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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의 진도문화 스토리텔링(3)
김미경의 진도문화 스토리텔링(3)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0.03.17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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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접도(금갑도) 팽나무 당산祭 - 그 마을신앙의 아름다움

김미경(스토리텔링 작가, 문학박사)

진도(珍島)! 그러면 저절로 “꽃”이라는 김춘수 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우리들은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아! 언제 읊조려도 감동적인 시이다. 그런데 왜, 나는 “진도”를 떠올리면 “꽃”이라는 시가 생각날까. 아마도 “진도”는 나에게 “꽃”이기 때문일 것이다. 2001년 겨울, 서울에서 몸도 마음도 삶에 지쳐서 시리고 시렸을 때 진도 모사마을 앞 바다가 나를 포근히 감싸 주었었다. 그런 곳이 진도이다. 2004년 봄, 나는 500m 바다를 50m 바다로 가까이 두고 싶어서 진도군 고군면 모사마을에서 진도군 의신면 황모마을로 거처를 옮겼다. 아마도 그때부터이었을 것이다. 내가 “진도군 의신면 금갑리 942번지” 앞에 있는 팽나무에다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정성스럽게 당산祭를 드리기 시작한 것이 말이다. 맨 처음에는 진도군 의신면 진설리 - 지장암에 사는 김오심 보살이 새 집에 들어갔으니 성주굿이랑 당산祭를 해주겠노라고 자청해서 시작된 일이다. 그것도 태풍도 불고 날씨가 좋지 않아 미루고 미루다가 2004년 음력 5월 29일(양력 7월 16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처음으로 “진도 접도 팽나무 당산祭”를 거행하게 되었다. 하필이면 이날은 내 생일이기도 하여서 흑돼지랑 간재미회랑 막걸리 등을 장만하여 마을 잔치를 벌였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 박정석 전 진도문화원장과 박주언 현 진도문화원장 모두가 참석해 주었고, 지금은 전라남도 관광문화체육국장이 된 그 당시 진도군청 윤진호 과장도 참석해 주었다. 지극히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그날 김오심 당골네의 입에서 “앗! 나는 목신(木神)이다. 아휴! 오늘 참, 잘 먹었다. 앞으로 너는 1년에 한 번씩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여 줄 것이냐!”라는 말이 갑자기 쏟아져 나왔다. 그때 나는 열심히 비디오를 찍고 있었는데 얼떨결에 “예!”라고 대답했다. 이것이 17년째 내가 “진도 접도 팽나무 당산祭”를 마을 사람들과 함께 주관하는 이유이다. 사실, 나는 민속학자로 2019년에는 “디지털익산문화대전”에서 또, 2018년에는 “디지털아산문화대전”에서 “마을신앙”을 집필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마을신앙”으로서의 “당산祭”가 얼마나 아름다운 미풍양속(美風良俗)인가를 확실히 알고 있다. 마치 우리가 설날 때 흩어졌던 가족들이 마음을 다해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는 것처럼 “당산祭”도 생업으로 바쁜 마을 사람들이 모처럼 정성을 다해 마을을 지켜주는 당신(堂神)에게 “당산祭”를 지내는 것이다. 이는 예전부터 내려오던 “마을 공동체 의식”의 발로(發露)이다. 2005년부터는 마을 사람들과 논의해서 음력 정월 초사흘날에 “진도 접도 팽나무 당산祭”를 지내고 있다. 이번에도 음력 정월 초사흘날(2020년 1월 27일) 저녁에 남문떡집에서 고사떡을 찾고, 진도농협에서 “생삼겹살”을 사고, 송정막걸리주조장에서 막걸리 4박스를 배달시켜 부지런히 접도 다리를 건넜다. 황모리 마을회관에는 이미 임정남 이장과 임용남 어촌계장을 비롯한 여러 분들이 이 행사를 위해 모여 있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서울 객지에서 온 나를 마치 애초에 여기에서 태어난 고향 사람처럼 다정하게 대해주는 마을 사람들이 정겹기 그지없다. 먼저, 팽나무에서 당산祭를 드리고 난 뒤에 마을 사람들은 막걸리를 팽나무에게 부어주면서 마을의 안녕과 가정의 행복을 빌었다. 그리고 마을 위로 새로 난 아스팔트 길 위로 올라가서 너무도 예쁘게 웃고 있는 돼지머리를 놓고 이 길을 지나가는 모든 차와 사람들이 안전하기를 정성껏 빌었다. 그리고 황모마을 표지석 앞에 가서 마을 사람들은 2020년, 경자년(庚子年) 한 해도 생업에서 돈도 많이 벌고, 자손들도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빌고 또, 빌었다. 나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왜 나에게 있어 “진도”가 “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진도”가 “우리 민족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과 인간이 서로 조화하며 사는 천지인(天地人)의 지혜를 아직도 완전무결하게 품고 있는 곳이 바로 “진도(珍島)”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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