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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섬이란 무엇인가
우리에게 섬이란 무엇인가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19.06.24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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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껴놓은 땅”

우리에게 섬이란 무엇인가

“아껴놓은 땅”

많은 위정자들, 그리고 행정수장들은 연단에 오르면 이 말을 즐겨 씁니다. 특히나 60년대 이후 더 많이 공개적인 행사에서 그것도 농도이자 도서를 바탕으로 하는 전남도 서남권에서는 입에 달고 쓰는 용어가 되었습니다.

120년 전 동학농민운동, 갑오농민혁명 이후 농민은 해방을 거치면서 경자유전의 원칙이 대두될 때 농민들과 섬주민들을 달래주는 임기응변 정책적 수사로 낫을 든 농민들을 다독거렸습니다. 그 중에서도 섬은 애초에 일방적인 수탈의 대상이었습니다. 거주이전의 자유도 없었습니다. 꼭 필요할 때가 반공이데올로기를 동원할 때 간첩의 온상지, 거점으로 대국민 홍보 선전기간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섬 해안가는 모두 호를 파고 마을 회관, 방공호 주변은 입에 담지 못할 욕이 시뻘건 색으로 도배되어 보기만 해도 진저리를 치게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방파제 하나 제대로 시설하지 않고 여객선 증선 및 운항시간 연장에는 너무도 인색하였습니다. 다리(연육교, 연도교) 건설사업은 대국가적인 사업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거제도 완도 강화도 그리고 남해도와 진도, 모두 ‘바다가 육지라면’은 간절한 꿈이었습니다. 애증마저도 볼모가 되는 그런 섬처녀의 애환이 붉게 피었다 지는 동백꽃 사연들을.

부산과 서울이 고속도로화되고 전국이 철도화되는 동안 호남은 군산에서 목포 나주 호남선이 쌀을 싣고 가는 ‘눈이 와도 비가와도 호남선’이었습니다. 미역과 김, 톳은 일본의 왕실까지 특별한 기호품으로 인기를 끌었지요. 진도 지산면 보전지역 김이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리고 정부는 계속 쌀 증산을 위해 주로 서남해안을 간척사업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이 사업은 새만금사업까지 이어졌습니다. 우리의 국토는 동글동글해졌습니다. 진도도 짚새기 공처럼 둥글어졌습니다. 당연히 600여 년의 치소로 위용을 자랑하였던 진도읍은 소포만의 간척(방조제) 이후 뱃길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창고가 있었던 해창, 고작리에서 선착장은 사라졌습니다. 이미 해창만 앞에서의 여객선 전복사건으로 쉬미항으로 목포-진도간 여객선이 옮겨갔습니다. 또 한쪽으로는 해남군 옥동에서 벽파항으로 철부선이 다녔습니다. 이 애환은 참 오래 갔습니다. 80년대 초까지 진도의 아리랑은 광주여객과 그 차를 실은 여객선에서 가장 많이 불렸을 것입니다.

 

이 아껴놓은 땅이 육지와 연결된 때가 1984년 가을이었습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 일행이 진도를 찾아 군청에 기념식수까지 했답니다. 그런 그가 불과 대교 개통 3년 전 석달윤가족 간첩사건을 엮어 진도를 긴장시키더니 다음해에는 진도에 있지도 않은 복사기를 이용한 이북 아버지와 교신을 해왔다는 박동운가족사건이 연이어 일어납니다. 진도초토화작전이었습니다. 군대식으로 진돗개 세 개가 떨어진 것입니다.

“참 아까운 놈인데” 이 말도 조금만 곱씹어보면 금방 속내가 보입니다. 절대 도와주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이는 ‘전라도 사람만 아니었으면’ 또는 ‘어디 섬에서 태어났다고 하지?!’ 에서부터 다 미리 거부와 탈락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곳, 자연친화, 인간의 순수가 살아있는 곳으로 연출과 강요를 합니다. 모든 판단과 시각은 그들만의 것입니다. 섬 주민들의 발이나 다름없는 배삯 문제에 정부는 광역지자체보다 더 인색하기만 합니다. 올 해는 처음으로 섬의 날이 제정되어 목포 신안지역에서 크게 행사를 갖는다고 합니다. 여기서도 진도는 도토리밥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변해야 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썩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정체성이 분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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