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군은 국가지정(사적 제126호) 용장성에 삼별초 추모관을 건립하여 왕온과 배중손 장군, 삼별초를 도와 순절한 군민 등의 추모관으로 활용하면서 청소년들의 역사 교육의 산실로 운영키로 하였다.
위치는 군내면 용장리 30번지이며 사업량은 추모관 신축 1동(34㎥)이다. 사업비는 434,670천원(도비 268,734. 군비 147,936)이다.
이를 위하여 진도군은 지난 해 6월 특별조정교부금 결정 및 송금(도비 300,000천원)하고 12월까지 실시설계용역 착수 및 완료하였다. ㅠ이어 올해 초 잀아감사 및 계약심사를 완료하고 지난 2월 공사를 발주하였다. 이어 4월 14일 공사 착수하여 오는 9월 10일 경 준공할 예정이다.
예정대로 굴포리 정충사에 있는 배중손장군 동상이 옮겨가면 본래 굴포리와 신동, 남선 등 마을주민들이 매년 초, 이곳바다를 간척하여 주민들에게 덕을 베푼 은혜로 제사를 올렸던 고산 윤선도유허비 터가 복원될 것으로 기대된다. 본디 이곳 마을에는 두 개의 당이 있었으나 태풍으로 훼손되면서 백포 곽남배화백이 복원을 앞장서 추진하면서 배중손사당이 들어서게 되었다고 알려졌다.
용장성 아래에 있는 고려항몽삼별초 충혼탑 기념조형물 주변에서 매년 진도문화원이 행사를 치르고 있다.(박종호 기자)
용장성 고려항몽 추모관
*진도 용장성 부근에 고려항몽 삼별초 추모관이 들어선다고 한다. 늦었지만 기꺼이 동의와 박수를 보낸다. 자 이제 정유재란 순절묘역을 다시 살펴보자. 얼마나 많은 진도사람들이 희생되었는가. 하지만 지금까지 이곳도 매년 명량대첩축제 전날 진도문화원이 매년 약무호남제례를 올리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 어떤 기념물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는 자랑스러운 우리들의 조상 선조들에 대한 예우가 아니다. 1597년 초가을 명량해로에서 오직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한 목숨을 던졌던 길이 빛날 전사들. 무명용사들. 왜군들에게 보복을 당한 진도주민들. 이들의 정신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반드시 들어서기를 바란다.
고려항몽추모관 조감도
이동진 군수는 그 무엇보다도 임기 내에 꼭 실행 완료해주길 부탁드린다.
☆정유재란은 진도 울돌목을 중심으로 수군전이 치러진 전쟁이었다. 1597년 9월 15일 진도 벽파진에 도착한 이순신은 9월 16일 명량해협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곧바로 신안 당사도로 후퇴했기 때문에 진도는 상륙한 일본군에 의해 큰 희생을 치러야 했다. 당시 진도 관군은 군수인 송덕일(宋德馹)이 이끌었고, 명량대첩 때 전사한 진도 사람 중 관군으로 이름이 나오는 인물은 조응량 등 8명이다.
건립경위를 살펴보면 진도군 고군면 도평리와 오일시장 사이의 산기슭에 있는 이 묘역은 벽파진이나 명량진에서 15리 거리이며, 진도 설군 당시인 1440년대는 토반인 창녕조씨와 김해김씨들에게 하사된 땅이었다고 한다. 정유재란이 끝날 무렵인 1597년경부터 이 묘역이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묘역의 면적은 50,553㎡이고, 232기의 무덤이 있다. 이 묘역의 많은 봉분 중 창녕조씨나 김해김씨 등 진도 토반씨족 인물들 16기 이외에는 주인 없는 무덤들이다.
진도 군내 사족인 조응량(曺應亮)[선무원종공신], 그의 아들 조명신(曺命新)[선무원종공신], 박헌(朴軒)[병조참판 증직], 김성진(金聲振)[선무원종공신, 남원전투 순직], 김홍립(金弘立) 등의 무덤도 있지만, 나머지는 이름 없이 종군했던 현지 향민들의 무덤들로 추정된다.
진도군은 1995년부터 이곳 묘역을 다듬고 봉분을 손질해 보호하고 있다. 전라남도는 2001년 9월 27일 이 묘역을 문화재자료 제216호로 지정했다.[출처](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