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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 비엔날레 주도권의 확보
수묵 비엔날레 주도권의 확보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1.08.04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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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호 전 진도문화원장. 향토진흥원장

 

비엔날레라는 본뜻은 이태리말로 ‘2년 걸려 한 번’이란 뜻이라 한다. 이탈리아에서 1895년 첫 전시회를 연 뒤 세계각처에서 같은 형식을 갖춘 미술 전시회가 열리면서 으레 대규모 전시회에 붙는 이름이 되었다.

한때 현대미술, 행위 미술 등 전위미술 전시회의 이름처럼 쓰여다가 근래에는 사진 전시회, 영상전시회, 디자인전시회, 조명예술전시회, 음악회, 미디에이션 등 여러 반면의 전시회 이름에 붙여 쓰이다가 드디어 진도·목포에서 열리는 수묵 비엔날레가 시작되었다.

광주 비엔날레는 1995년 처음 열린 현대미술전이지만 이제는 건축, 미디어아트류 까지 여러 형식을 아우르지만, 생각보다 주목을 받지 못해 돈 먹는 하마 꼴이 되고 말썽마저 잦다.

이 경우를 보면 진도 수묵 비엔날레도 운용의 묘를 살리고 관광자원의 하나로 육성하려면 지역 나름의 여건조성에 힘써야 한다. 특히 이 전시회가 전남도청 주관행사로 기획이라 운영팀이 목포에 있어서 진도는 명목상 공동주최자이고 장소만 빌려주는 꼴이 되어 행사의 주 무대가 목포에 집중되고 있는 점도 아쉬운 점이다.

본디 전시회는 진도에 뿌리를 둔 남종화이고 남종화 중 여러 물감을 동원하여 그리는 채색 한국화를 제외하고 먹물만으로 그리는 먹그림만을 떼어내 수묵화라 하여 전시회의 특색을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그 시초는 중국의 왕유(699~761)에 두고 있는데 그는 당대의 시인으로 붓글씨도 잘 섰고 산수화에도 능했다.

그는 시중유화(詩中有畵) 화중유시(畵中有詩)라는 말로 그림과 시와 글씨가 다 한가지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전문채색화공의 그림과 구별해 문인화(文人畵) 또는 선비화라 하여 후대사람 중에서는 글씨 자체를 그림처럼 그리는 글씨마저 그림으로 보는 유파도 생겼고 오늘날에는 서양의 현대미술을 본받은 듯 글씨인지 그림인지 모르게 먹을 휘둘러 자신의 속내를 표현하는 수묵화로 변질하기도 했다. 이 점에서 보면 서예가였던 소전 손재형 씨도 수묵화 작가로 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소전은 글씨만 쓴 것이 아니라 먹그림도 그린 때가 있었다.

진도 수묵화의 원조는 역시 소치 허련(허련. 1809~1892)이다. 그는 스스로 중국 왕유의 호를 따 자를 마힐((摩詰)이라 부를 정도로 수묵화를 주로 그려 ‘묵모란’(허 목단) 작가로도 불렸다. 서울 중심의 동양화를 중국의 북종화에 견준다면 소치 중심의 전라도 동양화는 남종화이고 문인화이며 수묵화이다.

이 화맥이 미산 허형, 남농 허건, 의재 허백련으로 이어져 수묵화 개최지로 목포와 진도가 선정된 것이다. 그러므로 진도군은 운림산방의 소치 일가만을 내세우다 보면 진도 수묵화의 경계가 좁아진다.

목포는 남농계, 광주는 의재의 백련회(鍊眞會)계열 인맥이 모두 진도 수묵화의 맥이고 그 화맥의 영향을 받은 화가 수는 5백 명을 넘어설 것으로 짐작된다.

화순 출신 근원(槿園) 구철우 씨는 진도 출신 화가가 뛰어났기 때문에 그 휘하에서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지만 가장 큰 공로자는 소전 손재형 씨라고 필자에게 말한 바 있다. 그는 비록 정치에 참여한 뒤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지만 진도사람들은 너무 소전의 공적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근래 화제가 되고 있는 인왕산도나 추사의 세한도 등이 모두 소전의 수집품들이다 그분이 식물인간처럼 7년간 누워있는 동안 몰래 이병철씨 등에게 팔려간 숨은 사연들을 들으면 애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근원 구철우씨는 소전이 서울에서 예총회장을 지내고 정치를 하면서 의재와 남농 등 진도사람들을 국전심사위원에 넣고 서예분야에서 대통령상을 준 것 등 그 공로를 다 말할 수 없다고 하였다. 특히 전라도 사람들이 동양화에서 주도권을 잡은 것도 소전이 욕먹어가면서 전라도사람들을 국전에서 입선, 특선에 많이 집어넣어 유명화가를 만들어주었다고 주장했다.

물론 진도에는 가장 먼저 소전전시관이 생겨 대우하고 있지만 이런 기회에 재조명하는 것도 의의있는 일이 될 것이다.

덧붙일 일은 소치 이후 그 자손뿐 아니라 의재 소전 등을 망라한 그 제자들의 화맥을 정리해 진도수묵화 화맥도를 작성하고 더 나아가 대표작가들을 모아 도록을 만들어 전시기간 동안 판매했으면 싶다.

이런 작업이 이뤄진다면 목포수묵화인맥은 결국 진도수묵화의 곁가지임을 비엔날레 참가자들에게 재인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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