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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시절 그노래 부른 송가인 ‘화류춘몽’, 1940년대 기생들의 통곡 재현
그시절 그노래 부른 송가인 ‘화류춘몽’, 1940년대 기생들의 통곡 재현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1.05.28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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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가는 역사 앞에 솔직하다. 탄생 시점의 시대 이념과 대중의 감성을 고스란히 품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대중가요 100년사에 걸린 노래 88만여곡을 발표 연대별로 줄을 세우고,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해부해보면 역사의 단면을 살필 수 있다. 2019년 송가인이 1940년 이화자가 부른 노래 ‘화류춘몽’을 리메이크해 그 시대가 품었던 한을 ‘통곡(痛曲)’했다.

꽃다운 이팔청춘 울려도 보았으며

철없는 첫사랑에 울기도 했더란다

연지와 분을 발라 다듬는 얼굴 위에

청춘이 바스라진 낙화일세

(마음마저 기생이란)

이름이 원수로다

점잖은 사람한테 귀염도 받았으며

나이 젊은 사람한테 사랑도 했더란다

밤늦은 인력거에 취하는 몸을 실어

손수건 적신 적이 몇번인고

(송가인 ‘화류춘몽’ 가사 일부)

1940년 발매된 이 노래는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절절한 가사를 어찌하면 좋으랴. ‘이것이 화류춘몽의 슬픈 얘기다/ 기생이라고 으레 짓밟으라는/ 낙화는 아니었건만/ 천만 층 세상에 변명이 어리석다.’

노래는 기생들의 삶의 애환을 상대하는 신분 계층별로 적확하게 묘사했다. 그래서 대중가요를 시대의 서사라고 하며, 축소된 인류학적 잣대라고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노랫말의 ‘괄호( )’ 부분은 멜로디 없이 속삭이는 듯한 토크라서 더욱 귓전에 울린다. 당시 이 노래를 들은 기생들이 자살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니 그 화제성이 짐작이 가지 않는가.

‘화류춘몽’이 발표된 1940년대 우리나라 조합원 기생은 2000여명. 그 시절 기생 노래는 ‘산 팔자 물 팔자’ ‘꼬집힌 풋사랑’ ‘홍도야 우지마라’ ‘에레나가 된 순이’ 등이다. 기생은 시(詩)·서(書)·화(畵)·악(樂)·무(舞)에 능하여, ‘천민의 몸, 양반의 머리’라고 일컬어졌다. 당대 인기가수 투표 결과를 보면 기생 출신이 많다. 왕수복·선우일선·김복희·이화자 등이었다. 버드나무에 꽃이 피는 절기는 봄날, 봄 처녀 가슴팍에 꽃불이 활활 타는 때다.

이 노래를 부른 이화자는 본명이 이순재(1916∼1950년)다. 기생이 아니라 주막집 주모였다는 설도 있다.

송가인은 전남 진도 출생으로 1986년생이며, 본명은 조은심이다. 어머니는 ‘진도씻김굿’의 이수자인 송순단씨이며 2019년 ‘내일은 미스트롯’ 진(眞)에 등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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