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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농업의 활로를 다시 생각해 본다
우리 농업의 활로를 다시 생각해 본다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19.06.10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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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해마다 프랑스 파리 근교에서는 농업박람회(Salon International de l’agriculture)가 열린다. 1844년 가축 경연대회에서 유래한 이 박람회는 1964년부터 일반에게 공개되어 대회마다 약 60만명이 다녀가는 유럽 최대의 농업 관련 박람회다. 축구장 20개 넓이의 전시장에 수천마리의 가축이 등장할 정도로 규모가 커서 전시장을 다 둘러보려면 온종일 발품을 팔아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다.

[정운찬 칼럼]우리 농업의 활로를 다시 생각해 본다

지난 2월 말에 열린 올해 박람회의 주제는 ‘여성, 남성, 재능(des femmes, des hommes, des talents)’으로 인간과 땅의 근접성과 근원적 뿌리를 강조하였다. 특히 2016년부터 열리는 Agri 4.0 전시는 농업 분야의 디지털 혁신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한 디지털 농장, 농업 분야에 최적화된 앱, 생산부터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관리하는 프로그램 등을 선보였다.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가에 따라 문화적 DNA가 만들어진다. ‘문화(culture)’라는 단어는 ‘경작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쿨투라(cultura)에서 유래했다. 어떤 작물과 짐승을 키우는가에 따라 삶의 양태가 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는 장소에 따라 변용되기도 한다. 들판(agri)에서 경작하는 것은 농업(agriculture)이고, 꽃을 가꾸는 것은 화훼(floriculture)이며, 정원에서 가꾸면 원예(horticulture)라 한다. 현대에 와서 문화의 정의는 다양하지만 언어, 도덕, 가치관 등을 포함하는 ‘사회 전반의 생활양식’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날 선진국들은 농촌을 잘사는 사회로 만들었다. 달리 표현하면 자기만의 문화를 잘 보존하고 발전시키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프랑스는 2017년 기준으로 농업인구가 0.7%에 불과하지만, 농업생산은 GDP의 3.5%를 차지하는 농업 선진국이다. 프랑스의 농산물은 유럽의 17%를 차지하고 있으며, 프랑스 국민들은 농업국가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들은 다양한 치즈와 와인 등의 농산물로 국민적 정서를 공유하고 나아가 프랑스만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또한 친환경과 유기농을 중심으로 농업의 효율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농업과 디지털을 결합하여 농업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농업박람회에 프랑스 역대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빠짐없이 참석한다는 사실에서 프랑스 농업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 농촌의 현실은 어떤가. 아직도 농업소득이 낮은 것은 둘째치더라도 갈수록 우리 고유문화의 중심이라는 지위마저 흔들리고 있다. 2017년 현재 농업인구는 242만명, 전체 노동인구의 4.8%이지만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7%에 불과하다. 게다가 1인당 농가소득은 1652만원으로 국민 1인당 GDP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이러한 농업의 어려움은 농촌의 공동화를 만들고, 고유의 공동체적 정신을 약화시키고 있다.

농업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민간 차원의 노력은 꾸준히 있었다. 특히 자유무역협정(FTA)으로 피해를 본 농어업과 혜택을 입은 기업 간 상생협력을 위해, 기업들의 자발적 기부로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을 조성하기로 한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2017년부터 매년 1000억원씩 10년 동안 1조원을 조성하는 게 당초 목표였다. 그러나 2019년 5월 현재 모금액은 약 544억원에 그치고 있다.

농어촌기금은 2015년 여·야·정 합의로 농어업인 장학 사업, 복지 증진, 정주여건 개선, 기업과 농어업의 협력사업 지원 등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FTA로 피해를 본 농어업인에 대한 시혜적 차원이 아니라, 농어촌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기업 비즈니스 기회의 확대에 기여하고자 한 것이다. 실제로 농어촌기금은 공공 투자만으로 해결이 어려운 농어촌 현안에 민간 부문의 참여와 투자를 유도해 문제 해결의 물꼬를 터온 마중물 역할을 해왔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농어촌기금은 지난 2년간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예를 들면 제주도 서귀포 한라봉 농가는 커피 찌꺼기로 만든 친환경 비료로 한라봉을 생산하고 있다. L사에서 커피 찌꺼기 비료를 무상으로 공급해 농가의 지출은 줄고, 토양개량 효과로 한라봉의 상품성은 높아졌다. 그리고 품질이 좋아진 한라봉을 다시 L사에서 매입해 자사 음료의 재료로 사용하여 농가와 기업 모두의 매출 증대를 도모하고 있다.

화력발전소의 온배수를 간척지의 스마트팜 조성에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S발전은 35억원을 농어촌상생협력기금으로 출연하여 충남 태안군 이원간척지 내에 1㏊ 넓이의 한국형 첨단 유리온실 및 스마트팜을 조성하여 곧 준공을 앞두고 있다. 스마트팜은 에너지비용이 운영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이를 발전소에서 배출하는 연간 약 30억t의 온배수 중 일부를 원예 단지 난방 열원으로 재활용하여 에너지비용을 연간 70~80%까지 절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농작물을 키우기 적합하지 않은 간척지를 비옥한 땅으로 바꾸고, 이를 통해 농가의 소득과 일자리를 창출하여 지역 경제를 살리는 새로운 상생협력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농업이 지난 60년간 압축성장 과정에서 홀대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현재 농업을 사양산업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없지 않다. 그러나 농업의 다양한 가치와 가능성을 새롭게 인식한다면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 이미 유럽의 선진 농업국들은 농업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곡물 위주의 농업에서 벗어나 낙농, 화훼, 농기계와 설비, 스마트팜 등에 기업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농업을 첨단산업으로 발전시켰다. 그래서 여느 산업 부럽지 않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우리는 왜 동반성장을 말하는가. 어렵고 도달 불가능할 것 같은 가치이지만, 동반성장을 위해 각 주체가 실행하는 하나하나의 노력들이 우리 사회가 극단적 양극화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게 막아주는 안전망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특히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동반성장만큼이나 도농 간 동반성장은 국가 발전과 국민의 지속 가능한 삶에 필수적인 과제이자 꼭 해결해야 할 사안임을 각별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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