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은 이제 한숨을 지을 기력도 남지 않았다. 선거가 끝나면 재빨리 잔치도 끝난다. 남은 것은 갈아엎어야 할 문전옥답과 농약대 거름값 농기계 수리비와 대출금 등이 있을 뿐이다.
혹여나 이번 만큼은 하는 초조함과 설레임은 ‘역시나’라는 한탄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피를 말리는 도박판 농사가 해갈이를 하며 진도의 농민들의 미래를 미리 가불해버리고 이삭줍기 개평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조합장 전국동시선거가 끝난지 벌써 한 달도 지났다. 당시에는 “무슨 선거가 이래?” 라는 세간의 불만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위탁선거에다 선거법도 에전과 달라져 선거운동 제한이 더 심해지고 각 후보간 토론회도 유세도 전혀 할 수도 없었다. 조합장 선거의 과열방지와 금품수수 근절을 위한 궁여지책이라지만 오히려 물밑선거운동이 횡행하게 되었으며 말 그대로 깜감이 선거가 되면서 유권자들은 후보자들의 정보에 갈증이 날 수 밖에 없었다.
이는 사실 지난 수십년 동안조합장과 경쟁 후보자들이 불러온 자업자득의 결과이기도 했다. 전국 곳곳에서 매표행위가 범람하고 부정선거 후유증도 너무 컸기 때문이다. 유력 야심가들에게는 조합장 자리가 고가의 연봉에 배꼽이 더 크다는 판공비마저 자의대로 이용하면서 인사권까지 가져 말 그대로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기에 ‘군의원, 도의원 보다 훨씬 실속이 크다’는 뒷담화를 거리낌없이 나누기도 한다.
이렇듯 협동조합의 신성한 본디 취지가 왜곡 변질되고 조합원들이 경영을 위탁해 맡겨놓은 조합장들은 지역 기관장이라고 군수 등 여러 지역기관단체장과 만나는 것을 자랑하며 정작 제 식구이자 상전인 조합원들에게는 코빼기도 내보이지 않는 행태를 답습하게 마련이다.어디가서도 대우를 받고 가문의 영광을 얻는다. 그러니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되고나면 장땡’이라며 혈안이 되어 불나방처럼 달라붙기 작전을 펼친다. 모로 가도 먼저 당선증만 잡아채면 만사형통이 된다.
그런데 지난 농협 조합장 선거에서는 3개 조합 모두 현직 조합장이 낙선하는 이변아닌 이변이 일어났다. 여러 가지 분석이 가능하지만 결과는 조금 의외라는 분위기였다. 설마 그렇기야 하겠는가 라는 찻잔의 돌풍에 불과하거나 인지도의 취약성을 지적하기도 했지만 조합 유권자들은 냉정하고 분명한 선택의 잣대를 갖고 있었다.
반면 전국 상위를 달리는 진도군수협과 산림조합은 무난히 수성을 하거나 단독출마로 무혈입성을 하기도 했다. 뛰어난 친화력과 경영능력을 이미 검증 받았으며 재신임을 하는데 주저하지 않은 선택의 결과였다. 특히 진도군산림조합에서는 처음부터 경쟁후보가 나서지 않아 무투표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그 동안의 현신과 열정 그리고 앞을 내다보는 진취적인 경영능력에 조합원들이 흔쾌히 동의하고 지지한 것으로 읽혀진다.
그러나 이번 전국 조합장 동시선거는 여러 문제점도 드러냈다. 무엇보다 조합원들의 알 권리가 제한되어 균등한 기회제공이 너무 줄어들어 선택권자들이 권리를 침해당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선거인 명부는 현직 조합장이 책임하에 있어 선거를 하기도 전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불만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모 조합에서는 사망자 등 승계 확인 문제로 후보자와 신경을 내기도 했다.
현직에서 설마하다 낙선한 분들의 반성과 새 조합장은 단지 제 능력과 호감도로 되었다는 자만을 버려야 할 것이다. 인심은 아침 자녁으로 달라진다고 했다. 그만큼 전국적으로 특히 진도는 매우 엄중한 시련 앞에 서 있다. 전국적으로는 10명 중 7명의 현직이 재당선되었다고 한다. 벌써 선관위는 선거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지만 무능한 국회가 게으름을 피우면 조합원들이 직접 조합장을 소환하고 투명한 경영 상황을 수시로 검증해야 한다. 자체 감사에게만 맡길 일이 아니다. 가재는 게편이라 않던가. 끼리끼리 나눠먹기 관행의 적폐를 청산시키고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가뜩이나 농어촌이 어려운 시점에서 또 하나의 갑질, 옥상옥 행세가 계속되면 농촌회생은 요원할뿐이다. 수산업 분야에서는 미세플라스틱의 습격이 훨씬 빠르게 다가오면서 생산자들이나 소비자 모두에게 큰 충격으로 해양오염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손을 놓고 있다. 이 모든 사태는 우리 자신이 불러온 재앙의 시발점인 것이다.
이제 조합장을 비롯한 조합원 임직원 지역 공직자, 지자체장은 조속히 대응책을 강구하고 해양쓰레기, 수십년 동안 각종 농약 침출로 농토도 기력을 다해 도시 소비자들로부터 우리 농작물에 대한 믿음도 사라진지 오래다.
조합장들은 선거공보에 적시한대로 공약실천에 집중하며 초지일관 농민을 위한, 농민에 의한 농민의 조합이 되도록 온 힘을 다해야 한다. 각종 농수산물이 가격 폭락으로 봄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조합원들에게 다시 희망을 줄 수 있는 회생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농업은 나라의 근간이 되는 산업이다. 농업자립 없이 선진국이 될 수는 없다. 인류는 이제 건강장수가 트랜드가 되었다. 소득성장을 주도하는 산업은 아니지만 생명산업으로서 그 소중함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보다 안전한 먹거리를 찾는 신인류 호모 사피언스의 기호를 사로잡지 못하면 도태되고 만다. 종자전쟁, 새로운 품종 개발 재배가 진도에도 시행되고 있다. 협동조합과 지자체의 관심과 지원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시점이다. 조합장은 선지자적 혜안을 갖춰 무소의 불처럼 돌파력으로 풍년고지를 점령하여 올 가을에는 다같이 강강술래를 부르도록 하자.(박남인의 오피니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