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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가 청농 문관효, 광개토태왕 비문 다시 쓰다
한글서예가 청농 문관효, 광개토태왕 비문 다시 쓰다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1.10.28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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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예박물관에서 ‘광개토대왕비전

 

‘광개토대왕비전 필혼을 깨우다’ 전시회가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지난 9월 3일부터 10월 30일까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서예가 300인을 선정하여 광개토태왕비를 주제로 여러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중 한글서예가 청농 문관효 만의 탁월한 필체로 광개토대왕 비문을 다시 써 주목을 받고 있다. 필체의 수려함과 기상을 볼 때 평단은 단순한 재해석 수준의 글씨가 아니라고 평가한다. ‘광개토대왕’ 정확히는 광개토경(지)평안호태왕은 ‘널리 영토를 개척하고 백성들을 편안케 한 위대한 대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광개토태왕 능비는 현재 중국 길림성 집안현 태왕향 구화리 대비가에 있다. 비석은 자연석 그대로의

장방형 기둥 모양으로 높이가 6.39m이고 비의 기단(건물의 터전이 되는 단)은 길이 3.35m이다. 너비 2.7m의 화강암이다. 글자는 모두 1775자로 비문 서체는 예서체이다. 능비는 삼국시대 비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웅대하고 강건한 필치로 비문이 새겨져 있어 고구려인의 씩씩한 기상을 반영한 것으로 보이며, 비문 내용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문단은 고구려의 건국 신화와 추모왕(주몽), 유류왕(제2대 유리왕), 대주류왕(제3대 주무신왕)등 3대의 왕위계승과 광개토왕의 행적에 대한 기술로 되어있다. 둘째 문단은 광개토왕의 정복 공적을 담았다. 셋째 부분은 능비의 수호를 위한 묘수호인 숫자와 그 출신지 및 관련 법령을 새겨 놓았다. 청농은 이런 기상을 반영해 1,775자 전문 가운데 판독이 불가능한 글자를 제외한 모든 비문을 다시 썼다. 한글을 최초로 병기하여 광개토태왕의 기상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도록 힘 있게 붓을 움직였다. 이번 전시회는 우리 민족 최대 최고의 역사기록문화유산인 광개토태왕비문을 재조명하여 문자 의미에 대한 재해석과 비문 서체에 담긴 필혼을 전문서가들의 작품을 통해 만나 볼 수 있었으며, 마지막은 광개토대왕비 1775자를 관람객이 한 글자씩 붙이는 이벤트도 진행한다. 한글서예가 청농 문관효 작가는 2016년 상용 한글로 제작한 세계지도 전’ 에 이어 2017년 ‘천 개의 강에 떠오른 월인천강지곡 전’ 2018년 ‘현대번역말과 함께 쓴 훈민정음 언해본 전’에 이르기까지 6년 연속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한글날 문화예술행사 작가로 선정되어 나라의 정신 한글의 예술적 위상을 위하여 열정을 바쳐온 작가이다.

그는 광화문 광장에서 훈민정음 해례본 60m 현수막 작품 설치행사로 우리 한글의 아름다운 조형과 정신을 널리 알린 이후 ‘한글로 빚은 한국의 애송시’전에 이어 한글문화 큰잔치 문화행사에 연속 선정되었으며 ‘훈민정음의 큰 빛’ 현수막 설치전에 이어 훈민정음 언해본과 훈민정음 해례본 서예작품이 함께 전시되는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열려 화제가 되었다. 또한 지난 2019년 1월 17일 ‘훈민정음 해례본’ 전문을 한글 붓글씨로 세계 최초로 구현한 청농 문관효 작가는 세종대왕기념사업회(회장 최홍식)에 전시작품을 기증했으며, 기증식은 지난 2018년 12월 28일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세종대왕 즉위 600돌과 훈민정음 창제 575돌을 맞이해 진행됐다. 훈민정음가치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김슬옹(세종대왕기념사업회 전문위원) 박사의 출판기념회 및 해례본 28개국 번역 누리집 개통에 관한 선포식과 더불어 한글의 소중함과 가치를 붓글씨로써 알리고 있는 한글예술원 원장 청농 문관효 선생의 훈민정음 해례본 한글판 전시작품으로 훈민정음 해례본 연구의 권위자인 김슬옹 박사가 현대어로 정리한 것을 ‘훈민정음’ 해례본의 66쪽 33장 짜임새와 똑같은 방식으로 세계 최초로 한글 붓글씨로 썼으며, 세종의 정신을 널리 기리는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정신을 위해 기꺼이 기증했음을 밝혔다. 이 작품은 전시를 후원한 학생신문사에서 휴대용 작은 책으로도 제작되었다. 청농은 전남 진도(삼밭) 출신의 대표적 문화인으로 공무원으로 30여년간 봉직했다.

그는 열 살 때 붓을 잡았다. 스승 장전 하남호 씨의 지도로 서예를 시작한 지 올해로 50년째다. 젊은 시절부터 한글서예에 빠져든 그는 자신만의 필법을 완성하기 위해 숱한 노력을 거쳐 ‘청농체’를 창안했다. 서예평론가 고 농산 정충락 선생은 청농의 첫 개인전에서 “청농은 한글을 전문으로 공부한 정통파 서예가다. 공직생활에 쫒기면서도 서예를 향한 그의 생각은 시작할 당시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고, 지난 20여 년간 그가 보여준 서예와의 동행을 지켜본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 청농은 한글을 쓰는 작가라면 모두가 거쳐야 하는 서체를 망라했으며, 한자 서예도 나름의 양식으로 서사를 하고 있다. 정통과 현대의 아우름을 조형화 하는 운묵도 함께 공개하고 있는 청농의 글씨는 자신의 고유한 서체를 이루고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고 호평했다. 청농은 법무부 기획관리실과 형사정책연구원에서 오랫동안 근무했으며, 1991년 제1회 공무원 서화전 때 한글서예 부문 최고상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지금도 총리실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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