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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 문화칼럼 / 지역사립미술관의 역할과 분투
남인 문화칼럼 / 지역사립미술관의 역할과 분투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1.12.0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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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길을 묻다’ 연속기획 화제

 

지난 가을 국화분을 키운다. 아침마다 물을 수묵하니 뿌려준다. 열두살 소녀의 젖가슴처럼 봉오리가 돋아오른다.

미술관 전시가 연일 화제가 된다. 고미술가격은 천정부지다. 백제의 조각과 고려의 불화는 사오지도 못한다. 그림은 물고기다. 살아 펄떡이며 쉬임없이 헤엄을 치며 비늘을 씻고 대강을 꿈꾸는 지느라미와 부레의 수평을 조율해주는 역할은 미술관이다. 지금은 누구나 어항에서 물고기를 기르지 않는다. 미술관은 호수다. 염기가 잘 통하는 바다다. 모든 관람객에게 미네랄이, 자의식을 한것 피워내는 피톤치트가 속속 스며들어야 한다.

진도는 그런 바다가 있다, 미술관장들은 노련한 뱃사공이다. 모두가 도원의 뱃길을 아는 어부이다. 도연명이 그렇게 찾았던, 안평대군이 꿈 속에서까지 그리워했던 무릉의 몽유도원으로 가는 물길을 제대로 익힌 노련한 뱃사공은 장가계의 풍경이나 하롱베이 바다의 오아시스를 오히려 여처럼 경계한다.

누군가는 “진도에는 미술관이 바다속에 있다”며 해저유물과 인양 보물들의 진도반환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새들의 섬 조도는 황공망의 부춘산거도가 펼쳐진 듯해 보인다. 여기서 더 다를 수는 없다.

진도에는 운림산방을 비롯해 소전미술관 등 유수한 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진도군이 직접 관할거나 위탁 운영중이다. 장전미술관은 유능하고 열정적인 뱃사공을 잃고 반파되어 흘수선이 기울어져 안타까움을 준다. 전남도의 소홀한 운영, 방임하는 자세는 무릉도원을 더 이상 찾지 않으며 화천대유 물벼락 돈폭포가 쏟아지는 꿈에 쩌어있는 것일까. 그들은 작품을 생물로 여기자 않는다. 단지 색깔있는 도형물로 배열양식에만 골몰한다. 이에 비해 광엥시에 들어선 도립미술관은 초기부터 의욕적이다. 서울 성북동으로 남농선생이 쌍벽의 동행을 떠나셨다. 월전이라는 가을달밭에서 소나무 그늘 아래 그림농사를 짓는 모습이 저절로 떠오른다.

도립미술관에는 소전 손재형선생의 진보(珍寶)가 전시되고 있다.

그리고 진도에는 ‘미술관에서 길을 묻다’라는 화두를 들고 수년 째 초대전을 갖고 있다. 이건 놀라움이다. 가장 엄혹한 시대의 미술계 신흥무관학교 독립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초대받은 화가들은 우주인을 꿈꾼다. 아를르의 밤 고흐의 별들이 내려오고 또 다른 행성을 찾는 혜안으로 번뜩이며 획일적인 자본주의 시각과 배긎디배와 결연히 맞서 벽파진 솟소승자총통같은 화첩통을 짊어지고 떠나는 기행(紀行)으로 명량대첩, 봉오동전투 승리를 꿈꾼다.

추사의 작품 몇 개, 단원의 사능(士能)에 기대이는 수도권의 유수한 미술관의 진부한 구태를 거부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지역미술관으로 걸어가보자. 나절로미술관과 솔마루미술관은 본이 학교부지였다. 나무들이 찬구처럼 소풍인솔교사처럼 다가온다.

미산 허형과 허소치가 3대를 재조명한 진도현대미술관의 기획전시는 ‘작은 공간 큰울림’의 전형으로 다가온다. 그는 수없는 발품을 들여 미산(소미산)의 작품들을 구입하고 그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며 해석하면서 지역미술관이 가야할 길을 무언으로 증명해주었다. 미산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후미진 섬의 산골에사 땔나무나 소먹이 꼴을 베 오던 반머슴으로 십대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의 형 대미산(허은)은 아비의 총애를 받으며 대를 이을 자식으로 애주중지하면서도 제주를 두 번이나 데려다님녀서 현재 제주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그림을 남기게 된다. 진도에서 미술가보계를 이루는데 미산 허형은 일반인들의 인식과 달리 중대한 역할을 해주었다. 지게작대기와 소죽간 부지깽이로 그린 그림솜씨는 뒤늦게 아비의 눈에 들어왔다. 이미 그 형은 요절하고 민 뒤였다. 뒤늑게 분발하여 그림세계에 제대로 심취하게 되었다.

미산 혀형은 진도미술계에서 분명하게 새로운 조명과 연구가 더 필요하다. 누군가는 그의 배움이 아버지의 삼절에 못미침을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젊은 시절 작품들은 그 정연함과 담백하면서도 그마의 세계가 오릇하게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남농 허건이 박혁거서간 처럼 김알지처럼 고목 소나무에서 저절로 줄탁동시도 앖이 알을 깨고 나왔겠는가? 그 애비의 품격과 붓질의 남다름을 아들로서 깊이 인식하였기 때문에 그 부친을 뛰어넘기 위한 혼신의 열정을 불태워 다리 하나를 마하연 미륵불에 분신공양하듯 추위와 시대와 싸우며 남쪽 허씨 미술가의 농사를 기름지게 하였다. 굶어보지 않은 사람이 예술의 ‘낙지론(樂志論)을 들먹이는 것은 경우에 맞지 않다. 금ㄱ아아을 수련하지 않고 그림의 표상에 머무는 이발관 표구사 안목을 탓할 일이다.

가난은 결국 허미산을 강진 목포로 떠나게 한다. 탐탁지 않은 ‘사랑방 손님에 불과했다. 가리개도 병풍도 그 가치가 떨어지고 후후죽순 붓쟁이들이 팔도를 횡행한다. 몸은 고향을 떠닜지만 그는 그림수업을 그치지 않았다. 늦은 나이에 선전(조선미술전람회)에 참여하여 입상도 한다. 아들 놈농(허건)과 허림(임인)이 그 대를 이었다. 세계는 전혀 달랐다. 풍속의 시대가 먼저 달라졌다.

허소치는 당대에서 그치길 바랬다. 조선과 함께 많은 인연들도 사라질 것을 미리 예견한 것이다. 초의 장의순, 추사 깈정희, 자하 신위, 헌종과의 만남은 꿈과 같았기 때문이다. 하여 자식들에게 객지 도시로 나가라고 유언을 할 정도였다. 그림판 삼절 인연이 옛 시절과 다름을 그 세속과 흐름을 파악하였기에 농민전쟁의 참화에 앞서 연운공양법을 그치고 또 다른 몽유세계로 떠났다. 미산은 운림산방에 있을 당시에는 매우 충실하였던 듯하다.

운림산방엔 접도에 유배생활을 하던 무정 정만조가 찾아와 시를 논하기도 했다. 무정이 가고 매천(황현)이 찾아오기도 했다. 절명하기 전이었다. 제자도 두었다. 대흥사 일지암에서 떼어온 매화는 제자 임 모씨의 지극함으로 되살아나 운림산방에 자리하고 있다. 춘설헌의 의재가 비까내 산길을 걸어 모란을 피우고자 했던 시절이 아련하다. 허소치는 운림잡저에 운림삽경을 읊은 시를 남겼다. 자신의 화첩에 운림십경을 넣는 일. 풍경도 시도 기억속에서 매립되고 있는 현실, 정양 박주생관장은 누구도 미치지 못한 미산(허형)에 방점을 찍은 득의의 기획전시를 이끌어낸 것이다. ‘미산으르 다시 보자’라는 운동이라도 펼치고 싶다. 석현 박은용이 어떻게 우리 앞에서 마술램프처럼 사라지고 있는가. 양두환은 또 목조각의 신화와 사라지고 있는가.

진도에는 대한민국이 애지중지하는 민속놀이가 보존전승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지역 예술인(시인 작가 화가)들은 눈을 맞추지 않는다. 민속과 풍속을 문화의 계급분류화 하는 의식이 도사리고 있는 듯하다. 하기사 소치선생도 민속팔조금법을 군수에게 강력히 요청할 정도였다. 섬 안의 양반질은 우물안의 개구리가 모시는 뱀신이나 다를 바가 없다. 물론 나도 그 사람들의 막가는 분분한 삶을 지적하다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속으로 ‘같이 어울릴 부류가 아니다’라는 인식이 깔려지게 되었다. 유교의 명륜사상은 천 년 가까이 이어져온 과거제의 제한에도 불구하고 숭모하는 잘못된 차상위 엘리트의식이 아름다운 민속공동체를 비하시키는 역할을 지탱헤해 왔다. 어른에게 함부로 하대하는 근거없는 풍습도 제자리로 돌려주어야 한다. 당골 환쟁이 분필파는 업. 몽골의 떠돌이 악사들의 역할과 예우가 세삼스러워 진다.

제주도는 대미산(허은)의 그림(귤밭농원 대표 초상)을 유형 문화재로 지정 보존하고 있다. 진도현대미술관에는 또 다른 거사상이 구입 보존되고 있다, 강진군은 다산의 시를 재해석하여 금봉 박행보선생에게 그림을 맡겼다. 애절양 푸른 낫의 후광은 그렇게 태어났다. 진도는 전신마취 중이다. 아무리 흔들어도 ‘바담풍’이다. 누구를 탓할 것인가. 행사만 있고 후속은 단절되고 마는 예술은 판박이 공예품으로 매도된다. 군수가 먼저 예술혼을 담은 사람이어야 한다.

“나사 절로절로 살고싶소”

‘미술관에서 길을 묻다’ 전시 참가 미술관은 진도현대미술관(관장 박주생. 교동리), 나절로미술관(이상은. 상만옛 학교), 솔마루미술관(박용선) 등이다. “자연은 생성과 소멸 속에 반복되지만 작가가 만들어낸 작품들은 지구별이 멸망하지 않는 한 영원히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라고 분명하게 밝힌다. 오래된 화장과 두려움을 싯어내고 옷과 거추장스런 형식을 벗어내 가슴에 박힌 화살과 핏물을 당당히 드러내는 ‘에꼴드 남도’ 또는 아틀란티스 진도를 운항하고자 한다.

화살이 박힌 가슴을 드러내라!

남쪽 소나무 농사를 기억하라!

누구나 가슴에 상처를 갖고 산다. 석현 박은용과 프리다 칼로의 운명과 길은 분명 다르다. 상처를 제대로 드러내거나 적묵으로 새로운 지평을 열던가 몫은 그렇게 다르다.

진도군은 전국 최초 민속문화예술특구답게 진도군에 관광국(국장 박수길)과 관광과(조기주), 문화예술과(허승목)를 배치하였다. 물론 더 전문성있는 예향질잡이들이 요구된다. 그런 점에서 문제는 이 모든 것을 구상하고 조절하며 실현해 가는 ‘사람’이다.

미술관의 관람객에 대한 관계 설정과 개념의 변화도 제기된다. 무엇보다도 관람객에 대한 관계를 새롭게 하기 위해 역사박물관·미술관학이나 지역성에 대한 이해, 시민들과의 관계를 연구하고, 지역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 가능한 더 많은 지역 관람객들이 방문할 수 있도록 하는 창의적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실제로 해외 유수의 미술관은 마케팅 부서의 업무 자체를 SNS 활동과 관련한 것으로 전면 개편한지도 오래된다. 그것은 곧 관람객에 대한 소통 방식을 일방적이 아니라, 쌍방향으로 설정하고 동시에 담론을 통한 바이럴(viral)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미술관은 학교다. 작가의 물음과 고뇌, 시대의식 절망까지 담은 거울과 항아리를 배우고 묻는 학당이다. 물음에 답은 없다. 인생이 그러하듯 스스로 찾아 가야 할 길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현실은 ‘소문의 벽’에 갇히기 쉽고 기획예산은 나로도 우주선 발사처럼 1회용 성공만을 요구한다. 이제 진도출신 화가들에 대한 문호가 더 열려야 할 듯하다. 교류가 이어지지 않으면 문은 닫힌다.

어제밤 늦게까지 다산의 ‘애절양(哀絶陽)’을 읽었다. 노전(蘆田)은 어디인가. 제 양물을 낫으로 잘라버린 사내와 그 부인의 애절한 심정을 금봉(金峰)은 간결하게 눈물까지 후광으로 삼아 그려 강진군에 보냈다. 시가 없는 그림은 시창(詩窓)이 막힌 파초에 불과랄 뿐이다. 석가정(한승배 시 ‘아내에게’) 부부의 새벽농사와 달빛을 보고싶다. 벌레와의 전쟁. 배추돈의 꿈이 숭숭 뜷려나간 잎사귀들을 살펴보며 석가정은 시로 자시을 위로하였다. 풍속이 없는 시대는 없다. 그림이 섣부르게 풍속이 되면 이발소그림이 된다. 그림이 시를 담을 때 풍속의 시대는 새로운 주류가 된다. 동네미술관이 쉽고 선명한 이정표로 삼아진 진도예술문화지도를 보고 싶다. 옥주 천상분야지도. 특별한 예능으로 다져진 문화해설사와 스토리텔러들에 귀를 기울이자. 도팍선생의 강의를 경청하자. 진도의 역사를 알아야 진도의 바람이 어떻게 부는 지, 아리랑이 왜 미치도록 놀다나 가자 하는지 진정한 화첩기행을 펼칠 수 있다.

 

기증과 수장이라는 귀거래사형 미술관 운영은 오히려 물고기들을 상하게 한다. 은어떼처럼 찾아온 작품들이 귀머거리가 되어 지하 수장고로 유배당하는 현실은 수십년 물길이 다 막혀진 진도의 갯펄을 연상시킨다.

진도가 낳은 조선 후기 최고의 화가이자 남종화(南宗畵)의 대가인 소치 허련(小癡 許鍊·1809~1892)과 아들 미산 허형(米山 許瀅·1862~1938)의 삶과 예술을 그린 가무악극 ‘운림산방 구름으로 그린 숲’이 서울 국립국악원 예악당(2017)에서 선보였다. 국립부산국악원 연악당 무대에도 올랐다. 이 가무악극은 진도에 있는 국립남도국악원이 초연해 이 지역의 문화유산인 서화(書畵)와 소리, 대를 잇는 예술가의 삶과 갈등을 버무린 대작으로 호평을 받았다.

그림작품도 셰례를 주고 받는다. ‘시대와의 화해나 불화’는 자기정화가 아닌 에루살렘 성전을 빙자한 거래소의 달런트 금화에 불과한 수사에 불과하다. 블같은 기역성의 나사렛 예수는 부정한 관습의 광주리를 엎어버렸다. 한 시대를 사멸면서 누구나 자기만의 골고다 언덕, 자기만의 철십자가를 매야 한다.

이제 한층 익은 선악과와 지유를 맛본, 분명한 눈이 있는 많은 관람객들은 ‘보이는 만큼’ 그 이상을 갈망한다. 나는 과분하게도 많은 작품들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엣그림 읽기의 즐거움’에 나선 오주석처럼 진본 순레를 하며 침식을 잃고 무릎꿇기까지로 다가서지 못했지만 놀랍고 경이로운 감로수 세례로 다시 태어나는 축복을 마음껏 누렸다.

                                                                                 (군내면 솔마루미술관 소나무)

진도는 진본이 없는 섬이다. 이제 풍문에 전해지는 진도는 허상이다. 다시래기의 인류비전도 세익스피어 희극이 되었다. 가까이 보면 비극이다.

진짜 진도산은 미역부터 강아지까지 다 뭍으로 떠났다. 대전 찍고 진도다리를 건너 왔는지 ‘돌아온 백구’처럼 그림에게 귀소성을 기대하는가. 운림각도 선면산수화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도 전도는 예술은 돌고 돈다. 두부와 오이나물 생강 나물들로 버티는 산정의 일기를 쓰는 사람들. 일휴 김양수나 동외 정명돈은 각가의 언덕과 길이 높고 선연하다.

가을이 되면 ‘이미 피어난 것들은 외롭고’(일휴 시 중에서) 나는 반 귀머거리, 반 절름거리, 반 농아가 되어 버렸다. 이 달에는 나도 동행을 찾아야겠다. 때론 이명이 좋다. 화천대유 아전인수하는 뜬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절름발이가 이 시대 야바위꾼과 골고다를 오르는 가시면류관을 쓴 예지자가 혼동되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걷기에는 편할지도 모르겠다.(박종호 시인)

신도시 아파트 당첨권도 없이 부부성애를 탐한 사내들의 좆을 잘나내야 할 지경이다.

무임승차권리는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천안삼거리가 경로어른들에게 반갑지 않은 이유중 하나다.

우리들은 모두 늙은 동자석이다.

날마다 새똥의 세레를 받는다.

복지관의 어린 노인들이 감기지 않는 눈으로 졸고 있다.

가끔 그 앞에 진달래가 피어난다.

분명 헌화가를 들었다.

한 쪽에선 산다화가 소리도 없이 떨어진다.

그 지랄같은 젊은 날들이여

새들이 오욕과 전신마비 얼굴에 정성스레 분칠을 한다.

똥과 화장은 이 풍진 세상에 한 통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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