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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유골 반환 가처분신청 ‘기각’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유골 반환 가처분신청 ‘기각’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19.06.10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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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 최근 소송 잇따라 ‘기각선수’대책미온 지적

진도군대책위. “강력 반환투쟁 지속할 것” 각오

법원에 현상변경 금지 가처분 권리주장 이어

"유골 발견지로 연고 가능성" 높아 반환 소송 추진

전주법원은 진도군이 일본에서 되돌려 받은 동학혁명 지도자 유골을 되돌려줄 것을 요구하며 지난 21일 제기한 유골 현상변경 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렸다.

진도군은 진도에서 처형됐다는 기록과 유골에서 수습된 흙인 진도 송현리 묘지 흙과 일치하는 사실을 근거로 가처분신청을 냈으나 기각됐으며,전주시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이 유골을 포함한 이름없는 동학농민군 지도자 유골들을 6월 1일 전주 동학혁명 녹두관에 안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일본군에게 목이 잘린 동학농민군 지도자의 유골이 영면을 앞두고 있다. 반환 23년동안 6번째 안장을 거절당한 유골은 전주시와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의 도움으로 전북 전주에 안장될 예정이지만, 뒤늦게 진도군이 권리 주장에 나선 것이다

 

◇ 6번 거절당한 동학의 넋

"동학농민군 지도자의 유골을 안장하기 위해 6차례나 거절당했어요. 간신히 전주시의 도움으로 사업을 진행했는데, 갑자기 진도군이 막네요." 이종민 사단법인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장(전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은 법정 공방으로 치닫은 유골의 기구한 운명을 이같이 밝혔다. 이 이사장은 지난 1996년 일본 북해도대학에 있던 유골을 고국으로 되찾은 장본인이다.

그는 지난 2001년 유골을 안장하기 위해 가장 먼저 진도군을 찾았다. 1906년 진도에서 유골이 수습된 기록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사장은 "진도가 최후 항전지로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논의가 있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며 "지도자가 진도 출신으로 볼 수 없다며 당시 군의회가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골은 진도군을 비롯해 김제시와 정읍시 등에서 무려 6차례나 안장 제의를 거절당했고, 겨우 전주시 도움으로 잠들 땅이 마련됐다.

◇ 진도군, 사업 중단 요구

진도군은 전주시와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의 안장 결정을 놓고 법정 공방에 들어갔다.

진도군은 지난 달 21일 전주지법에 유골에 대한 현상변경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진도군 관계자는 "유골의 출신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며 "125년 전 유골이 진도에서 발견되면서 연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현상변경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반환 소송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진도군측에 따르면 진도동학사업회에서는 6월 3일 서울로 가 변호사와 함께 반환소송 내용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골은 녹두관에 1일 화장이 아닌 안장으로 모셔져 있는 상태다.

진도동학혁명기념사업회 박영상 공동대표는 "당시 군정이 복잡한 상황에서 유골을 받아주지 못한 건 아쉽지만, 법률적으로 주인없는 유골은 진도군수에게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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