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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향기를 찾아서
문학의 향기를 찾아서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0.11.25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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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서심(진도문협회원)

급강한 후 다시 상승하는 청명한 초겨울 아침 보성 벌교의 태백산 문학관을 향하여 차는 달린다. 쭉쭉 뻗은 도로 가을걷이 끝난 빈 들판은 햇빛이 좋아서인지 전혀 쓸쓸하지 않다. 도착한 태백산 문학관은 아쉽게도 코로나19 확진자 증가로 인하여 오늘부터 휴관하였지만 약속된 해설사 허 ㅇㅇ해설사님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학관의 건축물, 옹벽의 구조, 재질, 상징 등이 우리나라의 모든 걸 함축하여 하나로 표현하면서 우리의 소원 통일을 염원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표현한 것이라 한다. 안을 들어가지 못하니 밖에서 내부를 들여다보듯 자세한 설명이 이어진다. 이미 몇 번 다녀온 적이 있는 나로서는 안의 것들이 눈에 선하다. 그중 20대부터 80대까지의 독자들이 소설 ‘태백산맥’을 필사한 각각 1m가 넘을 듯한 높이의 진열대, 작품을 완성하기 전 준비과정과 등뼈에 말라붙어버린 창자와 갈비뼈가 앙상한 고행의 부처님을 모셔놓고 작품에 임했다는 작가의 집념에 머리가 숙연해짐을 다시 느끼고 처음 온 회원님들은 아쉬운 마음을 나눈다.

작품 속의 등장인물의 행적을 따라 간단하게나마 젖어 들었다. 무릇 문학기행이란 작품을 읽고 난 직후 오면 훨씬 실감 나고 매우 깊은 감동과 공감이 대사리 밀물처럼 밀려올 것이다. 읽은 지 오래되어 등장인물들의 이름마저 가물가물하였으나 허ㅇㅇ해설사님의 맛갈나는 해설에 힘입어 그나마 더듬더듬 주인공 등을 소환해본다.

꼬막이 주인공인 점심식사 후 문학특구로 지정된 장흥 천관산 문학관으로 오른다. 장흥읍과 오붓한 들판이 한눈에 훤히 내려다보이는 천관산 자락에 고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이 고장 출신의 문학인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자랑스럽게 알리고 있다. 과연 문학특구에 걸 맞는 장흥이다. 한승원작가의 딸 한강이 그냥 나왔겠는가 민초들의 가슴을 후벼 파는 이청준작가가 그냥 나왔겠는가. 부러운 마음이 은근히 든다.

짧은 해는 벌써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우리일행은 강진으로 향한다. 강진은 주로 다산초당 아니면 청자박물관, 영랑생가 등을 찾는데 특별히 강진미술관을 찾았다. 개인이 소장한 미술품 등을 무료로 전시한 곳인데 볼거리가 많았다. 수억년 된 규화석(나무가 돌화석이 됨), 종류석 등 추사글씨, 겸재그림 그리고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한 이름의 북한작가들 그들이 그린 대작들은 아름다운 자연 풍광들이 보는 이를 빨아들이는 것 같다, 지극히 우리의 원형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편안한 느낌이다. 한 켠에는 인어처럼 매끈한 몸매를 뽐내는 여인들의 군상이 같은 여성이 봐도 매우 매혹적이다.

뒤편에 오르니 한 시대 동편제를 풍미했던 임방울, 이화중선이 풍류를 즐겼다는 고풍스런 한옥. 강진읍이 내려다보이고 들녘 끝 가우도까지 눈에 들어온다. 참 좋기도 하였겠다. 그 옆에 전시되어있는 아니, 지금 당장 운행할 수 있는 12억짜리 승용차, 김정은이 구입하여 타고 다닌다는 외제 무슨 차라 하는 옆에서 차 주인처럼 사진 찍고(줘도 안 가질 거다 왜? 유지비에 실은 운전면허도 없으니) 웃자고 한 마디씩 던진다.

 

날이 저물어짐에도 불구하고 대흥사를 들렀다. 이 저녁 끝에 와보니 느낌은 또 다르다. 올라가는 길가 아담한 팻말에 새겨진 이 지역 시인들의 시를 읽으며 가는 걸음은 또 다른 쏠쏠한 재미를 준다. 우리 진도도 세방 낙조나 운림산방 등에 하면 좋겠다 싶었다. 처음 온다는 회원님은 여러모로 느끼는 바가 깊었다고 한다. 나 역시 처음 와서 보았을 때 그랬었다.

대웅전 앞 광장에 서니 높은 산이 서른여섯 폭 병풍에 안겨있는 느낌이다. 과연 대가람은 대가람이다. 젊어 혈기왕성할 때 이 산의 정상 두륜봉, 가련봉 등을 삼복더위에 올랐고 결혼 전 친정엄마와 둘이서 호젓함을 즐기며 운 좋게 대웅전에 들어가 두덕돈방애(낡고 헐거워진 솜 누비저고리)를 입은 스님과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고 종교관에 대하여 제법 심오한 대화까지(뭘 안다고?). 애정이 꽃피던 신혼시절 남편과, 한창시절 부부동반 나들이, 이곳에서의 낡은 흑백사진 속의 젊은 시아버님 모습 등이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이미 밤이 되어버린 7시 넘어 불빛으로 단장한 쌍무지개 닮은 들보 진도대교를 내려다보며 우리일행은 따끈한 차를 음미하며 오늘 하루를 더듬으며 웃음에 소리까지 양념처럼 넣으니 화기애애해져 모두 얼굴이 꽃이 되고 향기까지 날려고 한다.

보배스런 진도. 예부터 시 서 화 창의 고장이라고 일컫고 자부하는 편안하고 멋진 곳, 모나지 않고 엄마 품처럼 가장 아늑한 내 고향 진도. 이제는 민속예술특구로 지정되어 서 화 창은 내세울 정도로 잘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는 매우 아쉬운 면이 많다. 조선시대의 많은 유배자들의 시가 전해져오고 있으며 그 분들의 영향으로 문장가들이 있었고 근세에 특히 타지방에서 알아주는 진도출신 평론가 김현과 정경옥 등이 있지만 고향에서 전혀 조명 받지 못하고 있으니 매우 아쉬운 일이다. 적어도 다른 지역에 거의 있는 문학관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현대를 살아가는데 있어 최첨단의 디지털문화에 젖어 즉흥적, 자극적, 빨리 문화가 대세지만 기다림과 삭힘의 우리문화의 진가가 빛나듯이 져버릴 수 없는 독서와 글쓰기의 진가(차분하게 마음을 정리하여 심성을 다듬는)를 져버릴 수는 없다. 문학관 설립이 이뤄지길 염원하면서 진도문협의 문학기행을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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