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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간의 고초 마무리 공적 선조 배향
87년 간의 고초 마무리 공적 선조 배향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0.06.1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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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향현사 새로 단장했다

진도군 재설군 유공자 팔현 등 추모 적극 기려야

지난 해 진도군은 진도읍 성동길에 있는 향현사를 새롭게 단장하였다.

향현사(鄕賢祠)는 현재 진도유형문화재로 지정 보존되고 있다. 하지만 너무 오래 동안 방치되어 건물이 남루하여 진도군이 향현사 앞 소현당부터 단장하여 우리 진도군의 재설립하는데 큰 공을 이룬 선조들을 기리는데 정성을 다하고 있다.

진도군 향토자원 조사표에 따르면 진도읍 성내리 군강공원 동남방으로 자리한 진도 향현사는 제각 향현사(鄕賢社)와 계단 밑으로 내려와 앉은 회당 소현당(昭賢堂)이 마당 동편에 있는 요사체와 함께 경내를 이룬다. 조선시대 서원이 있는 곳에는 마땅히 향현사가 있어 그 지역의 유교적 중요인사들을 배향했듯이(일반적으로 향현사는 고을에 공이 있는 사람들을 모시는 사당을 말한다) 진도는 1824년(純祖 甲申) 당동리 봉암서원 아래 숙원이던 향현사를 창건했다. 여기에는 진도가 1350년 왜구로 인해 피난을 떠났다가 87년만인 1437년 복군작업을 시작하여 1440년 군행정을 재개하는 과정에서 창군설읍에 유공한 조복명, 박연, 박근손, 김석곤 4분이 배향되고 박인복, 박정, 김중연, 조맹문 4분이 추배되었다.

그러나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봉암서원과 함께 철폐 되었다. 그 뒤 1931년 향현사기성회가 발족되어 그 해 11월 비석을 먼저 세우고 현 위치에 향현사는 1932년 10월 17일, 소현당은 4월 4일 상량하여 1933년 5월에 준공하였다.

이건창사 당시의 임원은 사장 김원배(社長 金沅培, 고군면 석현리), 장의 박길배(掌議 朴吉培, 진도읍 동외리), 김천순(金天淳, 임회면 상미리), 박태현(朴泰鉉), 조병두(曺秉斗)이다.

〈소현당(昭賢堂)〉

소현당에 대한 특별한 내력은 전해지지 않으나 그 구조나 위치로 보아 회당이나 강당으로 쓰였을 것으로 보인다. 소현당의 현판은 소전 손재형이 썼다.

 

〈향현사8선생추모비〉

진도 향현사 8선생추모비는 특별한 설계의 비각 안에 모셔져 있다. 제각 건물과 비각을 밀창을 사이로 함께 붙여서 8선생 위패를 모신 제단이 비석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나뉘어 있어 결국 제관들은 제사 때 위패와 함께 비석을 보고 절을 하게 되어있다. 비각은 후문을 만들어 별도 출입이 가능하고 이곳을 거쳐 제각 안으로도 들어갈 수 있다.

비문은 진도 유배를 마치고 서울에 올라간 경학원 대제학 명륜학원 총재 정만조(鄭萬朝)가 짓고 전 내부 서기관 송지헌(宋之憲)이 썼다. 비명은 상단에 왼쪽으로 돌려 썼는데 珍島鄕賢 八先 生追慕碑 순으로 되어있다. 8선생은 조복명, 박연, 박근손, 김석곤, 박인복, 박정, 김중연, 조맹문이다.

현재 향현사와 소현당은 사장(社長)을 두고 요사채에서 거주하며 관리하고 있다. 건물이 지은지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목조건물이라 기둥이 썩어 보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특히 소현당 정면 오른쪽 모서리의 기둥은 속이 다 썩어서 두드리면 텅 빈 소리가 날 정도였다. 그대로 둔다면 건물이 한쪽으로 붕괴될 수도 있어 큰문제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향현사 뒤 비각 왼쪽 옆 벽은 균열이 나있고 벽의 상하를 나누는 목재도 많이 부식되어 있었다. 요사채도 지붕에서 비가 새고 지붕 한쪽이 꺼져있다.

그러나 현재 진도군이 적극적으로 나서 소현당을 재건하고 단장하여 숭모사상을 고취하는데 기여했다는 평이다. 경내에는 전 전남도의원을 역임했던 묵암 고 조병수선생의 공적비가 세워져 있다. 2012.2.29 진도군 향토문화유산 제12호로 지정되었다. 진도군은 입구 오른쪽에 주차장을 만들어 출입에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조권준 향현사 사장은 “우리 군을 재 설군하는데 가장 헌신해왔던 조상숭배를 하는데 제례에 진도군이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예산배정도 합당하니 책정해 예(藝)와 더 앞선 예(禮)를 알고 실천하는 법고창신의 고장으로 자리잡기를 바란다.”소 소망했다.

향현사는 진도의 창군설읍에 공이 있는 인물들을 배향하고 있는 사우로서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본다. 이러한 의미가 있는 곳을 군에서 지원하여 하루 빨리 보수작업을 하고 보존이 잘 되도록 철저한 관리를 해야겠다는 지역 향토사단체들은 촉구하고 있다.(박남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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