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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읽었으면
벽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읽었으면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0.08.14 2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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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바 강가에서 우리는』 진도출신 박지음 소설집

“제 소설이 무리해서 밝아질 수 없다면 어둡지만, 재미있는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의미가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 ‘의미’ 있는 글을 써나가는 작가로 기억되겠습니다.”

박지음의 첫 번째 소설집 『네바 강가에서 우리는』에는 다양한 모습의 여성들이 등장한다.

이번 소설집은 엉망진창인 세상 속에서 들끓는 욕망을 가진 인물들이 제각기 살아남는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매 작품, 온 힘을 다해 작품 속에 ‘의미’를 담기 위해 애쓰고 있는 박지음 작가는 비극들을 인정하고 그것을 넘어설 때 돌파구가 열린다고 말한다.

현실의 벽 앞에 선 그녀들의 이야기

오래 기다리고 많은 우여곡절 끝에 책이 출간되어 무척 기쁘고 설렙니다. 마치 아이를 출산한 듯한 기분에 내 책이 어디 가서든 사랑받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생활 속에서 겪는 심리적 충격으로 영감을 얻기도 하고요. 작품 대부분은 낯선 장소로 떠났을 때, 그 장소에서 느껴지는 냄새나 시각적으로 발견된 독특함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이렇게 영감을 얻고 나면 그 공간에 대해 조사하고 취재를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표제작인 「네바 강가에서 우리는」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여행을 갔다가 만난 독신 여성들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 후 그녀들을 근 1년은 만나면서 취재를 했습니다. 녹음기를 가방에 넣고 다니는 저를 낯설어하다가, 결국 자신들의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쏟아놓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레드락」 또한, 미국 애리조나주 세도나라는 도시에서 있었던 조카의 결혼식에 갔다가 영감을 얻은 작품입니다. 그곳에서 광주 민주화 항쟁을 화제로 교포들과 저는 토론을 벌였습니다. 저는 광주의 일을 겪고 진상규명집회를 하다가 잡혀가 고문당했던 분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쓸 수 있는 ‘애프터 광주’에 대해서 고심했습니다. 작품을 썼다가 다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습니다. 가정 안에 있는 여성의 심리가 히스테리 외에도 다른 심리적 층위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또한, 돌봄 서사 외에 여성이 가진 ‘유리천장’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습니다.

작품 속 인물들이 겪는 비극을 접하면서 그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을 수 있기를 응원하게 됩니다. 작가님이라면 인물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신지요?

제 소설집 속 여성들은 정은경 평론가님이 해설에서 말씀하셨듯, ‘누런 벽지’를 찢고 나온 여성들입니다. 샬럿 퍼킨스 길먼의 「누런 벽지」라는 단편 속 여성을 말합니다. 진짜 현실 속 비극은 더 끔찍하니까요. 그녀들은 끝내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실제 삶 또한, 그러한 연장 선상에서 계속된다고 생각됩니다. 그녀들이 찾는 돌파구는 자신의 비극을 인정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방법이겠지요.

그 인물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결코 그녀들을 ‘누런 벽지’ 속 여자처럼 내버려두지 않을 거라는 겁니다. 제가 그려낸 단면 속에서 불행했다면, 그 단면을 찢고 나가-미치지 말고- 자기의 길을 찾길 바란다는 것입니다.

진도에서 출생했다는 것은, 성장하면서 저도 모르게 그 지역의 시대적인 사건을 체득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80년 광주의 사건을 몸소 겪지 않았지만, 그 사건을 겪었던 선생님께 지도를 받으며 망월동을 찾아가는 경험을 갖게 됩니다. 「영등」에 살짝 등장하듯이, 팽목항에서 뒤집힌 배는 진도 출신인 제게 자라온 섬에서의 상흔을 떠오르게 합니다. 제가 살던 마을에서는, 동네 분들이 한꺼번에 배를 타고 우수영에 갔다가 배가 뒤집혀 모두 돌아가신 적이 있습니다. 또 그들의 가족들이 겪었던 불행들을 보고 자랐습니다.

제가 자라온 환경으로 인해 저도 모르게 바다는 저에게 힘이 되고, 그래서 저 역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습관적으로 하게 되나 봅니다. 「영등」은 제가 태어나고 자란 섬을 아름답게 표현해보고 싶어 심혈을 기울인 작품입니다. 진도 분들이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해서, 문장의 무게를 덜고 서사도 잘 읽히게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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