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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미술관의 역할, 나에게 묻는다
우리 시대 미술관의 역할, 나에게 묻는다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0.08.1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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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현대미술관과 박주생관장 그리고 일휴

    
  과거와 미래가 있는 당대성을 바라보는 전시 기획력 돋보여
    미술관의 딜레마, 지속성과 새로운 시도의 시나위

 루브르미술관을 간 적이 있다. 바타칸 성베드로성당 내부도 들러보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리자 데오콘다 마담의 초상)의 상반신 하나를 보기 위하여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스푸마토 기법이 무엇인지 나는 제대로 알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구려의 장군총, 강서묘 등의 벽화에 대한 설명을 자주 들었다.  
 우리는 단 한 점의 작품을 직접 만나보기 위하여 그 고단한 발품을 마다하고 찾아가는 것이다. 피리소리에 이끌려 강물속으로 빠져드는 중세독일 아이들을 묘사한 악마의 동화처럼. 해남 녹우당에 소장된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을 바라보면 눈부터 시작하여 온 몸이 빨려들 것 같은 전율에 젖어본 사람만이 진본의 정수를 느낄 수가 있다.
 슬프지만 운림산방의 소치미술관에 들어서면 그거그런 화랑에 들린 이미지를 떨칠 수가 없다. 허 소치의 대표작이라는 운림각도는 선면산수화로 그 화제가 한 노 화가의 삶이 녹아있는 철학시이자 자신이 기거하는 산방의 고아한 이상향을 옮겨놓은 걸작이다. 그러나 너무 아쉽게도 이 그림은 그저그런 복사본에 불과하다. 다른 그림글씨들도 마찬가지다. 입맛이 쓰다.
 3대에서 5대까지 이어지는 이 화맥은 금맥으로 치자면 순도가 너무 떨어진다. 오히려 주변의 풍경과 장풍득수의 길지, 양택명당임에 매료당할 것이다. 그림도 어찌 보면 19세기 한복판 인연의 꿈세계를 거닐며 연운공양 86년의 인생에서 하나의 곁가지일 뿐일지도 모른다. 나의 시 또한 그럴 것이다.
 200년을 넘게 굳굳히 지키고 있는 소나무와 그 앞의 묘자리와 얽힌 집안의 아름다운 사연이 소치 허련선생의 인품과 보은의 따스한 성정을 드러내보여준다. 감나무와 동백나무 몇 그루가 더욱 운치를 더한다. 나는 어린시절 이곳에서 비석치기를 하며 놀았으며 감나무에서 홍시를 따다 떨어지기도 했다. 백설기같은 동백떡을 먹어본 적이 있는가?
 정양 박주생관장은 탁월한 큐레이터이기도 하다. 미술관 운영능력에 대해서는 군 관계자나 진도군의회의원들로부터 전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 분명한 지향점을 갖춘 열정과 투명성을 겸전한 품성을 가진 드문 인물이다.
 큐레이터 직업이 생소한 시절에 진도미술협회 지부장을 역임하면서 ‘사제동행’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내걸고 시작한 전시회는 이제 진도에서 가장 모범적인 선례를 남겼으며 운림산방이 구입하지 못한 작품들을 중심으로 한 허소치 3대 전시회를 열어 놀라움을 주기도 했다. 특히 능호거사 진영은 감상자들에게 감탄과 충격으로 다가왔다. 큰미산의 유작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제주에서 아버지 소치를 따라 추사선생을 만나뵈러 갔을 때 대정마을 과수원 부호였던 분의 초상 귤수소조(제주도 유형문화재 33호 지정)를 아들이 그리고 소치선생이 제를 붙였다.
 그만큼 미산 허은의 작품은 그 희소성이 너무 크다.
 미술관에는 두 개의 열쇠가 있다. 하나는 출입구를 열고 닫는 열쇠이다. 또 하나는 모든 작품들이 감추고 있는 키워드이다.
 이제 지난 6년간 우리 국민의 마음을 할퀴고 원죄감, 시대의 책임공범을 벗어나지 못한 팽목항 건너 맹골수로 세월호 참사를 예술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오늘 우리시대의 미술인, 문학인들이 참회와 다짐이 깃든 참여 미술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낼 것으로 기대해본다. 광주 걸게그림의 시원을 이끌었던 주역 중의 한 분인 홍성담 화백의 「세월,오월」의 작품도 꼭 진도현대미술관에서 바라볼 수 있기를 갈망한다.
 오직 미술인으로 수집가로 우리것을 사랑하며 아끼며 살아온 박주생 관장의 60년 인생의 발자취를 잠깐이라도 더듬어보려면 진도읍 교동리 솔개재 진도현대미술관을 반드시 다녀와야 한다. 여기에 진도의 문화와 예술이 있다. 정치와 사회 변화에 영향을 받는 미술이 대중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도 어느 정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박주생 관장이 갖고있는 평소 지론으로 자주 언급한 단어는 ‘미술관의 역할’이다. 대학과 대주춧돌을 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한 그는 이미 청년시절부터 그의 머릿속에서는 그가 구상하는 미술관에 놓고 기둥을 세우며 하나하나 벽돌을 쌓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자신 만의 소재와 기법을 찾아 끊임없이 창작의 열정을 놓지 않았다. 
 누군가는 말한다. “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당대성입니다. 전시회 기획자들은 당대성에 주목하면서 지금도 꿈틀거리면서 시각적으로 이야기하려는 작가에 집중하고 그들을 통해 현대미술의 지향성, 실험성, 미래성 같은 것들을 보게 됩니다.”
 그는 지금 또 다른 야심찬 기획을 준비중이다. 바로 석현 박은용 회고전이다. 뜻있는 미술인들에게는 오래 전부터 알려진 ‘검은 고독’의 불우한 천재 아웃사이더 석현 박은용씨는 그의 고향 진도에서 오히려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주생 관장은 직접 광주 등 발품을 들여 석현의 작품구입에 힘을 기울였다. 
 쥐잡는 고양이만 편애하는 이 불편한(?) 거친 사회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그는 독특한 전시기획력을 통해 공공 미술관이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사심과 관계성을 배제하고 엄정하고 맑은 눈으로 전시를 기획하는 것과 퍼내도 마르지 않은 창의력이 샘솟
< ‘능호거사진영(菱湖居士眞影)’. 추사 김정희의 제자인 소치 허련(1809∼1892)의 요절한 큰아들 미산 허은(1847∼1865)이 그린 그림이다. 허은의 작품은 매우 귀할 뿐 아니라 완성도 높은 인물초상화이다>

 

는 샘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미술교사를 하면서도 미술밖에 모르는 바보처럼 초지일관 천진난만하게 즐기며 일해왔다. 진정으로 사랑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처럼.
 이번 일휴 김양수 초대전은 그런 면에서 ‘멈추면 보이는 것들’에 대한 묵상의 형상화일 수도 있다. 하나하나가 묵주알이요 염화시중의 꽃이기고 하다. 아니다. 아직 영롱한 빛을 거부하는 상처와 함께 영글고있는 진주의 아픔이 향기처럼 새겨져 있다.
 일탈을 꿈꾸면서도 홍익인간을 잊지않기에 코로나를 극복하고 수평사회 경제 동반성장 그 다음으로 인문학적 예술정신을 충실하게 가꾸는 시대가 우리에게 운명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는 어쩔 수 없는 진도인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오늘도 작가를 찾아다니고 이끼어린 돌과 나비와 박쥐가 박힌 나무에게까지 대화를 나누며 미술 영역이 열린 시민의식을 가꾸며 꽃피는 그날을 기다리며  작가와 작품을 연구하고 있다. 솔개재는 진도의 몽마르뜨 언덕이 되고 있다. 어쩐지 그의 작품 속에서는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이 숨어사는 듯 하다. 아를르강처럼 남천교 강강술래 소리를 처녀허리 춤사위인듯 껴안고 오늘도 진도천이 해창으로 흘러간다.(남인 박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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