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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개재에서 숨진 동학군 지도자 유골 반환하라!
솔개재에서 숨진 동학군 지도자 유골 반환하라!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0.08.04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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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 소송 제기 패소에 즉시 항고나서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진도군이 진도에서 효수당한 동학농민혁명 지도자의 유골을 되돌려 달라고 광주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최근 전주시와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를 상대로 제기한 ‘유골 인도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심대로 원고 패소했다.

진도군은 126년 전 진도에서 효수당한 무명의 동학농민혁명군 지도자의 유골을 전주에 안장하려는 전주시 계획에 반발, 지난해 연고를 들어 유골을 반환해 달라는 소송을 냈었다.

진도군동학혁명기념사업회(박주언 박영상 공동대표)는 ‘진도에서 출생하고 진도에서 사망한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의 유골’이라며 유골의 신원을 밝혀주고 유가족에게 관리, 안장에 관한 권리를 넘겨주는 데 있어 전주시나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보다 적절한 위치에 있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이 유골은 동학농민혁명 당시인 1894년 진도에서 일본군에 의해 목숨을 잃은 농민군 지도자(조도출신 박중진 추정)의 머리뼈로 추정되는데, 1906년 목포면화시험장 기사였던 일본인 사토 마사지로에 의해 일본으로 반출됐고 90년이 지난 뒤인 1995년 7월 25일 북해도대 문학부 인류학교실 창고에서 발견되면서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유골 표면 및 첨부된 문서에는 ‘전라남도 진도 동학당 수괴자’라고 적혀있었다.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이후 일본측과 협의를 거쳐 1996년 유골을 반환받았지만 유전자 감식 기술로도 후손을 밝혀내지 못한데다, 안장할 곳을 찾지 못하면서 정읍 황토재기념관을 거쳐 2002년께 전주 역사박물관 수장고에 보관해왔다.

기념사업회는 또 지난 2014년 12월 전주시와 협의, 전주 완산전투지에 안장하는 방안을 논의했지만 진도군의 반대로 유골 화장 및 봉안식이 이뤄지지 않았다. 유골은 지난해 전주 완산공원 내 추모공간(녹두관)에 안장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같이 기념사업회 손을 들어줬다. 장사법에 따라 ‘사망하기 전 치료·보호 또는 관리하고 있던 행정기관 또는 치료·보호기관 장으로 대통령령이 정하는 사람’이라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연고자로서 권한이 있다’는 진도군 주장은 ‘이유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진도군과 진도동학기념사업회측의 입장은 크게 다르다. 너무도 분명한, 유골에 첨부된 ‘전라남도 진도 동학당 수괴자’ 문서에 따라 과거와 달리 보다 발달된 유전자감식을 통해 그 진위를 밝히자는 것이다.

또한 진도읍 솔개재(송현가는 길) 주변을 정비해 진도군 향토역사유적지로 지정, 반외세 호국정신이 깃든 추모공원으로 조성하고 유골반환에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한편 지난 2016년 진도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진도 동학농민혁명의 동아시아적 의미와 그 위상」이란 주제로 전라남도문화관광재단 주관으로 국제학술대회를 통해 진도동학의 역사적 의의를 재조명하는데 앞장서 왔었다. 「피어라 꽃」이란 동학문학을 통해 본 표상공간으로서의 진도를 살펴본 박현옥 목포대 아시아문화연구원은 정이춘자씨의 소설에서 어부 박중진이 어떻게 시대의식을 자각하는 과정 속에서 깊은 울림이 담긴 선언을 표현해낸다.

“모든 사람이 꿈을 꾸면 개벽사상이 반드시 온다”라는 것이다. 발고 오늘의 진도사람들이 힘을 모아 하나의 꿈을 공유하고 실천한다면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으로 역사의 사필규정을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진도군의 적극적인 지혜롭고도 당당한 대응이 요구된다.(박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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