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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도 푸른 하늘
슬프고도 푸른 하늘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0.06.19 1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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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에서 띄우는 편지(이백만 교황청대사)

 

 

“루멘 크리스티”(Lumen Christi) “데오 그라티아스”(Deo Gratias)

파스카 성야의 성 베드로 대성전, 죽음의 침묵을 깨며 부활의 빛이 입장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앞장서시고, 사제단이 뒤따릅니다. 한 부제가 라틴어로 “루멘 크리스티(그리스도 우리의 빛)”라고 노래하면, 성당을 가득 메운 회중은 라틴어로 “데오 그라티아스(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화답합니다. 대성전의 은은한 공명이 세상을 깨웁니다.

가장 장엄한 미사가 단출하게

아~, 이게 웬일입니까. 매년 열리지만, 항상 새로운 파스카 성야 미사! 올해는 일 년 중 가장 장엄한 미사가 외교단과 신자들 참여 없이 단출하게 열립니다. 한 달 넘게 성 베드로 대성전의 문은 굳게 닫혀 있고, 베드로 광장은 텅 비어 있습니다. 가톨릭 역사상 처음 경험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입니다.

봉쇄! 폐쇄! 격리! 차단! 금지! 모든 국가가 극단적 조치들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때문입니다. 코로나가 세상을 마비시켜 버렸습니다. 팬데믹은 바티칸도 비켜가지 않았습니다. 교황청에도 비상이 걸렸습니다. 모든 대내외 행사를 취소하거나 연기했습니다. 성 베드로 대성전과 베드로 광장, 박물관, 도서관 등 모든 시설을 닫았습니다. 파스카 성야 미사(4월 11일 밤) 등 성주간 전례를 최대한 간소화하여 온라인으로 진행합니다. 교황님은 평소 베드로 광장에서 했던 일반알현과 삼종기도를 사도궁에서 온라인으로 하고 있고, 해외 사목방문도 전면 보류했습니다.

교황청은 전 세계 신자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기도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교황님은 지난 4월 27일 베드로 광장에서 ‘인류를 위한 특별기도와 축복’을 드렸습니다. 봄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저녁, 교황님은 주님께 간절히 빌었습니다. “주님, 저희는 무섭습니다. 돌풍의 회오리 속에 저희를 버려두지 마십시오. 다시 한 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마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교황님의 이날 기도는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습니다. 코로나도 무섭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이 코로나에 대한 공포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과학의 힘으로 물리쳐야 하지만, 공포 바이러스는 기도의 힘으로 퇴치해야 합니다. 기도는 공포 바이러스의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이자 백신입니다.

파스카 성삼일 전례, 예전에는 어떠했을까요. 처음 참례했던 2018년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벅찬 감동과 함께! 외교단은 부부 동반으로 성 금요일 주님 수난 예식과 파스카 성야 미사에 초대받습니다. 금요일 예식과 파스카 성야 미사는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권장 옷차림에서 그 차이가 드러납니다. 금요일 초청장에는 ‘without decorations’(치장하지 말고), 성야 미사 초청장에는 ‘with decorations’(치장하고)라는 안내글이 적혀 있습니다. 금요일은 주님 수난일입니다. ‘without decorations’는 검은색 계통의 정장을 하되 훈장이나 장식물은 일체 달고 오지 말라는 당부입니다. 심지어 대사들이 타고 가는 승용차에도 국기를 달아서는 안 됩니다. 쉽게 말해 초상집에 문상가는 의전입니다.

부활의 큰 기쁨 앗아가버려

반면, 파스카 성야는 주님의 부활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with decorations’는 정장에 훈장과 장식물을 맘껏 달고 오라는 의미입니다. 잔칫집 의전이지요. 원색의 전통 복장과 모자를 쓰고 참례하는 아프리카 대사 부부들이 단연 눈길을 끕니다. 위엄있는 의전용 복장에 긴 칼을 차고 오는 대사도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파스카 성야는 모든 성야의 어머니”라고 말했습니다. 성탄 성야 미사보다도 더 거룩합니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되살아나셨으니 기쁨이 더 할 수밖에! 미사가 끝나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이탈리아어로 “부오나 파스쿠아(Buona Pasqua)”, 영어로 “해피 이스터(Happy Easter)”라고 말하며 기쁨의 볼 키스나 악수를 합니다. ‘부활을 축하한다’는 인사입니다. 코로나19가 이렇게 큰 기쁨을 앗아갔으니 아쉽기 짝이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팬데믹 속에서도 가끔 바티칸과 로마의 도심을 둘러보곤 합니다. 테베레 강은 세상일 모르는 듯 무심하게 흐르고 있고, 강변의 플라타너스에는 파란 새싹이 쑥쑥 자라고 있습니다. 로마의 하늘은 왜 이렇게 맑고 푸른지…. 잃어버린 일상이 그립기만 합니다. 소설 「침묵」의 작가 엔도 슈사쿠의 말을 빌려 바티칸의 분위기를 전합니다. “인간은 이렇게 슬픈데…. 주님! 하늘이 너무 푸릅니다.” 이백만(요셉, 진도 덕병출신. 주교황청 한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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