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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초대전 /예향진도’가 선정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시리즈
이달의 초대전 /예향진도’가 선정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시리즈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1.08.16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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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나’를 일치하는 수묵세계

           삶의 閑日과 진경에 빠져드는 ‘힐링 산수화’   

   임농 하철경 8월 4일~10일 인사아트프라자 개인전

              묵법 설채법 준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하철경 화백
 간결과 압축, 생략과 여백
 그는 치열하다. 그러나 그 작품의 정수는 오히려 비움이다. 또한 나눔이다. 남농 허건 선생의 수제자로 남종산수화의 맥을 이어온 전통수묵화의 거장인 하철경 화백은 최근 진도군과 ‘임농 하철경 화백 작품 기증 협약식’을 체결했다. 하 화백은 한국, 중국, 일본, 독일, 미국, 프랑스, 싱가포르 등에서 개인전 62회를 비롯해 독일 루카스화랑, 독일 괴테박물관, 일본주재한국문화원, 뉴욕 퀸즈미술관, 프랑스주재한국문화원, 세계아트페어 등 960여 회의 국내외 유수의 그룹전 및 초대전에 참가하며 역량을 발휘해왔다.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예총 예술문화상 대상, 전라남도 문화상, 올해의 최우수예술작가상, 제14회 대한민국문화예술대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임농 화백의 작품은 생명의 근원과 만물의 본질, 빛과 색의 눈부신 조화, 그리고 변화의 놀라운 이치 등이 올곧게 배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수묵의 원숙한 농담 처리와 감각적인 담채의 산뜻한 조화를 통해 전통과 현대의 아름다운 소통을 지향하고 있는 하철경 화백이 필선으로 그림을 시작해 필선으로 마무리할 정도로 필선을 중요시해온 결과다.

  단 하나의 길, 세상에 번지는 수묵의 향
 오는 8월 4일부터 10일까지 인사아트프라자에서 개인전을 갖는 임농 하철경 화백은 1977년 남농의 문하생으로 남종화에 입문한 작가다. 원래 서양화를 공부하다 군제대 후 한국화로 방향을 튼 것이다. 하철경 화백은 한동안 이판(작업)과 사판(미협이사장,예총회장)을 병행한 작가다. 세상일에 정답은 없지만 나름의 명답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작업에 전념하게 되면서 그런 노정들이 남농 허건 선생의 예술혼에 제대로 다가가기 위한 통과의례였다고 여긴다.
 “선생님은 셋방살이 시절 겨울에 찬 마루바닥에서 작업하시다 동상이 걸려 왼쪽발 무릎 아래를 절단하는 아픔을 가지셨던 분입니다.”
 실제로 절박한 사연이나 자녀 학비 문제로 남농을 찾는 이들이 많았다. 그럴때마다 아낌없이 그림을 내줘 해결할 수 있게 해줬다.
 “1970년대만해도 남농선생님의  그림은 바로 현찰이 되는 시대였습니다. 전국에서 남농그림을 사려고 목포작업실에 진을 칠 정도였으니까요. 인근 숙박업소에 머물며 작품을 기다리는 이들도 많았어요. 남농선생님은  그런이들의 숙박비도 챙겨주었지요.”
 남농은 임농과 겸상을 할 정도로 무척 아꼈다. 수석을 좋아했던 남농은 의족으로 탐석을 못하게 되자 전국을 수소문해 수집을 했다. 역이나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수석들은 임농이 리어카나 어깨에 메서 날라야 했다. 남농은 작업실 곁에 수석관을 마련할 정도로 수석마니아였다.
 “제겐 수업료도 안받으셔서 대신 심부름을 해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수석관을 지을때도 질통에 돌과 시멘트를 나르며 공사를 도왔지요.  수석관이 완성되자 선생님은 이제부터는 우리집에  머물며 그림공부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야 숙식까지 해결되니 좋았지요.”
 남농은 임농을 그동안 곁에서 지켜보며 사람됨됨이를 살폈던 것이다. 임농은 남농 큰딸의 딸을 배필로 삼게 된다. 임농이 남농의 외손녀사위가 된 것이다. 한국 남종화의 화맥과 더불어 혈맥(가맥)의 인연까지 맺게된 셈이다.

 “한 분야에 10년은 매진해야”
 “선생님은 문하입문때 저에게 각오를 물었습니다. 10년이상은 매진해야 붓이 겨우 살아 움직인다며 그렇게 할 수 있겠냐고 하셨지요.” 그는 당시는 몰랐지만 화업의 세월은 그것을 깨닫는 과정이었다.
 “너무 관념에만 빠지면 안된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현장사생과 실경을 많이 접하라고 당부하셨지요.” 그는 지금도 이를 지키고 있다. 전통산수화의 현대적 계승은 그의 힘찬 필세의 거침없음은 하철경 화백의 특유의 화풍을 만들어 내고 있다. 고즈넉한 산사 풍경을 현대적 힐링공간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산수풍경도 매한가지다. 그의 화폭은 진도 씻김굿 한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연과 수묵이 신명으로 가득차 오랜 속진을 씻어내주기는 맑은 의례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늘상 전통과 현대의 다이나믹한 하이브리드를 꿈꾸고 있습니다. 전통과 현대의 화(和)의 미학이라 할 것입니다.” 그는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전형적인 예라 했다. 겸재 이전의 실경산수화의 전통을 잇고 새로운 남종화법을 활용하여 창출된 것이다.
 소치는 한국적 남종화의 길을 보여주었다. “진도 출신인 소치는 초의선사(1786 ~1866)의 도움으로 해남 녹우당을 드나들며 공재 윤두서 일가의 회화를 익혔습니다. 그리고 다시 초의선사의 추천으로 서울 화단의 총수인 추사 김정희(1786~1856)를 만나 새로운 예술세계에 눈을 떴습니다. 두 스승을 통해 남종 산수화의 진수를 체득한 셈이지요.”
 수묵화의 거장이 된 하철경 화백은 이번 전시를 그런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각오다. 향후 그의 거취가 주목되는 이유다. 한국화의 르네상스를 그에게서 기대해 본다.(문예칼럼리스트 박남인)
                                        (송광사의 봄)

“‘불멍’과 미술계의 사판(사판)을 내려놓고 상구보리의 길을 참구하는 임농”화백에 주목하고 있다.
 붓으로 세상을 흔들기 보다 보이지않는 거울속 어둠을 닦는 작업에 정진해온 삶이 더욱 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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