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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에너지 정책, 새로운 시각 접근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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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19.05.1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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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칼럼

원전 핵폐기장에 대한 추억

원전 핵폐기장에 대한 추억

진정한 친환경 에너지, 정치적 판단은 지양해야

 

십년 도 훨씬 넘었다. 경기도 화성 지역, 여자들만 대상으로 한 연쇄살인사건은 지금까지 미제사건으로 우리에게 남겨 있다. 영화에서는 ‘살인의 추억’이라는 기묘한 재목으로 크게 흥행에 성공하였지만 분명 우리에겐 ‘추억’이 아닌 끔찍한, 또 하나의 세월로 인식되고 있다. 이 때를 앞뒤로 진도에서는 느닷없이 원전 폐기물 처리장 유치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청정한 진도에 엄청난 재앙을 불러올 ‘환경 오염’이라는 정치적 여론재판에 오른 것이다.

원전 트라우마는 당시 진도의 21세기를 열자마자 담박에 옥주고을의 최고 이슈로 떠 올랐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지역경제활성화를 내세우며 원전(중저준위 폐기물 처리장)을 찬성하는 자들은 환경파괴주의자들이었으며 당장 진도에서 추방되어야 할 대상으로 지목되었다. 나도 시민단체와 함께 당연히 철마광장에서 텐트를 치고 반대 서명운동에 앞장서 참여하였다.

당시 진도에서는 가사도와 지산면 금노마을이 적지로 거론되기도 했다. 물론 현지 주민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단지 소문에 불과하였다. 진도 내에서 이곳 두 군데가 지반이 탄탄하고 여러 지형지리적으로 가장 적합한 곳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군민(이미 여론층을 확고하게 형성한 시민단체)들은 아예 핵폐기장이 진도로 들어오는 것 자체를 거부하면서 공론화의 장도 거부하였다.

좀 엉뚱한 비유지만 노자는 말하였다. “모두가 다 좋아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좋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논리를 펼쳤다. 모두가 좋아하는 이, 모두가 착하다고 인정하는 이를 의심하라는 뛰어난 예지력은 아직도 유효하게 적용된다. 90%를 넘는 지지도는 거짓말일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핵폐기물 반대대책위원회에서는 상여를 매고 철마광장을 돌며 한 방에 폐기장 논란을 잠재웠다. 전반적으로 진도군민들의 의사가 반대로 결집되었으며 유력한 차기 군수 후보자들도 여기에 별다른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우리가 혐오하는 ‘혐오시설’은 사실 우리들의 혐오스러운 욕망의 열차에서 슬며시 내려놓은 쓰레기 하치장에 불과하다. 우리가 먹고 쓰고 버린 것들의 집결체인 것이다.

정부 정책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흔히 ‘순실바’라 한다. 농민들은 마늘을 심으라면 양파를 심고 양파를 심으라 하면 마늘을 심는다. 아이를 낳으면 대대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진도군의 딱한 사정도 이해되지만 이런 정책이 실효성을 갖는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다고 공직자들을 폄하하고 그들의 정책 발상들이 단지 탁상이론에 불과하다고 비난하지도 않겠습니다. 대통령도 장관도 해결하지 못하는 최고 현안입니다.

오늘 날 지식인 계층에서는 정부를 비판하고 삐딱하게 사회를 바라보아야 자신의 존재가치가 드러나고 자신의 역할을 다한 듯이 거드름을 피운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정권이 서슬푸를 때 찍소리도 못하던 자들이 억압이 사라지자 누구보다도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언론에서 학계에서 정부를 까부수고 국민의 뇌를 오리무중으로 몰고 가야 ‘언론이 살아있네’라는 소리를 들었다. 반대만 하면 정의로운지 부화뇌동하면서 얼마든지 공론화 과정을 거쳐 지역민들의 소통과 합의를 이뤄내야 하지만 권력의 눈치를 살피고 이권을 먼저 챙기려 했다. 장관이나 기관단체장, 무슨 협회장 감투를 은근히 기대하였다.

정부가 하는 일에 딴지를 걸고 불신을 조장하면 지성적이거나 양심적으로 보이는 풍조는 스스로 자의식을 폐쇄하고 올바른 판단의 잣대를 들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정부와 국민에 협조하고 공감하면 쪼잔하고 범생이같고 무작정 얼굴을 붉히며 비판하면 ‘용감한 지식인’이 되는 이분법만 앙상하게 드러나는 사회로 경직된다.

여기에 우리에게 ‘천년의 고도’로 알려진 경주시가 전격적으로 핵(원전) 폐기장 유치로 돌아서자 ‘아차’ 한 발 늦었다며 이 곳 저 곳 지자체들이 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유는 하나였다. 미국선거에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식으로 대한민국에서도 거의 모든 지자체들이 지역경제 활성화와 주민복지 예산확보를 위해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찾아 연옥을 헤매이거나 미노스궁의 황소와 일전을 마다하는 오늘의 영웅 지자체장들의 애처러운 행위가 안타깝기만 하다. 그렇다고 덥석, 위험수당도 확인하지 않고 정부 시책에 싼 값으로 동의를 해버리면 더더욱 ‘매군노’ 소리를 듣는다.

어느 현자는 광야에서 외친다. “공직자여.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라!”며. 나는 애써 ‘살인의 추억’을 되살리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자가 반대하거나 “모두가 좋아하는 것을 좋은 것으로 알면 이는 좋지 않다.”는 노자의 도덕경 한 구절이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다. 목소리 큰 자가 이긴다면 요즘의 자유한국당을 이길 만한 정당은 없다. 진도는 전복 해삼사업 유치에 이어 ‘대명 선&비치 리조트 건설, 진도 타워 엘리베이터 시설, 세월호 진도 유치와 관련 많은 의견이 난무하고 이제 여기에 진도항 석탄재 매립문제가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있다. 보다 투명하고 공개적인 절차를 통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알리고 군민들의 협조를 구하거나 설득하려 해야지 그저 법에 따라 해결하겠다는, 영혼없는 답변은 군민의 분노만을 사게 만든다.

’조금만 더 신속하게 대응했다면 분명 잡을 수 있었다.‘는 한 형사의 고백은 ’살인의 추억‘을 잊혀지지 않는 트라우마로 반복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어떤 트라우마와 싸우며 지난 5년을 바다 기름띠와 진도산 수산물 판로 부진 속을 헤쳐나가고 있는 것인가.

가장 먼저 구조에 나섰으며 전쟁도 아닌데 한 밤중까지 조명탄 아래 고기들이 돌아오지 않는 피해를 감수하며 살고있는 동거차도, 조도 주민들의 또 다른 슬픔에 석탄재를 끼얹은 경우를 불러일으킨 당사자, 책임자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가.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며 도 다시 강행을 할 것인지, 처음부터 절대 석탄재를 쓰지 않겠다 공언했던 군수의 책임있는 대책을 내놓을 것인지 안타까움만 커진다.

세상은 보다 실질적이고 굉장히 구체적이다. ‘미래를 위해 남겨놓은 땅’이라는 말을 언제까지 우려먹을 것인가. 오월의 시인 김준태가 ‘기차는 떠나가고 똥개만 남아 짖는다’고 아픈 각성을 노래한지도 30년이 넘었다.

우리들의 자랑스러운 진도의 딸, 가인 송은순은 밤바람을 타고 찾아왔지만 무릎까지 푹푹 쌓이는 적폐도, 미세 플라스틱의 공포도 우리들의 식탁에서 떠나지 않는 이 오월에.

원전 핵폐기장에 대한 추억

한국 에너지 정책, 새로운 시각 접근 필요하다

진정한 친환경 에너지, 정치적 판단은 지양해야

십년 도 훨씬 넘었다. 경기도 화성 지역, 여자들만 대상으로 한 연쇄살인사건은 지금까지 미제사건으로 우리에게 남겨 있다. 영화에서는 ‘살인의 추억’이라는 기묘한 재목으로 크게 흥행에 성공하였지만 분명 우리에겐 ‘추억’이 아닌 끔찍한, 또 하나의 세월로 인식되고 있다. 이 때를 앞뒤로 진도에서는 느닷없이 원전 폐기물 처리장 유치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청정한 진도에 엄청난 재앙을 불러올 ‘환경 오염’이라는 정치적 여론재판에 오른 것이다.

원전 트라우마는 당시 진도의 21세기를 열자마자 담박에 옥주고을의 최고 이슈로 떠 올랐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지역경제활성화를 내세우며 원전(중저준위 폐기물 처리장)을 찬성하는 자들은 환경파괴주의자들이었으며 당장 진도에서 추방되어야 할 대상으로 지목되었다. 나도 시민단체와 함께 당연히 철마광장에서 텐트를 치고 반대 서명운동에 앞장서 참여하였다.

당시 진도에서는 가사도와 지산면 금노마을이 적지로 거론되기도 했다. 물론 현지 주민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단지 소문에 불과하였다. 진도 내에서 이곳 두 군데가 지반이 탄탄하고 여러 지형지리적으로 가장 적합한 곳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군민(이미 여론층을 확고하게 형성한 시민단체)들은 아예 핵폐기장이 진도로 들어오는 것 자체를 거부하면서 공론화의 장도 거부하였다.

좀 엉뚱한 비유지만 노자는 말하였다. “모두가 다 좋아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좋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논리를 펼쳤다. 모두가 좋아하는 이, 모두가 착하다고 인정하는 이를 의심하라는 뛰어난 예지력은 아직도 유효하게 적용된다. 90%를 넘는 지지도는 거짓말일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핵폐기물 반대대책위원회에서는 상여를 매고 철마광장을 돌며 한 방에 폐기장 논란을 잠재웠다. 전반적으로 진도군민들의 의사가 반대로 결집되었으며 유력한 차기 군수 후보자들도 여기에 별다른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우리가 혐오하는 ‘혐오시설’은 사실 우리들의 혐오스러운 욕망의 열차에서 슬며시 내려놓은 쓰레기 하치장에 불과하다. 우리가 먹고 쓰고 버린 것들의 집결체인 것이다.

정부 정책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흔히 ‘순실바’라 한다. 농민들은 마늘을 심으라면 양파를 심고 양파를 심으라 하면 마늘을 심는다. 아이를 낳으면 대대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진도군의 딱한 사정도 이해되지만 이런 정책이 실효성을 갖는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다고 공직자들을 폄하하고 그들의 정책 발상들이 단지 탁상이론에 불과하다고 비난하지도 않겠습니다. 대통령도 장관도 해결하지 못하는 최고 현안입니다.

오늘 날 지식인 계층에서는 정부를 비판하고 삐딱하게 사회를 바라보아야 자신의 존재가치가 드러나고 자신의 역할을 다한 듯이 거드름을 피운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정권이 서슬푸를 때 찍소리도 못하던 자들이 억압이 사라지자 누구보다도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언론에서 학계에서 정부를 까부수고 국민의 뇌를 오리무중으로 몰고 가야 ‘언론이 살아있네’라는 소리를 들었다. 반대만 하면 정의로운지 부화뇌동하면서 얼마든지 공론화 과정을 거쳐 지역민들의 소통과 합의를 이뤄내야 하지만 권력의 눈치를 살피고 이권을 먼저 챙기려 했다. 장관이나 기관단체장, 무슨 협회장 감투를 은근히 기대하였다.

정부가 하는 일에 딴지를 걸고 불신을 조장하면 지성적이거나 양심적으로 보이는 풍조는 스스로 자의식을 폐쇄하고 올바른 판단의 잣대를 들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정부와 국민에 협조하고 공감하면 쪼잔하고 범생이같고 무작정 얼굴을 붉히며 비판하면 ‘용감한 지식인’이 되는 이분법만 앙상하게 드러나는 사회로 경직된다.

여기에 우리에게 ‘천년의 고도’로 알려진 경주시가 전격적으로 핵(원전) 폐기장 유치로 돌아서자 ‘아차’ 한 발 늦었다며 이 곳 저 곳 지자체들이 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유는 하나였다. 미국선거에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식으로 대한민국에서도 거의 모든 지자체들이 지역경제 활성화와 주민복지 예산확보를 위해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찾아 연옥을 헤매이거나 미노스궁의 황소와 일전을 마다하는 오늘의 영웅 지자체장들의 애처러운 행위가 안타깝기만 하다. 그렇다고 덥석, 위험수당도 확인하지 않고 정부 시책에 싼 값으로 동의를 해버리면 더더욱 ‘매군노’ 소리를 듣는다.

어느 현자는 광야에서 외친다. “공직자여.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라!”며. 나는 애써 ‘살인의 추억’을 되살리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자가 반대하거나 “모두가 좋아하는 것을 좋은 것으로 알면 이는 좋지 않다.”는 노자의 도덕경 한 구절이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다. 목소리 큰 자가 이긴다면 요즘의 자유한국당을 이길 만한 정당은 없다. 진도는 전복 해삼사업 유치에 이어 ‘대명 선&비치 리조트 건설, 진도 타워 엘리베이터 시설, 세월호 진도 유치와 관련 많은 의견이 난무하고 이제 여기에 진도항 석탄재 매립문제가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있다. 보다 투명하고 공개적인 절차를 통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알리고 군민들의 협조를 구하거나 설득하려 해야지 그저 법에 따라 해결하겠다는, 영혼없는 답변은 군민의 분노만을 사게 만든다.

’조금만 더 신속하게 대응했다면 분명 잡을 수 있었다.‘는 한 형사의 고백은 ’살인의 추억‘을 잊혀지지 않는 트라우마로 반복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어떤 트라우마와 싸우며 지난 5년을 바다 기름띠와 진도산 수산물 판로 부진 속을 헤쳐나가고 있는 것인가.

가장 먼저 구조에 나섰으며 전쟁도 아닌데 한 밤중까지 조명탄 아래 고기들이 돌아오지 않는 피해를 감수하며 살고있는 동거차도, 조도 주민들의 또 다른 슬픔에 석탄재를 끼얹은 경우를 불러일으킨 당사자, 책임자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가.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며 도 다시 강행을 할 것인지, 처음부터 절대 석탄재를 쓰지 않겠다 공언했던 군수의 책임있는 대책을 내놓을 것인지 안타까움만 커진다.

세상은 보다 실질적이고 굉장히 구체적이다. ‘미래를 위해 남겨놓은 땅’이라는 말을 언제까지 우려먹을 것인가. 오월의 시인 김준태가 ‘기차는 떠나가고 똥개만 남아 짖는다’고 아픈 각성을 노래한지도 30년이 넘었다.

우리들의 자랑스러운 진도의 딸, 가인 송은순은 밤바람을 타고 찾아왔지만 무릎까지 푹푹 쌓이는 적폐도, 미세 플라스틱의 공포도 우리들의 식탁에서 떠나지 않는 이 오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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