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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교수의 남도진성
김영식 교수의 남도진성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1.07.23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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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도진성

                                                                                 김영식.군내면 녹진출생.한국해양대학교 명예교수

진도의 남도진성 남문 기와 용마루가

푸른 하늘 흰 구름을 배경으로 휘영청 솟아있고

천년 역사가 묻혀 있는 석성에는

푸른 이끼가 끼어 세월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 반도 남쪽의 내 고향 진도는

오랜 옛 부터 남해와 동해를 연결하고

대륙과 일본열도를 연결하는 통로로

지정학적 요충지였다.

그 진도의 맨 남쪽 끝 임회면 남동리에

삼국시대부터 성을 쌓고 왜구의 침략에 방비해 왔으니

그것이 바로 저 남도진성의 원형이다.

남도진성에는 고려시대 삼별초의 처절한 역사가 서려 있어

옷깃을 여미게 하는 민족의 성지이다.

한반도가 몽골의 말발굽아래 신음하고 있던 고려 중엽

결연히 일어선 배중손 장군의 삼별초는

                                                                                               배중손장군

대한 민족의 자존을 위해 타올랐던 불꽃이었다.

강화도에서 몽골지배의 개경 환도를 반대하고 온 왕을 추대하여

1천 여척의 배로 진도에 상륙한 삼별초는

용장산성을 구축하고 왕궁을 세워 황제국가의 위용까지 갖추었다

그리고 몽골지배의 정부군과 싸워

삼남 지역을 장악할 정도로 그 세력을 확장하였으니

삼별초군은 곧 한반도에서 몽골군을 몰아내고 자존감 드높은

민족국가를 세울 수 있다는 희망으로 그 기개가 하늘을 찌를 듯 하였으리라

그러나 려몽 연합군의 십만 대군을 대적할 수 없어

용장산성이 불타고 패주의 신세로 전락하여 진도 왕무덤재에서

온 왕의 목을 베이는 치욕을 당해야 했다니 그 처절함이 어떠했으랴.

그리고 이곳 남도진성에서 배중손 장군은

민족의 자존감을 위해 최후의 일각까지 장렬히 싸우다

목숨을 바쳤으니 그 기개와 혼, 민족정신이 어찌 거룩하다 하지 않겠는 가

그래서 여기 남도진성은 외세의 침략에 저항하여

분연히 일어선 민족정신의 횃불의 상징으로

길이 보존해야 할 보물일 것이다.

그러한 민족정신이 내 고향 진도에는 면면히 흘러

국가의 위기 때 마다 민초들의 봉기가 있었으니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 시 병역과 강강수월래 군무의 참전이며

가까이는 세월호 참사 시 고향사람들이 보여 준 동포애 정신이다.

오늘 내 무딘 유화 붓으로 남도진성의 이끼 낀 석성이며 단청 누각을

그리다가 고향 진도의 역사성에 새삼 자부심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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