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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고김정호 칼럼 /민선시대의 군수관사
학고김정호 칼럼 /민선시대의 군수관사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0.07.21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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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을 보면 관사란 공무집행자를 위해 빌려주는 집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조선왕조시대나 일본식민통치시절에는 군치정책임자는 중앙에서 파견했다. 조선시대 성안에는 동헌이라는 군수집무실과 함께 내아(內衙)라 이르는 안채가 있었다. 군수의 임기는 9백일이나 철새취급을 했다. 원칙은 가족을 동반할 수 없었지만 동반을 허가할 경우 임기를 9백일의 배로 늘려주었다. 그러나 청렴한 군수들은 가족을 동반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군수관사와 군수가족에 들이는 지역부담이 많고 민원이 일어나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었다.

일제식민통치시절에는 대부분 군수가 일본인이거나 친일파관리들이었기 때문에 관사를 지어주고 가족생활을 하도록 했다. 당시 면장들은 지역사람을 임명해 관사를 따로 주지않았지만 주재소나 헌병파견대장 및 군과장급에게는 관사를 주었다. 광복이 된 뒤에도 일제 강점기의 관행은 계속되었고 심지어 부군수까지도 관사가 주어졌다.

이같은 관행은 관치시대의 유습이다. 모든 공직자들은 급료를 받는 대신 살림집은 각자 해결한다. 일부 근무여건이 나쁜 교직자들이나 관사가 지급되어왔다. 오지근무자들 오지근무 보건의료 근무자들에는 사기진작정책이다.

지방자치제에 따라 시장·군수가 직선으로 선출되면서 그동안의 관행이 깨지기 시작했다.

80년대 초기까지도 시·도지사는 영빈관을 겸한 호화관사를 가지고 있었다. 대통령 초도순시때나 방문 때 경호문제를 해결하는 방책으로 지사관사를 지어 살림을 하되 평소에는 지역단체장들의 연회장이나 유지들의 담소장으로도 사용했다. 청와대나 총리나 국회의장공관 흉내를 낸 셈이다.

광역자치단체장들이 직선으로 선출되면서 도지사 관사는 점점 즐어들었다. 연회를 베풀려면 지역음식점을 활용하고 귀빈을 모시려면 호텔을 이용해 지역경제활성화에 도움을 달라는 시민단체들의 비판때문이었다. 광주에 있던 도지사공관은 광주시가 인수한 뒤 미술관이 되었다. 남악신도시에 지은 전남도지사 한옥 지사공관은 팔기위해 내놓았다.

시군 자치단체장들도 이 추세에 따라 도내 군수관사는 몇곳만 남아있다. 곳에 따라 미술관 등 문화시설이나 어린이집, 노인당 등 복지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관사는 대부분 그 관리비가 군에서 지급된다. 상·하수도비는 물론 전기료도 부담하고 사소한 수선이나 개량에 드는 비용도 군비로 지급하고 심한 경우 관리인 또는 위생요원이라는 이름의 가정부를 군비로 지급하는 곳도 있다.

이처럼 군비가 지급되는 관사를 당연한 군수의 권리인양 생각하는 것은 염치도 없고 제국시절 관리의식에 젖어있거나 민주의식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외지에서 섬에 발령받아 셋방살이를 하는 직원과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말이다. 관사를 군수살림집으로 쓰고 있는 도내 시장군수는 대부분 그 지역에서 살지 않고 타향에서 활동하다가 시장 군수에 당선된 사람들이다. 지역에 살던 집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관사를 자비로 해결할 능력이 없다면 당초에 군수출마를 말아야 한다. 지역에 살면서 주민들과 호흡을 같이 하지않는 사람이 타향살이에서 얻은 명성과 유력당의 공천으로 군수에 당선된 뒤 재산을 불려 임기가 끝나면 지역을 떠날 생각이라면 과연 주민을 위해 일했을까 그의 군정수행이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어진다.

이런 문제는 일차적으로 그런 군수를 선출한 주민에게 책임이 있다. 선출직군수직에서 군수는 자기살림집에서 출퇴근하는 관행이 정착되어야 한다. 이제 현직 군수가 모처럼 결단을 내려 비워둔 진도군수관사는 여직원들 어린이집으로 쓰면 가장 적절한 위치에 있다. 기왕의 군수는 진도에 집이 없이 당선된 뒤 비어있던 관사를 과거 염치없던 전임자들의 선례를 따라 임으로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이제 비워진 관사를 앞으로 2년 동안은 물론 다음 군수도 시대추이를 아는 사람이 되어 공공시설로 주민에게 되돌려주어야 할 것이다. 건전한 시민운동은 염치없는 지도자들에게 각성을 촉구구하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 군수가 집도 없이 군수가 되어 관사에 살며 군수지위를 누리다가 임기가 끝나면 훌쩍 서울로 떠난다면 그것은 보따리장사나 다름없다. 보따리장사들은 자기 점포도 없이 장마당에 보따리를 풀어놓고 재미를 본 뒤 훌쩍 떠나면 그만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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