수백 명의 이름들이 나온다. ‘금수회의록’이라는 신소설을 쓴 안국선 또한 진도에서 유배의 생활을 했다. 박영효와 역모 사건에 연루돼 1904년 진도로 유배 온 그는 진도초등학교의 전신인 진명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한 적도 있다. 전의이씨.

당시 최고 지성인인 유배자들이 많아서일까. 진도는 유독 문화와 예술의 고장으로 이름 높다. “진도 사람치고 노래 한 마디 못하는 사람 없다”는 말이 생겨 날 정도로 노래에 소질이 있고, 서화(書畫)도 진도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소재 노수신을 비롯 유배자들은 생계를 위해 서당을 열었다. 사천리에는 지금도 관란재 이름이 남아있다.

한국의 대표적 민요이자 섹메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진도아리랑’을 비롯해 남도지방에서 불리는 창이나 민요 등 어디를 가나 부녀자들의 노래 가락을 들을 수 있다. 진도에서 불리는 민요는 김매기 등 농사를 하면서 부르는 농업요가 대부분이나, 닻배노래 등 고기를 잡으면서 부르는 어업요나 유희요 등도 많다.

이처럼 진도가 문화·예술의 고장이 될 수 있었던 데는 지리적 특성상 풍요로웠던 것도 한 몫 한다. 진도는 분명 섬이지만 뭍의 냄새가 짙은 곳이다. 섬이지만 광활한 평야가 여기저기 펼쳐져 있어 꼭 육지 같은 느낌을 준다. 농산물이 풍부하고 주변의 섬과 바다에서는 생선과 해조류가 많이 나온다. 그래서 ‘보배의 섬’이란 뜻으로 섬 이름도 ‘진도’가 됐다.

섬 속의 섬 ‘접도’와 남망산

진도에 속한 ‘접도’도 조선시대 유배인들의 귀양지 즉 섬 속의 섬이었다. 당시에는 금갑도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김후재, 신정조 등 수많은 유배인이 금갑도로 유배의 길을 왔다. 그 중 김약행은 이 섬에서 1788년 ‘적소일기’라는 한글 유배일기를 남기기도 했다.

접도는 면적이 4.3㎢, 해안선 길이 12.3km에 불과한 보통 크기의 섬으로, 진도군 의신면에 속한다. 접도는 1987년 본섬과 다리로 연결됐다. 길이 200m 가량의 접도대교는 진도군 의신면 금갑리와 접도를 잇고 있다. 즉, 진도의 남서쪽 끝과 접도 의 북서쪽 끝을 잇고 있다.

접도 안에는 원다리, 수품리 등 3개 마을이 있는데, 접도대교를 건너 수품리 방면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에 원다리가 나온다. 이곳이 유배인들이 생활했던 곳으로, 마을 한편에 ‘유배지 공원’을 조성해두었다.

접도는 현대판 모세의 기적이 나타나는 회동과 ‘모도’가 워낙 알려진 여행지이기 때문에, 그간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접도를 접한 사람은 이내 그 매력에 빠져들고만다. 툭 트인 바다와 산수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산세에 절로 탄성이 나온다. 난대식물의 보고이기도 하다.

유와 김이익과 무정 정만조는 접도의 대표적인 유배인들이다. 유와는 순칭록을 썼으며 무정은 은파유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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