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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외(東外) 정명돈 화가를 찾아서
동외(東外) 정명돈 화가를 찾아서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0.12.25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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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외 정명돈

 우리의 그림 속에서는 자연과 인간이 협주하는 음률이 담겨있다. 특히 산수화는 오케스트라를 떠올리게 한다. 시대의 고뇌까지도 고이지 않고 강물처럼 흐른다. 이 그림들이 저수지에 비치는 그늘처럼 세상 밖으로 제대로 울려나가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화가들의 고투가 계속되고 있다. 더 넓은 세상을 적셔야 할 그림들이 자꾸 박제가 되어가고 있다.

 

 됭외 정명돈 작가는 매우 정적인 듯하지만 장쾌한 폭포의 직류를 담고 있다. 진도군의회 의ᄉᆞᆼ 벽에 걸린 그의 작품은 압도적이다. 이백의 시가 절로 떠오른다. 동외는 흔히 진도에서 ‘동밖에’라 불린다. 진도읍 동외리를 뜻한다. 동쪽은 서광이 가장 먼저 닿는 곳이다. 그의 호가 담고 있는 또 다른 뜻은 객관화이다. 단순한 직정으로 자연을 담지 않는다. 삶이란 가까이 가면 비극이요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다던가. 격물치지는 간격이 필요하다.
 한국화에서 특히 남도산수화는 이단의 세계로 내몰리고 있다. 부단한 자기변화에도 세상 사람들은 좀체 눈길을 주지 않는다. 스스로 유배를 당한 사람들이 남도의 화가들이다. 석현 박은용은 옥주를 벗어나 화순으로 은거하였다. 금봉(박행보)은 더 먼저 빛고을의 무등의 자락에서 대나무의 비움과 곧음을 생의 좌표로 삼았다. 옥전 강지주 화백은 청록산수로 당신만의 구경(究竟)을 열었다.

 

 진도의 화인들은 외롭다. 고향의 바람은 늘 따뜻하지는 않는다. 명량의 바다처럼 회오리를 감기도 한다. 시인들에게는 그 천형을 탱자나무 울타리로 기꺼이 둘러쳤다. 진도는 어느새 민요의 땅이 되었다. 아무도 그림 속에서 음악을 찾지 않는다. 지음(知音)이 사라진 세상.
 그에 대한 자료를 살펴보면서 지난 2005년 광주 나인갤러리에서 열린 「정면돈 존」에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미술관미술비평을 담당했던 장영준씨는 많은 글을 담았다. 애정이다. 하지만 정작 동외(東外) 화백에 대한 심곡보다는 누구에게도 적용하는 자연화법을 이야기해 약간의 아쉬움을 준다. 분별이 없으면 글이 아닌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활발하고 무엇이 지적되어야 하는지 나는 그 현란한 수사법에 고개를 젖는다. 이게 전형적인 예식장의 주례사가 아니겠는가. 이런 해법은 한국산수화의 미래를, 그 대자연의 철학을 몇 구절로 덧칠하는 행위에 머물 뿐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진도 출신 정명돈 한국화 작가는 “전통미술이 사라지고 있는 시점에 개인전을 개최할 때마다 전통 남도미술의 가치를 현대인들에게 선 보일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 생각한다”고 말한다.
 산은 높고 물은 깊다 하였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유홍준 전 문화부장관이 책을 엮을 때 제목으로 삼았다. 정작 그 글씨는 진위논란에 얼켜버렸다. 그가 강조했던 ‘아는 만큼’을 벗어난 혼돈이었다. 차라리 유희(遊戲)가 좋았다. 노는 경지는 아무나 다다르지 않는다.
 다시 잠깐 돌아가보자. 장영준 연구관은 당시 “속필에 능한 작가는 먹의 순간적인 변절이나 일필휘지의 필체를 이용하여 생동감 넘치는 정경을 잘 묘사한다고 설명하였다. 여기에 기운생동과 담백이라는 용어를 입혀주었다.
 그 분의 해석은 매우 뛰어나지만 담백과 여백의 간격, 또는 현장 사생 자연풍경에 대한 인식이 너무 평면적이다라는 생각을 떨치기가 힘들다. 묵을 많이 쓰지 않으면서도 대상을 즉시하기보다 간껴에 대해서 그 거리에 대해 붓보다 먼저 마음을 다스리는 기다림이 아닐까 한다.
 화가들이 또는 작가들이 자기를 세상과 투영하는 방식은 다를 수도 있지만 어떤 규범과 시대의 강박에서 풀려난 자유를 내 보이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쾌감과 소통을 얻는다.
 동외(東外)는 마음의 되돌아감으로 나의 자연, 더 멀고 멀수록 가까운 자연, 깊이 하고 또 그윽하고 신독하고 대자유를 찾는 것이 아닐까 한다.
 단원의 집안에서의 퍼질러 앉은 모습을 보라. 빈센트 반 고흐는 자기 병실을 거리감으로 바라보았다. 이건 쉽지 않다. 겸재는 망원경을 쓰지 않고도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다 담고자 하였다.       

 

(정명돈의 ‘고요’)
 나는 늘 시가 없는 그림은 없다는 지론을 펼쳐왔다. 모든 풍경은 생명의 노래가 담겨있다. 정명돈의 작품 자연은 인위적인 재해석에 앞서 생명의 소리가 바람과 물결을 타고 끊임없는 교감을 추진한다. 기이함이나 괴력난신을 찾지 않고 사람의 눈을 모든 사물에 초점을 맞춘다.
 동외(東外) 정명돈은 전남대 예술대학 미술학과 동양화전공을 마치고 인천대 교육대학원 미술교육전공 석사학위를 받고 정통의 화업길을 밟아와 광주 문화예술상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역임했으며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 한국화 구상회 회장으로 있다. 아래 그림은 볼매섬의 하늘다리를 화폭에 담은 작품이다. 세한도를 소묘하는 시인들의 갈망을 듣게 된다. 이 또한 천년의 바다에서 길어올린 설화가 붓꽃처럼 피어나고 있지 않는가.(남인 박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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