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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다시 보기/ 갯벌 환영하나 괜히 땅만 내주고.
취재일기 다시 보기/ 갯벌 환영하나 괜히 땅만 내주고.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1.11.12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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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물길을 생각한다

12년 전 소포동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마을 전수관에 모인 주민들은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심상을 애써 감추려하지 않았다.

국내 첫 '간척지→갯벌' 逆간척 추진

“가난 면하려 방조제 쌓던 게 엊그젠데…" 기대속 주민들은 보상·개발 방식 이견에 좌초 위기를 맞아 "자연환경신탁 말고 땅 100% 다 사달라"는 여론이 우세하게 모였다.

쌀이 쌀쌀맞게 천덕꾸러기로 남아도는 세상. 북한으로 가는 남북통일쌀도 정세에 따라 자꾸 애둘러 길이 막히고 옹골찬 보수층들은 ”핵무기 개발에만 도움줄 것“이라며 소통 자체를 거부하는 입장이었다. 그 당시 때이른 봄의 숨결이 연일 전국을 어루만지던 3월22일, 전남 진도군 지산면 소포리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만개한 꽃들이 낯선 손님을 먼저 반겼다.

깔끔한 집들과 컴퓨터에 안마시설까지 갖춘 노인정, 제법 규모 있게 지은 마을회관…. 어디를 가나 번듯하고 깨끗한 마을 풍경은 진도에서 손꼽히는 '부자 마을'이라는 소문 그대로였다. 한때 소개포로 소금을 구워 팔던 마을. 개를 막아 간척을 이뤄 농토가 늘어나 동네풍속이 번성하는 마을로 유명해졌다.

길 따라 걷는 동안, 구성진 남도 소리와 서툴지만 한껏 흥이 올라 두들겨대는 꽹과리, 장구 소리가 마을 전체에 배경음악처럼 깔렸다. 소리를 따라 찾아간 곳은 전통민속전수관. 무형문화재인 소포걸군농악과 강강술래, 다시래기 등 남도의 소리를 배우기 위해 이곳을 찾은 이들이 한 해 4,000명을 넘는다고 했다. 김병철 이장은 이상적이면서도 실천적인 농부다. 지금은 아예 농악상쇠로 직접 나서 동네현안을 가락에 담는다.

산을 끼고 한바퀴 돌자 112만㎡(34만평) 규모의 간척지가 펼쳐졌다. 길이 580m, 폭 10m, 높이 8m의 대흥포 방조제를 쌓고 바닷물을 막아 논으로 만든 곳이다.

"보릿고개 면해 보자"며 주민 200여명이 손수 돌을 나르며 시작한 간척사업은 1977년 방조제가 완공되기까지 20여년이 걸렸다. 주민들은 "첨에는 무너져 애써 지은 농사를 바다에 빼앗겨 버린 일도 잦았다"고 했다.

남도문화의 산실이자 국내 최초의 검정쌀(시배자 주만종) 생산지로 이름난 진도 소포마을이 최근 또 다른 명성을 얻게 됐다. 방조제를 허물고 간척지에 다시 바닷물을 들여 갯벌로 복원하는, 이른바 '역(逆) 간척' 사업의 첫 대상지로 떠오른 것이다.

당시 대대적인 갯벌복원 사업을 추진 중인 국토해양부로부터 전문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추천한 후보지 81곳 중 17곳을 우선사업 대상지로 이 가운데 올해 안에 사업에 착수할 3,4곳을 내달 확정할 예정인데, 소포리가 0순위로 꼽혀왔다.

2007년 여름부터 주민들 스스로 갯벌복원 사업을 추진해와 성공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복원된 갯벌에 생태공원을 조성하고 전통문화 체험과 연계, 전통생태관광지로 발돋움한다는 것이 소포리의 계획이었다.

당시 소포리역간척추진위원회(가칭)의 김병철 위원장은 "우리동네 갯벌을 복원하는 것 자체도 의미있지만, 관광객들이 많이 오면 농사가 싫어 떠났던 젊은이들도 다시 고향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국내 최초의 역 간척지'를 향한 소포리의 항해가 거친 풍랑을 만났다. 갯벌로 복원될 간척지 보상과 개발 방식을 둘러산 주민들간 이견으로 사업 자체가 좌초될 위기를 맞은 것이다. 마을을 찾았을 때 삼삼오오 모여 앉은 주민들의 이야깃거리는 하나같이 갯벌복원 문제였다.

"저 논들이 모두 바다였을 때 헤엄도 치고 고기도 잡고 늘 그렇게 바다에서 살았제. 그 시절 생각이 나네." "저 둑 쌓을 때 이 손으로 돌 깨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몇 십 년이 흘렀당게." "첨엔 고생도 많았지만 논 만들고 얼마나 좋았소. 간척지 쌀, 맛 좋다고 소문나 돈도 만지고."

"간척지 덕에 배고픔 잊고 자식들도 잘 키웠으니 인자는 후세를 위해 원래대로 되돌려 줘야~제." "그란디 보상 문제는 도대체 어찌 되는가. 갯벌 되돌려 놓으면 거기서 정말 돈이 나올랑가."

옛 시절을 추억하며 이야기 꽃을 피우던 주민들은 보상 문제가 나오자 말을 아꼈다. 그만큼 갈등의 골이 깊어보였다. 당장 살길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갯벌복원에는 대부분 찬성하지만, 애초에 추진한 자연환경국민신탁을 통한 개발에는 상당수가 반대하고 있었다. 자연환경신탁은 보전가치가 있는 토지를 기부ㆍ증여ㆍ위탁받아 관리하는 기관으로, 향후 개발 수익을 주민들에게 나눠준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대부분 70, 80대 노인인 간척지 내 토지주들 상당수는 "언제, 얼마나 수익이 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땅 내주고 놀란 말이냐"며 반발하고 있다. 국토부가 사업에 나섰으니 국가에서 토지를 100% 보상매입 해 달라는 것이다.

국토부로서는 아직 최종 선정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보상매입을 약속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국토부가 소포리를 첫 사업 대상지로 염두에 둔 것은 주민 자체적으로 신탁 방식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예산을 적게 들일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당시 박금영(68) 이장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사업을 시행하고 간척지 전체를 현금으로 사들이면 주민들도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13일 토지주들을 대상으로 찬반투표를 했는데 60명 중 40명이 참석, 13명은 무조건 반대, 23명은 정부가 주도하고 보상하는 조건으로 찬성했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갯벌복원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의문까지 제기돼 주민들은 눈에 띄게 동요하고 있다.

소포리평야

 

주민 김승철(84)씨는 "어릴 적엔 수영하고 고기도 잡았던 추억 어린 바다였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둑을 막기 위해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간척지"라며 "가족처럼 지냈던 주민들끼리 싸우지 말고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토부 신재영 사무관은 "주민들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사업을 추진하기 어렵다"면서 "국내 석학들이 최적지로 추천한 소포리가 시범 대상에서 빠질 수도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갯벌 복원, "국토부, 순천·무안·사천 등 우선 사업 대상지 17곳 선정

국토해양부가 갯벌복원 사업 추진에 앞서 지난해 지방자치단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복원 희망지는 15개 시ㆍ군 81곳에 달했다. 모두 32㎢로, 여의도 면적의 3.8배다.

국토부는 이 가운데 17곳을 우선 사업 대상지로 정했고, 복원 목적, 경제적 타당성, 기술적 가능성, 생태관광유발효과 등을 따져 내달 3,4곳을 지정해 연내 시범사업에 착수할 계획이다.

전남 이웃군은 꼬막 등 조개로 유명했던 곳에 도로가 생기면서 조개류가 자취를 감춰 복원이 시급한 실정이다. 자치단체들이 갯벌 복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은 간척지 효용성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포리의 경우만 해도 더 이상 논농사로는 과거와 같은 소득을 기대할 수 없다. 또 오염물질로 인한 환경 피해가 갈수록 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여기에 요즘 자치단체들 사이에 화두로 떠오른 '생태관광'에 대한 기대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이런 기대에는 순천만의 성공 사례가 크게 작용했다. 람사르 총회 당시에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순천만은 지난 한 해동안 260만명의 관광객이 찾았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날마다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갯벌복원에 관한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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