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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내면의 ‘만감’ 담아낸 강성원 화백의 공필인물화
인간 내면의 ‘만감’ 담아낸 강성원 화백의 공필인물화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1.05.06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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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원 교수 초대전 ‘삶-기억된 肖像(초상)'이 4월 21일부터 27일까지 서울시 인사동 동덕아트갤러리에서

강성원 교수 초대전 ‘삶-기억된 肖像(초상)'이 4월 21일부터 27일까지 서울시 인사동 동덕아트갤러리에서 열렸다. 이번 초대전에는 강성원 화백이 정통 초상화 기법으로 비단에 그린 대작 15점을 새롭게 선보였다.

그는 이번 전시작품에 관해 “인간 삶에 있어서 내적인 마음의 이미지를 표정으로 담아내려 했으며, 특히 여성들의 섬세한 농축된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강성원 화백의 공필인물화는 1점을 완성하는데 6개월이 넘게 걸릴 정도로 지난한 과정을 거친다. 선으로 인물을 묘사하기에 일견 평면적으로 보이나 다층적 채색으로 완성한다. 즉 ,이선조형, 평면설채,수류부채 기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작들은 당초 미국에서 열릴 개인전에서 선보일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연기되어 이번에 초대전을 갖게 되었다. 윤상준 갤러리 제이에스에이 대표는 “강성원 화백의 새로운 초상화 작품들은 인간 내면의 ’만감‘을 담아내고 있다며” “그가 새롭게 천착하는 새롭고 경이로운 작품세계가 격조 높은 향기로 국내외 초상화 작품의 영토를 넓혀 나가기를 기원한다.”고 응원했다.

강성원 화백은 서울대 동양화과를 거쳐 동국대 교육대학원에서 미술교과교육을 전공했으며, 중국으로 건너가 중앙미술학원에서 문학 석사과정을 이수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교육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그렇지만 그는 서울 충암중학교에 다닐 때는 야구 선수였으며, 고등학교 때는 정치인을 꿈꿨다. 서울대 미대에 들어간 것은 ‘아무래도 정치를 하려면…’이라는 것도 이유가 되었다고 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학생운동도 열심히 하고, 걸개그림도 그리며 시위도 이끌었다. 하지만 결국 화가가 되었다. 돌과 화염병 대신 붓을 들고 5만원권 신사임당 초상화를 그린 이종상 화백 밑에서 공필화(채색 인물화)를 배우며 대법원 벽화나 강원도 영월 장릉 옆의 엄흥도 기념관의 벽화 작업에 참여하며 전통 채색화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유명 동양화가인 부친(옥전 강지주)의 영향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아니다”라고 단호히 답한다. “아버지가 유명하기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도 없었으며, 아버님은 전통 산수화를 하고 저는 채색화 쪽이니 동양화를 한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도 없습니다. 아버지는 세밀하게 작업하는 나를 보고 ‘나이 들어서도 이것 할 수 있겠느냐’라고 걱정해주신 것이 전부이다.”고 말했다.

 

그의 유년기를 지배했던 추억. 세 살 때 진도에서 서울로 올라왔음에도 진도의 골목길과 동백을 선연하게 기억하고 있으며, 공필인물화를 그리는 그의 화폭에는 동백도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동백을 가장 아름답게 그리는 화가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현재 성균관대 교육학과 초빙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국내외에서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통해 활발한 작품세계를 펼치고 있다. 과천국립현대미술관(미술은행), 아주대학교, 한국방송공사(KBS), 전북대학교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작가는 앞으로도 “자유롭게 인간의 희로애락을 담아내는 작품들을 선보이고 싶다”고 전했다.(채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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