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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마지막 거장 금봉 박행보
우리시대의 마지막 거장 금봉 박행보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0.12.22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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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山을 훔쳐보고 詩를 건지다”

 시화(詩畫)에 서(書)와 역사의식 갖춘 대가

   

 강산(江山)은 인물을 낳고 시대의 대가는 강산을 빛낸다. 진도의 바다와 산야는 그런 대가들의 피어린 각고의 수련과 배움의 향기로 오늘까지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금봉은 특히 진도의 조종산인 금골산의 금강 봉우리를 상징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화인들은 과거의 전통 선비의식이 다 채우지 못하고 기술연마에 머문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소치 허련은 권돈인에 이어 삼절로 칭송을 받았다. 늦은 나이에도 침식을 잃고 옛 서적과 시화에 몰두하여 마침내 압록 이동에는 견줄 수 없는 화선으로 불려 당시에는 86세라는 장수를 누린 연운공양(煙雲供養)의 경지에 이르렀다. 운림각도의 화제는 소치의 노년 삶의 정수를 선ㅁ병하게 보여준다. 하여 오늘날까지 운림산방은 호남을 뛰어넘은 대한민국의 역사 명승지로 자리잡았다.
 바로 그 안에 금봉미술관이 들어서 있다. 묵죽의 병풍은 죽림을 이룬다. 하여 금봉은 “강산을 훔쳐보고 시를 건지다”라는 경지에 다다르어 후학들에게 끝없는 귀감이 되고 있다. 금봉의 역사 의식은 다산(茶山) 정약용의 시를 화제로 삼은 절창의 작품들을 태동하였다. 바로 애절양이다.
 나는 진도군과 진도문화원에 허 소치의 운림십경을 소재로 한 작품을 기획 제안하도록 몇 번이나 부탁하였으나 군의 담장자들은 그저 굿과 춤바람에 취한 아낙들의 치맛자락에만 이끌려 소중한 시간들을 허비하였으니 참으로 한탄스럽기만 하다. 시문(詩文)과 역사의식이 깃든 천년의 작품으로 또 하나의 진도 보물이 될 기회를 까먹고 있는 듯하다. 지금이라도 이런 문화사업을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진도가 자랑하는 여러 문화유산과 전설을 바탕으로 한 시화를 만나보기가 힘들다. 부로장생의 진도구기자나 진돗개의 영민함과 귀소성을 담은 작품을 찾을 길이 없다. 관매팔경도 마찬가지다. 최근 고향에 돌아온 동외 정명돈 화가의 작업은 하나의 귀감이 된다. 자기 변화라는 것은 무법이 아니라 자신만의 법도를 찾는 또 다른 구도의 여정이다.
 생은 끝없는 배움의 길이다. 공자나 퇴계, 다산 초의 소치 등이 그러하였다.
 세상사람들이 그림을 귀히 사랑하지 않는다고 한탄하기에 앞서 자기연마와 시대와의 치열한 싸움과 소통이 더 먼저여야 한다. 사람은 가도 자연은 무진(無盡)하다.

우리가 겸재나 단원을 끊임없이 재해석하고 감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수(米壽)를 앞둔 금봉 박행보 화백이 비록 광주 빛고을에 머물고 있지만 그 음영과 서광은 늘 옥주고을에 자리하고 있다. 대나무는 대금의 천년소리를 담고 있다. 그 청풍의 고아함은 세월이 갈수록 더 그윽해진다.
 진도의 산야는 그런 대가들의 ‘붓질’을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다. 금봉을 비롯한 옥전, 전정 등 우리시대를 빛낸 묵향을 수놓은 진정한 화인들이 진도의 역사와 바다 그리고 강산과 기꺼이 만나야 한다.
 다시 한 번 진도군과 진도문화원에 거듭 부탁을 한다.(박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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