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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가 주목하는 작가 임농 하철경(林農 河喆鏡)
2021년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가 주목하는 작가 임농 하철경(林農 河喆鏡)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1.09.09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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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이 걸어온다. 맑은 물이 심산을 흘러 걸어온다. 인왕제색도가 우리 앞에 다가왔다. 겸재의 금강전도가 수많은 봉우리를 거느리고 21세기로 걸어왔다. 조계산이 보조 지눌, 용성을 거쳐 경허선사가 선등(禪燈)을 다시 치켜든 송광사 삼보사찰이 걸어왔다. 두륜산 대흥사도 서산대사의 호국선을 이끌고 다향을 풍기며 걸어왔다. 임농의 심원한 수묵의 향연. 진도는 흰소와 함께 가을이 일찍 다가왔다.
 “마음이 순수하고 여유로울 때 세상은 있는 그 자리에서 기적이다.”(오주석) 좋은 그림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은 행복하다. 서정의 시를 따라 읽는 즐거움은 수화 김환기의 달항아리에서 익는다.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수묵비엔날레를 자축이나 하듯 아침저녁으로 운림산방에 연운이 피어오른다. 소치는 평소 나대경을 흠모하여 산정하일(山靜夏日)을 선면도(서울대 소장)에 가득 화제로 넣었으며 추사는 돌아가시기 전 운림각 주련을 썼다. 음식은 대팽두부과강채(大烹豆腐瓜薑菜)의 선식을 권하고 고회부모자녀손(高會父母子女孫)을 최고로 쳤다. 그래서 소치는 86세를 장수했을까.
 이 세상 어느 곳이 꿈에 본 도원(桃園)인가
 자부컨데 천 년을 넘어 전해지리라.(안평대군의 ‘몽유도원도’ 題詩 중에서)
  오채찬란의 새의 바상을 꿈꾸며
 화가들은 활인의 붓대롱속에 새를 키운다. 너무 세게 쥐면 죽고 느슨하면 날아가 버린다. 그림과 시는 그 균형에서 창작의 고통과 자유로움을 얻는 다 한다. 임농의 숲에는 나무들로 가득하다. 나무들은 구도자들이다. 지구별을 가꾸는 푸른 농자들이다. 새들의 지저귐이 가득함을 느낄 tn 있는 자들이 그 숲의 길, 구도의 오묘한 색즉시공을 얻는다. 처음부터 불이가 아니었다고 추사는 불이작란(不二作蘭)도에서 설파하였다. 임농은 일관되게 수묵산수에 전념하였다. 화두를 자주 바꾸지 않았다.
 이제 비엔날레는 단순한 2년이라는 격년제에 매달릴 정책에 갇하지 않고 날아야 한다. 그림은 예술은 이미 화폭과 미술관을 새처럼 벗어난지가 오래다. ‘다시 자연으로’를 되차자야 한다. 섬으로 가야 한다. 생명의 시원 바다로 사유의 노를 저어야 한다. 수묵은 근원이다. 모든 그림은 새의 알이다. 숨어있는 세계다. 그 알은 깨고 새로운 경계로 날아가야 한다.
 진도는 운림산방을 둥지로 삼아 200여년 동안 수묵의 숲을 키웠다. 그림에도 자연생명의 농법이 주류를 이룬다.   
 ‘오채의 찬란’함이 번거롭지 않은 이유는 임농(林農)의 오랜 시창청공(詩窓淸供)과 선풍을 담은 도심속 수행좌선에 있을 것이다. 이는 산숭해심(山嵩海深)의 추사에서 허 소치(마힐.摩詰)로부터 이어 내려온 산림농사의 화풍에 있을 것이다. 임농의 그림공부는 오랜 선사들의 그것을 닮고 정진해 꿰뚫은 듯하다. 김홍도 단원은 안산 작은 바닷가에서 화연을 얻어 도화서에 들어가 일찍 사능(士能)을 자처했지만 요즘의 화인들은 누구나 광야를 헤메이며 샘물을 찾는다. 올 해의 수묵비엔날레는 임농의 새벽 오채에서 묵연(墨煙)으로 피어올라 진도대교를 중심으로 한 명량수로에서 고산과 배중손의 뜻 서린 굴포리, 시의 고개 동녕개 남도석성 달리던 삼별초의 초심을 운림지 배롱나무가 예감한다.
 임농 그 또한 뜰앞의 잣나무를 꺾어 마른 똥 막대기로 삼아 작대기산수, 초묵법을 거쳐 오늘에 그물에 걸리지 않는 무애의 바람을 화폭에 담는 경지를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이번 전남국제미엔날레를 상징하는 대표작가로 추천하는 까닭이 ‘막대기’의 마른 똥의 매화향에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형태에 집착하는 이들은 신발을 머리에 얹고 나를 잊는 것.
 

 상선약수의 물줄기에 탁족하는 새와 신선
 세한(歲寒)이 돌고 돌아 다시 국민들에게 돌아왔다. 2차대전의 마지막 화염속에서 소전(素筌) 손재형 선생이 동경에서 찾아온 국보. 남도의 강은 직소의 폭포를 껴안고 흐르지 않는다. 오랜 세월 수 많은 수탈의 역사를, 농부들의 허리를 꺾으며 붉게 물들며 백암산을, 추월산을, 서석의 오월 노래 무등산과 화엄이 불타는 지리산을 휘감아 영산강 포구로 모여든다.
 임농의 삶은 그 자체가 수묵이다. 나눌수록 더 깊어지는 여백이다. 남농선생은 이미 한국남종화의 산림밭을 일굴 재목으로 점지어 먹의 발우를 넘겨준 것이다. 임농은 진도 임회면 삼막리에서 태어났다. 이제 그곳 마을 산과 샘물은 먹으로 다 갈아 말라버릴 정도가 되었다. 그만큼 많은 서화작가들이 배출되었다. 장전 하남호. 운사 하광호. 새들이 날아와 함께 운율에 취했다는 대금국수 박종기 선생. 진도씻김굿(국가지정 제72호)의 큰무당이었던 김대례씨. 다 헤아릴 수가 없다. 뒷산의 곰솔을 헤아리는게 더 수월하다. 진도군에서 이정표라도 세워 예술답사자들의 길안내라도 해야 할 것이다. 송가인이 어디에서 왔는가.
 임농(林農)의 운필은 이제 노장(老莊)의 무위자연한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지향한다. 남도의 바다, 남도의 황톳길 들판을 닮은 농부와 어부의 마음들이 쌓이고 또 쌓여 거름이 된다. 누군가 가만히 보니 정작 그는 폭포의 시원한 물줄기는 그리지 않고 다만 나무와 바위, 풀들을 그려나갔다. 놀라운 일은 잠시 후 분명 폭포를 그리지 않았는데도 힘차고 시원한 폭포의 물줄기가 저절로 그려진 것. 폭포 주위의 바위와 나무와 풀들을 그리고 나니까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화선지의 여백이 어느 순간 시원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물줄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색이 있어도 넘치지 않고 달을 그려도 윤곽에 갇히지 않는다. 홍운탁월(洪雲託月)이다.
 올 봄 그 동안 50년의 화력이 켜켜이 담긴 소중한 작품들을 진도군에 기증하였다. 한 점 하나하나가 소홀하지 않는 시대의 방점들이다.
 목마른 자들의 샘물이 되어야 할 예술정책과 비엔날레
 이제 예향진도는 선견지명을 갖춘, 예술적 의식이 풍부한 지자체장이 맡아 초지일관 30년 백년대계를 이끌어가야 할 때가 되었다. 정부에서는 섬의 날을 제정하고 섬 지자체에 대한 재인식하고 있다.
 임농화백은 산과 산사를 자주 찾는다. 개울을 따라 오르다 강물의 길을 잃어버린 어부와 달리 그는 쉬이 현동자 안견처럼 도화꽃 선경에 취하지 않는다. 어려운 이웃들을 위하여 촌음을 나눠 수시로 전시회를 열고, 한국미술협회와 한국예총의 반석을 다지는데 기꺼이 헌액하여 오늘의 한국 미술계가 풍요롭게 자리하도록 헌신을 다해온 것이다. 어느새 그도 숲이 되고 산이 되어 한국 남종화의 그윽한 산맥을 이끌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새벽 눈길을 걷는 선사들의, 흐트러지지않는 돈오점수의 길이다. 법을 배우고 법을 벗어나 산과 물이 부르는 우리시대의 서정시다. 임농의 수묵 일필로 천하에 가을이 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본지에서는 ‘백년을 돌아보며 새로운 100년을 찾는 기획’을 진도예술인들과 함께 동참하는 자리를 만들어 가기로 했다.
 임농은 이미 화중유시(畵中有詩)의 언덕을 넘은 지 오래 감나무 잎사귀마다 물드는 저 달빛이 장무상망(長毋相忘)하자고 송백(松柏)의 뜻을 알려준다.(박남인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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