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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유랑 광대' 강준섭명인 별세
'마지막 유랑 광대' 강준섭명인 별세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1.09.26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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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다시래기 보유자 ···향년 88세

생전에 진도문화원에서 평생 모은 공연대분집 발간 기증

                                                        박애리씨가 추모공연참여

“진도에 가면 ‘천하의 명인’ 강준섭 선생 공연을 보지 못하면 안가본 것이나 다름없어”

평생 팔도 곳곳을 떠돌며 진도다시래기(국가지졍 81호) 공연을 해 온 우리시대 ‘마지막 유랑 광대’ 강준섭 국가무형문화재 진도다시래기 보유자가 24일 별세했다. 향년 88세.


                                                                            씻 김

고인은 1933년 전남 진도에서 4남 1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국가무형유산원이 발간한 구술 자서전에 따르면 고인의 선조들은 대대로 음악 활동을 했고, 진도씻김굿 명인이었던 고 박병천 집안을 비롯해 진도의 이름난 예인 집단과도 교류했다.

고인은 판소리 명창 신치선(신영희씨 부친)에게 소리를 처음 배웠고, 14세에 여성 창극단에 입단해 이곳저곳을 유랑하며 공연했다. 청년 시절에 잠시 군대에서 복무한 것을 제외하면 1970년대까지 계속 유랑극단 활동을 했다.

거사(居士)와 사당(寺黨), 가상제(假喪主)가 상가 제청으로 거들먹거리며 들어온다. 일명 '다시래기' 패거리다. 가상제는 손에 절굿공이를 들고 머리에는 짚신을 갓 삼아 썼다. 한눈에 봐도 기괴한 복식이요 동작이다. 한 다리를 비비꼰다. 상주들 앞에 가서 망측하게 절을 한다. 떠돌수록 배가 고프던 시절. 착착 달라붙는 진도의 욕설을 섞은 농담들이 상주와 다시래기 패거리들 사이를 오간다. 다시래기 패들의 목적은 상가에서 하룻저녁 놀고 가는 것. 상주들이 못이긴 척 술과 고기를 내오며 자리를 깔아준다. 사람이 죽어 슬픈 장소에서 망자에게 예를 갖추어야 할 의례공간이다. 그런데 천연스레 이 무슨 해괴한 일이당가? 첫마디부터 상말들이 오가고 욕설들이 뒤범벅된다. 이렇게 상스러울 수가 없다. 객지것들의 유교윤리의 창으로 보면 그렇다. 상가에서 진행되는 '다시래기' 다시래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상가의 제청에는 상주들이 한편으로 줄을 지어 앉아있다. 마을 사람들은 제청의 이곳저곳을 가득 메우고 있다. 불경스런 노래극이 펼쳐지는데도 누구하나 불평불만을 말하지 않는다. 밤이 깊어지고 마당에서 노래극(?)이 진행되면 여기저기 진한 농담들이 오간다. 박장대소하며 웃기도 한다. 봉사인 거사와 배불뚝이 사당, 이웃 사찰의 중(땡중이라고 표현된다)이 펼치는 삼각연애 이야기다. 거사와 사당은 부부다. 하지만 사당의 애인은 중이다. 배불뚝이는 그러고 보니 임신을 말하는 것이렷다. 물론 중과의 밀회로 생긴 아이다. 일당을 받는 거사는 앞 못 보는 봉사이다. 그러나 전혀 반대다. 사당은 판소리 심청전의 심학규나 황봉사를 닮았다. 이런 이야기 구조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백제 때부터 이어져온 ‘리필리아’ 다시래기 1981년 5월 27일자 동아, 경향신문은 '진도지방 상가의 민속가무극 다시락(多侍樂)을 재현'이란 기사에서 다시래기의 재구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날 재현된 '다시락(多侍樂)'은 호남지방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민속극으로 구춘홍(고군면)씨가 50여 년 전 이 민속극의 연희에 참여했던 고로들로부터 고증을 받아 재현한 것. 연희 참여자들은 구씨를 비롯, 강준섭, 김애선, 박복남, 김형근, 곽문환, 손판기 씨 등 모두 7명. 백제 때부터 성행된 것으로 알려진 이 민속극은 마을 주민들이 이를 통해 협동과 단결을 이루자 일제가 강압으로 이를 금지시켰다더라. 사당놀이, 사자(사재)놀이, 상주놀이, 상여놀이 등 4개 부분으로 나누어진 이 가무극은 노래와 춤, 풍자극으로 엮어져 있다. 당달봉사 역할의 명인 강준섭의 피카레스크식 심청전 하지만 이경엽 교수가 밝힌 바에 의하면 위 이야기의 삽입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중이 사당하고 삼각관계를 형성하고 연애하는 장면은 구춘홍과 강준섭 등이 고안해 만들어낸 이야기다. 어디서 가져 온 이야기일까? 바로 심청전의 뺑파막이다. 뺑파와 심봉사의 역할을 거사와 사당의 역할로 바꾸어 놓았던 것. 여기에 강준섭씨의 뛰어난 장기이기도 한 심봉사 연기가 막중한 역할을 하게 된다. 본래의 다시래기가 거사와 남장한 사당이 노래를 주고받는 공연이었던 점에 비하면 현재의 다시래기는 심청전에 기반한 탄탄한 스토리의 상례극으로 재탄생한 셈이 된다. 심청이나 당달봉사라는 캐릭터가 기타의 소설이나 악극, 의례 구조 속에서 살아 기능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피카레스크식 구조란 본래 악당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에서 출발한 개념이었으나 동일한 인물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전개하는 구성으로도 사용된다. 하지만 의문이 생긴다. 지난 신문기사 등을 참고하면 백제 때부터 전승되던 연희이고 일제강점기에 중단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한가? 물론 아직 확인된 바는 없다. 다만 추론할 수 있는 것은 상례 마당에서 즐겁게 놀거나 상주와 더불어 춤을 추던 것이 고구려 기록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매우 오래된 연행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호상(好喪)이라는 이름으로 북, 장고를 울리며 춤추는 것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이것은 "잘 노는 사람 꿔다가도 하는 지랄", 바로 상례극 만들기의 구조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진도국악인들의 꽃상여 출상

울두목에서 몸을 던진 바리데기와 사당 뱃속의 디시래기

상가집 달빛에 취한 은어들이 길닦음판으로 몰린다. 뜨거운 닭국물이 돌린다. 세상에서 헤아리지 못해던 지화. 거지가 된 리어왕이 상가집에서 나물바가지를 내민다. 씻김사설에서 탈락된 바리데기. 이제 소녀들은 연꽃 속에서 부활하지 않는다. 색동옷을 입은 아이들에게는 생일과 나이를 묻지 않는다. 또랑새비로 돌아간 홍림이가 꺽정이 보릿대춤을 한바탕 풀어놓는다. 마을 공동체는 웃음이 가시지 않는 장님의 세상이다. 보이지 않을 때 더 선명해지는 이념과 사물이 제 자리로 온다.진도의 상가집은 미네르바의 사원이 된다. 아이울음소리는 부엉이의 신탁이다.

진도에서의 죽음은 아리랑을 부르는 젊은 여인들의 발뒤꿈치에 눌려 비명을 지르는 독사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게 시어머니든 불알힘이 떨어진 시아버지든 간에.

마고성이 흐른다. 이덕리의 동다기(동다기)가 그림속에서 걸어나온다. 소나무 세그루가 쓰러진다. 왜덕산에 흐르는 지유 황궁씨의 젖가슴. 나머지 한 그루는 세한을 예감한 경허가 거울을 깨듯 베허버렸다. 용장성에 봄이 한결 다가왔다. 진달래는 두 번 피지 않는다. 깃발을 세운 성황당 차나무들이 오룡국을 선언한다. 유구열도에서 인동초로 감은 수막새를 보내왔다. 청궁씨가 끈을 풀렀다. 카르페 디엠. 세상의 모든 둥+

굴에는 거북이가 산다. 아모르 파티.

사당이 춤을 추며 마당을 한 바퀴 돈다. 비로소 마당은 지평을 이루었다. 김광남이 쓰지 못한 시가 흐른다. 저 달이 떴다 지도록 은어들이 몰려든다. 모두가 정액이다. 모두가 박꽃이다. 비밀의 열쇠는 주변머리에 있다.

1975년부터 강준섭옹은 진도 지방에서 동네 상여꾼들이 유족을 위로하고 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행한 진도다시래기 복원 활동에 참여했고, 1979년에는 국립극장에서 진도다시래기 공연을 했다. 진도다시래기가 1985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자 고인은 고 조담환(전 진도문화원장)과 함께 이 종목 보유자로서 인간문화재가 됐다. 이후 진도다시래기 전승과 보급에 힘썼고, 세한대 전통연희학과 초빙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2009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가 있는 신안 하의도에서 영결식 전날 굿판을 벌였다.

고인은 또 심청전, 춘향전, 장화홍련전 등 고전 판소리부터 신파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무대에 섰다. 앞을 보지 못하는 심 봉사 역할은 영화 ‘왕의 남자’에서 장생으로 등장한 감우성이 맹인 연기의 표본으로 삼은 것으로도 알려졌다.

유족으로는 유랑극단에서 함께 활동한 부인 김애선 진도다시래기 명예 보유자와 진도다시래기 전승 교육사인 아들 강민수 씨, 딸 계순·계옥 씨가 있다. 이미 고인이 된 김귀봉(임회면 송정)씨와 최홍림 등이 전승에 깊이 관여해왔다. 빈소는 전남 진도 산림조합추모관이다. 발인 27일 오전 10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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