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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리와 송가인 그리고 여귀산
앵무리와 송가인 그리고 여귀산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0.09.06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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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사람들에게는 여수에서 돈 자랑하지 말고, 순천 가면 얼굴 자랑하지 말고, 벌교에서는 주먹 자랑하지 말라는 얘기가 있다. 그런데 진도 사람들은 진도에 와서 소리 자랑하지 말라고 한다.

진도는 실로 창과 판소리, 노래와 음악의 고장이다. 창은 진도 사람들의 일상이 되어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구현된다. 누구라도 판소리 한 두 소절은 다 할 줄 안다. 논일하는 농부, 김매는 아낙, 시장통 생선가게 할머니까지 소리를 청하면 즉석에서 구성진 가락을 멋들어지게 뽑는다. 주말이면 판소리, 강강술래 같은 민속 국악공연이 상시 열린다. 한 도에 한 두 명 나올까 말까하는 명창이 즐비한 곳이기도 하다.

진도 고유의 민속예술인 강강술래, 진도씻김굿, 남도들노래, 진도다시래기는 국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진도만가, 진도북놀이, 진도아리랑, 남도잡가, 조도닻배노래, 소포걸군농악 등은 전라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통 민속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곳이 진도다.

작년 미스트롯 진으로 뽑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트로트 가수 송가인도 당연히(?) 진도 출신이다. 어떤 풍수지리가는 우연히 진도에 들렀다가 이 고장에 서린 '소리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송가인이 태어난 고향마을은 진도군 지산면 앵무리이다. 이곳의 진산은 여귀산(女貴山)인데 원래는 여기산(女妓山)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노래나 춤에 능한 기녀의 기운이 서린 산으로, 멀리서 바라보면 여인이 누워있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여기산 바로 아래 마을의 이름은 소리 성(聲)자가 들어 가는 귀성(貴聲)이다. 그런데 귀성마을에는 민족음악을 보존, 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국립 남도국악원이 들어서 있다. 우리나라에 4곳(부산보다 먼저 개원) 밖에 없다는 국악원이 이곳 조그만 섬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우연일까? 아니면 필연이었던 것일까?

또 앵무새 형세의 터에 자리 잡았다는 송가인 고향마을 이름은 앵무리이고, 앞 동네는 장구포, 옆 동네는 북마을(고산마을)이다. 거문고가 운다는 명슬리(鳴瑟里)와 명금(鳴琴)마을도 지근거리에 있다.

우리의 산야에는 어느 곳이나 그 곳만의 독특한 기가 있다. 오래 전부터 불리어 오는 지명에는 선조들의 지혜와 함께 그 땅의 기운이 은연중 스며들게 마련이다. 기의 세계란 참으로 오묘한 것이다. 피부로 느끼고 눈에 보이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느끼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것이라 하더라도 마음 속에 그렇다고 하는 강한 믿음을 갖으면 그것이 곧 현실이 되기도 한다. 귀인이 난다는 옥녀봉 아래에서는 옥녀가 단장하는데 필요한 물건들인 참빗봉, 분통사, 명경봉과 같은 산이름으로 그 터의 기운을 보존하려 했던 것이 지명에 깃든 선조들의 지혜이다.

여기산(女妓山) 아래 귀성(貴聲)마을, 앵무리, 장구포, 북마을, 명슬리(鳴瑟里)와 명금(鳴琴)마을은 진도 땅에 서린 '소리의 기운'을 담고 있는 비보지명(裨補地名)으로 보아야 한다.

진도는 분명 '소리의 기운'이 충만한 땅이다. 선조들은 이미 그 기운을 지명에 반영해 놓은 것으로, 진도가 전통 국악과 다양한 민속음악을 잘 보존하고 수많은 예능보유자를 배출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닌 오래전부터 예견된 터의 기운 때문일 것이다.

송가인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그의 고향집은 요즘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진도군 전체 경제까지 활성화되고 있다고 한다. 진도군에서는 '송가인 마을'이라는 팻말을 붙이고 송가인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인걸지령(人傑地靈)이라 했는데 그럼 송가인의 출현도...?

(이 글은 외부인의 진도찬가글로 지명해석은 현지와 다른 부분이 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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