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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갓모닝] 진도의 한
차길진의 갓모닝] 진도의 한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19.06.10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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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뜻하지 않은 분들이 대학로 후암선원을 찾았다. 그분들은 10여 년 전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한 유골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 유골은 1894~1895년 경 관군과 일본군에 의해 처형된 진도지역 동학농민군의 것으로 원래 진도읍 솔개재에 묻혀있던 것을 통감부 기사였던 사토 마사지가 파내 1906년 일본으로 가져갔다고 한다.

이후 유골은 일본의 홋카이도 대학 인류학 교실 표본창고에 방치돼 있다가 1995년 우연히 발견돼 1996년 한국으로 반환됐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유골의 주인을 아직까지 밝혀내지 못한 것이다.

처음 유골의 두개골에 ‘진도동학수괴’라는 한문이 쓰여 있어 당시 동학농민의 지도자인 박중진씨라고 확신하고 가족들의 도움으로 검사를 해보았지만 DNA 분석 결과 확인이 되지 않았다. 유골의 주인 찾기는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1894~1895년 사이에 처형된 진도지역 동학농민군은 한 둘이 아니었다. 수백 명의 동학농민군 처형자들 중 누가 유골의 주인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이후 유골은 19년 동안 전주역사박물관 지하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다가 지난 2월 16일 한 차례 화장 위기까지 맞았다. 지금 진도와 전주는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를 상징할 수 있는 있는 이 유골의 봉환문제로 서로 다투고 있다.

나를 찾아온 분들은 당시 진도동학농민군의 지도자는 여러 명이었지만 유골의 주인은 대금산조로 유명한 박종기 선생 일가와 관련이 있다며 구명시식으로 밝혀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구명시식은 천도를 위해 하는 것이지 무엇을 밝히는 목적으로는 하지 않는다.

그분들이 말하는 박종기 선생은 대금산조의 창시자로 진도 아리랑을 만드신 ‘대금 국수’이시다. 1879년 진도에서 태어나 이화중선, 임방울 등과 함께 대금을 연주했고, 1933년 조선성악연구회에서 활동하며 여러 유성기 음반을 취입했고 한주환, 이생강, 서용석 등이 선생의 대금산조를 잇고 있다.

선생이 대금을 불면 새들이 날아와 옆에서 지저귀었다는 얘기가 남아있을 정도로 대금 국수다운 실력을 갖추셨던 박종기 선생은, 키가 작고 잘 생기지 못한데다가 서자라는 이유로 살아생전 많은 설움을 당하셨으며 돌아가신 뒤에도 초라한 묘소에 묻혀 계신다고 한다.

유골의 주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진도의 한에 가슴이 아팠다. 예로부터 진도는 적이 가장 먼저 쳐들어왔고 또 적과 가장 나중까지 대항했던 섬이었다. 음악이 가장 발달해 진도에는 아리랑박물관도 있으며 전국적으로 무형문화재가 가장 많은 섬이다. 이런 진도였기에 동학농민운동도 거세게 일어났던 것이다.

지난 토요일 특별한 자리가 마련되었다. 박종기 선생의 손녀이자, 진도에서 판소리의 맥을 잇고 계신 박정례 여사께서 후암선원에 오셔서 진도아리랑와 육자배기를 불러주셨다. 언젠가 진도씻김굿을 재현하고자 했던 나의 오랜 소망이 이루어진 것 같아 가슴이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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