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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역사문화원형의 미래
진도 역사문화원형의 미래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0.12.25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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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호 칼럼리스트. 군내면 금골

가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서 대나무 잎사귀는 소스락거리고 무당의 주술은 정점을 향해 치닫는 듯 북소리도 숨이 가빠지고 있었다. 마침내 무당이 묵은 체증을 토해내듯 마지막 비명을 지르고 나자 대나무를 붙들고 있던 아낙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무당은 아낙에게 뭔가를 묻고 아낙은 평소와는 다른 목소리로 사자를 대신하여 답을 했다. 필자가 어릴 때 본 것이 혼건짐 씻김굿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유년시절, 추석 대보름에는 동네 부녀자들이 모여 강강술래를 하며 밤공기를 가르는 일은 일상이었다. 상쇠가 진두지휘하는 풍물패는 온 동네를 휩쓰는 것으로도 부족하여 마을회관에서 마지막 흥을 토해내고 막걸리로 목을 축였다. 초등학교 가을 소풍으로 기억된다. 커다란 돌덩이가 담을 이루다 무너지다 한 곳을 거쳐 억새가 무성한 산등성이에 올랐다. 용장산성이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아이들을 모아놓고 선생님께서는 한참을 더 말씀하셨지만 땡볕을 이기지 못하고 이내 오락시간으로 바뀌었다. 머리가 커지면서 그 날 삼별초를 말씀하셨겠구나 짐작하였다. 80년대 말까지만 하여도 명절에 귀향 대절버스를 타고 고향에 온 적이 많았다. 그런데 서울에서 진도까지 오는 그 먼 길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마이크를 돌리면 사양하는 법이 없다. 후배 향미는 어디서 진도아리랑을 배웠는지 그 모습에 반하여 나도 훗날 직장 회식 자리를 진도아리랑으로 곧잘 마무리하는 사이비 엔터테이너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진도인의 삶 속에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와중에 문화, 역사, 그리고 예술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5종 국가중요무형문화재(이 중 2종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인류무형유산이다), 5종 지방무형문화재, 그리고 사적지와 명승지가 도처에 널려있는 곳이 진도이다. 문화와 예술은 진도인의 삶 그 자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서로 밀접하게 엮여있다. 필자 또한 이러한 역사, 문화적 토양에서 낳고 자랐다. 할아버지께서 쇠를 두드리고, 축문을 읽으시고, 족보를 손수 붓으로 쓰시고, 기분 좋게 막걸리를 드시면 소리를 흥얼거리시던 모습을 보면서 자랐으니 천부적으로 진도를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나이 들어 귀향을 하고 보니 진도의 문화 예술에 대한 시각이 깊어졌다. 우리가 즐기면서 보존하고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나이 들어 전공을 바꾸어 가면서까지 만학에 도전하게 된 배경이다.

필자는 전라남도교육청과 진도교육지원청이 지원하는 마을학교를 2년째 운영하고 있다. 우리 울돌목꿈쟁이마을학교의 금년 대표적인 사업은 진도 역사문화여행이었다. 후배들에게 고향의 문화를 이해하고 문화와 예술에 대한 감수성을 갖춘, 소위 맥커쳐와 크로스가 주장하는 의도적 문화관광자가 되기를 희망하였다. 코로나 19가 기승을 부리면서 시간에 쫓기어 피상적이고 일상적 관광자에 머문 부분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파인과 길모어가 체험경제이론에서 주장하는 오락적 요소를 강화하여 지속적으로, 그리고 확대실시한다면 문화융성의 초석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큰 틀에서 문화와 예술 발전에 대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방자치는 이를 실현할 수 있는 통로이기도 하다. 각 기초자치단체마다 지역의 특색을 살리는 행정을 펼칠 수 있다면 과거와는 확실히 다른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문화와 예술의 기운이 왕성한 진도에서 위의 당위성을 논하는 것은 군더더기일 뿐이다. 전문영역의 일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 진도처럼 작은 지자체는 더욱더 명운을 걸고 도전해야 한다. 결국은 시스템이다. 진도군의 행정체제에서 2개의 국장직을 현재처럼 운용하는 것이 효율적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한다. 문화·예술을 관장하는 국장직을, 또는 문화예술재단을 조속히 설립하고 그 직을 외부 전문가에게 개방하여 임기제로 하면 자치단체장의 진퇴와 상관없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교육지원청 또한 문화예술 특화팀을 운용해야 한다. 문화는 이제 단순히 즐기는 수준을 넘어 제조업을 능가하는 굴뚝 없는 산업이다. BTS를 봐도 모르겠는가?(이철호 칼럼리스트. 군내면 금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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