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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타지아 진도
환타지아 진도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19.05.13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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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한바퀴, 제22집 발간한 김영승 시인

 

환타지아 진도

-진도 한바퀴, 제22집 발간한 김영승 시인

 

표지에서부터 각 부별로 진도의 옛사진 실어 더욱 정감어려

노래하는 진도마을사 압축 백미, “그 섬에 사람이 살고 있더라”

김영승 시인이 벌써 회갑을 맞아 스물 두 번째 뜻 깊은 시집을 냈습니다.

이번 시집은 보배섬 전체 마을 발품 팔아 진도 대장정의 압축, 즉흥식의 자유로운 수법으로 마치 현대시조를 접하는 듯한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시집에서는 궂이 평론가의 입을 빌리지 않고 「환타지아 진도」, 시집 자체로서 독자들을 만나고, 고향을 떠난 향우들과의 정감어린 소통을 이루고자 한 것으로 읽힙니다.

무려 203개의 진도 마을시를 쓰면서 “보다 사실적인 근거에 입각해서 설화집과 각 면지를 바탕으로 대장정의 길을 가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진도 출신이라면 모두 한권씩 소장하셔도 좋을 듯 싶습니다.”며 그 동안의 여정과 고향사랑의 또 하나 인고의 꽃향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이번 ‘환타지아 진도’는 분명 훌륭한 시집이지만 진도의 인문지리를 읍면에서 마을별로 구분하여 마을 유래, 지명들은 물론 특산물, 진도만의 풍속들을 재미있게 풀어놓았다. 그러면서도 운율을 놓치지 않고 하나 하나 마을 문화역사를 짚어가며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정성을 다하였다는 자긍심이 매 시마다 어려있음을 알게 됩니다.

본인도 밝혔지만 이런 시집은 없었습니다. 저기 자신에 대한 서술, 시대의 고뇌를 함께 껴 안으며 얼마나 큰 속울음을 삼켜야 했는지 지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선거를 해 본 사람만이 아는 그 애환, 작업화 밑창이 다 떨어지도록 현장을 누비며 진솔한 그 마음 하나를 고향 의사당에 심고자 했던 열정을 다 접지 않고서 이번에는 ‘환타지아 진도’를 빚어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스물 두 번째 시바퀴를 굴리다

“벌써 스물 두 번째의 바퀴를 굴렸습니다. 제가 진도에서 1959년에 태어났으니 올 해 회갑을 맞이하였습니다.

저는 진도 전체마을을 돌아다니면서 구석구석을 파헤치고 차츰 어르신들이 떠나가고 마을의 유래마저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에서 마을의 유래를 건지고 싶어서 뛰어들어 진도를 돌아다니면서 작은 것 하나라도 소중히 여겨 귀동냥하면서 기록해 진도 전체 마을에 대한 시를 써 왔습니다.”고 그간의 과정을 담백하면서도 시인의 길이 무엇인지를 세삼 일깨우고 있습니다.

그는 열정의 화신이다. 올 해도 어김없이 ‘환타지아 진도’라는 제목으로 우리 앞에 다가선 현봉(峴峯) 김영승 시인.

마을이 살아나고 사람이 돌아오는 꿈

첫 번째 열린시로 진도읍 동외리를 비롯하여 쌍정리(통정 두정) 옥천극장의 애환을 담고, 큰샘거리 성내리, 구기자 장수마을 북상리, 조금난리, 동학농민운동의 역사가 솔개재에 흐르는 송현리, 갈파래와 매생이 국을 끓여 거리제를 모시는 염장마을 풍속, 간척사업으로 많이 지도가 달라진 곳들도 속속 놓치지 않았다. 고군면은 무내미 오일시, 힘센 장수들이 모여사는 석현리는 시인의 안태 마을이다. 벅수거리 솟대가 근자에까지 서 있었다. 한 때 치소가 있었던 고성마을, 자자일손 경주이씨 도론리, 진도의 제1 관문을 자랑하던 벽파리, 효자 효녀 많은 오산리,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하여 지막골은 단 마을로는 고군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몸이 아픈 아가씨가 모래찜을 해 나았다는 모새미, 뽕나무가 많았던 뽕골 향동리, 해태양식을 가장 많이 하는 신비의 바닷길 열리는 회동리, 작은 섬이지만 명문당 서당에서 문인을 배출하였으며 문맹자가 없단다.

군내면 세등리는 시등 12정려 현풍곽씨 며느리 지아비 사랑. 또 하나의 고려 오랑국의 수도가 있던 용장리, 방귀똥 저수지 둔전마을, 석장승을 모시는 장승제가 유명한 덕병마을, 노둣돌을 놓았던 효자비가 있는 월가리, 아흔아홉골짜기 물이 많은 정자리. 겨울 온수, 여름 냉수나는 동서샘 한의마을, 물레방아 돌아가던 분토리, 태극기가 365일 달린 송산리.

의신면은 우항천이 흐르는 궁녀둠벙 돈지리, 생기동이라 해 아기를 낳으면 생기동이라 불린 향교리, 일제강점기 농민운동 펼친 침계리, 쌍계사 새벽종소리 잠을 깨어 나서보니 첨찰산 산유화가 어서 오라 사천리, 옻나무로 덮여있고 서당(로암재)이 유명한 칠전리, 유와 김이익의 순칭록 썼던 창포리, 명금면 소재지가 있던 신정리, 미역바위와 아름드리 소나무 많은 송정리, 수군만호가 머물던 금갑은 뻘과 바람과 수온이 맞은 최고의 바다. 진도 최초 예배당이 드어섰다는 옥대리, 구룡목과 효자 시묘살이 전설 흐르는 청룡리. 구슬을 꿰어 놓은 연주리, 송천기미 황범도를 바라보는 송군에 대명리조트 들어서고 풀이 많은 허정무 축구마을 초사리.

임회면 상미실은 광대들 농악놀이에 신선이 구경하다 승천하지 못하고 옥녀탄금형 명당 안은 중미리, 호랑이 출몰 심해 소나무 심고 액맥이굿 치던 용호리. 광지원 원집 겸 선술집 유명했던 광전리. 진도에서 최초로 심청전 신파극단 생긴 선항리, 여귀산이 여자가 노래하는 형국에 흥을 돋구기 위해 북을 치던 고정리. 매화나무 아래 바닷물 들락거리던 매정리, 왕살이도깨비 춤추던 폐동 사령. 독다리 10일장이 서던 석교리. 거북이 똥이 열매를 닮았다는 구분실. 마방역이 있고 서당으로 유명한 상만리는 구암사 비자나무 효험이 전해온다.

국립남도국악원 아리랑마을 조성된 귀성마을은 남극노인성이 평화를 지켜준다. 봉은 죽실을먹는다는 죽림리, 진도에서 최초로 전기가 들어왔다는 탑립. 굴포양지머리 갈하골 윤선도 간척사업 백동리. 서망리와 팽목구미 지나 지산면은 민속놀이고장 인지리, 감목관이 관마청에 근무하던 관마리. 부귀만당, 서기만당, 화기만당 삼당리. 양목한 말을 선발했던 개들리 고야리. 앵무새를 닮아 앵무리. 한천동이라 불린 길은리에는 살마들 북적거리는 홍콩이 있다. 소포리는 소개리로 거문고 혈이어서 소포로 시집온 사람도 소리를 잘하고 농악을 즐겨해서 문화재까지 되었다. 검정쌀의 진도 시배지이다. 소재 노수신이 유배와 19년을 산 안치리. 초가지붕에 터를 잡아 부아대로 불린 보전리는 전복 양식단지 최적지 부자마을이다.

동백사 전설 서린 와우리. 민물새우, 붕어 가물치 많은 봉암저수지. ㄷ오백사 스님과 사랑을 나눈 여인의 은장도가 떨어져 생긴 장도. 선원과 눈맞은 처녀가 기다리다 생을 마친 처녀봉 전설과 질매재 세방낙조는 진도의 자랑거리다.

조도 읍구는 흔히 꼴기미로 불리었으며 지주식 김발을 많이 하였다. 여섯골짜기가 있는 육동에는 지근두골에 상수원이 생겼다. 멸치잡이 부자마을 신전리, 창고를 맡은 도감 거주하던 창리는 돈대산 병풍처럼 감싸안고 어리기미, 큰재 너머 신들백이 활복 어류포리. 육지로 도부가게 간 남편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는 애기업은 바위 산행리. 관방이 있던 맹성리는 연도교가 이어지고 꽃게잡이 파시가 열리던 섬등포 애환은 시와 노래로 옮겨갔다. 불의불형이 가사도는 톳양식이 주업이란다. 활을 매는 독거리 같다하여 독거도는 돌미역으로 천하가 알아준다. 지산목장 속장으로 관청이 있었던 관사도. 닻배놀이 무형문화재 40호 지정 주역 사라진 라배도. 이밖에도 내외병도, 동거차도, 파시 때 후조처럼 여인들이 몰려들던 동지나해 전진기지였던 서거차도. 세월호 슬픈 역사의 물골이 흐르는 맹골도로 이 시집은 대단원을 내린다.

그의 진도사랑은 끝이 없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강강술래요 끊어질 듯 다시 이어지는 진도아리랑의 매김소리처럼 진도를 스무번 백번 돌고 돌며 살아갈 천상 진도의 시인이다. 다작은 성실함과 다독, 그리고 더 많은 현장 답사가 있을 때 가능하다. 그 어떤 조건도 비교도 내세우지 않는 절대의 사랑 그것 만이 가능케 한다.

 

 

이 보소 사람들아/ 한번 물어나 봅시다

진도에 아리랑은/ 아리랑이 많이 들어가야 좋으요

스리랑이 많이 들어가야 좋으요

그래도 아라리가 낳겠지라이~

우리 인생살이는

굵고 짧은 것이 좋으요

가늘고 긴 것이 좋으요

인생따라 다르겠지라이~

우리 농부님들은

밭에 보리 심는게 나으요

논에 논보리 심는게 나으요

밭에 배추심고 논에 나락 심어야제라이~

진도에 예술인들은

그림 그리는게 낳으요

글 쓰는 시인이 더 나으요

어찌 예술인을 함부로 따진답디여~

그래 그게 답이 제라.(시 ‘사람들아’중에서)

사람들아

진도에 오면

사람이 그냥 좋아

사람 속에 살고 싶어 살아가는

어느 시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나 오소.(‘진도에 오면’ 중에서)

“긴~ 병에 효자가 되겠습니다.” 김영승 시인은 어머니에 대한 깊고 애틋한 효성을 언제나 품고 살아온 시인이다. 삼백예순다섯날 앞만보고 살아온 세월 속의 어머니는 늘 눈 속에 어른거린다.

김영승 시인은 지난 해 제21시집 ‘진도사랑’을 냈다. 진도에 살면서 진도를 더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시인 김영승. 사랑하는 아들 ‘조국강산’이 논산훈련소에 입소부터 제대까지 절절한 자식사랑을 엮은 것이다.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장애인과 함께하는 문학 ‘당산문학’을 학전 박재곤씨에 이어 온 힘을 다해 이끌어가고 있다. 현봉은 제20시집 ‘홍주 한 잔 마음 한 잔’을 내면서 ‘가장 부지런한 시인으로 남고 싶어 오늘도 열심히 쓴다’라고 하였다.(박남인 기자)

김영승 프로필

아호_현봉峴峯, 1959년 진도 고군 석현리 출생, 초당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졸업, 송원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월간 《한국시》 등단(1992),

진도타래시문학회(1~2대 회장역임), 전라남도문인협회 이사 역임, 전남문학작가협회 사무국장 역임, 전라남도문인협회 부회장 역임, 국제 PEN클럽 전남지회 이사 역임

현) 당산문학회 회장, 현) 김영승창작교실 원장, 현) 진도예총 (문협) 대의원

수상: 정진문학상 수상, 전라남도지사(예술부문)공로상 수상, 전남문학상 수상, 대한민국향토문학 공로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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