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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 청정문화 영토를 넓혀라!
제안/ 청정문화 영토를 넓혀라!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1.12.10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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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진도를 ‘예향’ 문화 수도로 부른다. 데자뷰 즉 누구라도 어떤 기억이 떠오르는 ‘오래된 미래’와 만나기 때문일 것이다. 진도의 민속문화는 그 지정학적 배경이 분명하지 않지만, 그 연원은 우리 민족의 기원과 닿는다. 진도에 오랫동안 전해오는 모든 민속문화는 그 자체가 이 땅, 사람들이 경전이다. 곧 소리의 경전이다.

알렉산드리아, 로마네스크, 그리고 대원제국 등은 지리학적 영토를 자랑했지만, 시대와 함께 소멸하고 말았다. 한민족은 그 문화가 천지인이라는 하늘을 숭배하는 문화 신류가 있었다. 어떤 인류학자들은 그 언류를 바이칼호나 파미르고원까지 1만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 문화를 주장한다. 이를 근거하는 경전으로 부도지(마고성. 박제상 저)와 환단고기, 천부경이 전해온다.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메소토피아의 점토판 법전이나 이집트 상형문자 등을 들 수 있다.

나르메르 (전갈왕 2세) 가 상 하 이집트를 통일하여 강력한 나이집트 문자하면 대부분 사람은 상형문자를 떠올리는데요. 그런데 상형문자뿐만 아니라 신관문자와 민중문자가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림문자는 부호화된 글씨로 바뀌게 되는데요.

이것은 수메르 문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메르 문자 역시 사람들은 흙판에 새겨진 쐐기 문자를 떠올립니다. 그런데 수메르 문자도 처음 시작은 쐐기 문자가 아닌 상형문자 (그림문자)였습니다.

이러한 착각은 두 나라의 문화가 다른 것으로 오해하게 만드는데 가장 오래된 이집트 문자는 아비도스 무덤에서 발견된 상형문자다. 만들어진 시기가 BC 3500년에서 BC 3300년으로 추정되는데. 이집트 신화에서는 서기의 신 토트가 만들어 인간에게 전해줬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이것을 신성문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의 문자는 환국시대에 신지가 만든 녹도문자, 그리고 가림토문자 등이 있어 조선시대 세종대왕 때 한글을 창제할 때 옛 문자로 사맛디 하여 지었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물론 여기에는 인도사캬족 등 여러 부족의 문자를 수용했다는 흔적이 남아있다.

진도에는 암석화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대부분 비석 글씨 들이다. 진도의 수많은 고인에도 문자는 새겨져 있지 않다. 청동기 시절까지 글자가 당시 진도 원주민들이 쓰이지 않았다는 간접증거로 볼 수 있다.

벽파진 이충무공 전첩비를 가면 한 해설사가 비문 내용을 다 외우면 설명해준다. 언젠가 강원도 고성에서 북한 금강산 입구까지 시인들의 시를 줄줄 읊조리는 아가씨들을 보면 감탄을 한 적이 있다. 한 구절에 꽂힌다. 명량해전 그 장대한 스타페클한 드라마가 한 눈에 파노라마처럼 장엄하게 흘러간다.

진도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양한 민속공연에 취한다. 그곳에서 진도사람들의 언어와 만난다. 검정 쌀을 심고 김을 채취하는 이모작 생을 사는 서민들의 천부경이다.

생명의 시계를 따라 종을 차던 권정생 시인의 ‘민들레 영토’와 영원한 옥주 진도군의 무료 변호를 맡은 동외리 출신 박연철 변호사는 민들레다. 하얀 민중의 옷을 즐겨 입는 법무법인 대표.

북놀이와 강강술래와 아리랑을 즐겨 듣는 서민의 벗.

진도는 이런 분들이 있어 대한민국의 문화 정신의 영토를 넓혀올 수 있었다. 제주도보다 사르디나보다 영혼의 아틀란티스. 이 바다 연안을 지키면 ‘문전 세재’ 찾아보니 문전옥답보다 기름진 옥토 무논 열세 마지기 천 배가 여기 있었네. 만호(萬戶)가 3백 년을 벌어먹을 들과 바다. 전국 최고 최초의 곱창 물김을 버릴 것인가. 전국 50%를 차지하는 건강장수 트랜드 톳과 미역을 외면할 것인가?

산과 바다와 민속문화가 원방각을 이루는 진도. 세속적인 가치보다 생명의 가치를 사랑하고 구현하는 구원의 땅. 해원의 정신이 후박나무로 자라는, 일이 곧 놀이가 되는 상생의 땅.

진도의 민속에는 24절기에 농사와 생활의 때를 알리는 지혜가 담겨있다. 동지와 입춘사이에는 소한, 대한이 들어있어 완성되는데 기젉는 해의 운행길이며 혈거시대에서 삼부인(三符印)은 달력이었다. 진도씻김굿이나 들노래는 우주력과 농사력을 담고 있다. 입춘은 겨울의 맞막이고 봄의 시작을 알린다. 춥지않은 소한(1월6일~7일)은 대한921일) 춥지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 조선후기 서유구는 임원경제지에서 같은 위도라도 산이 높으면 더 춥고, 저습지는 더 덥다며 이에 맞게 ‘풀달력’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자라는 것을 보며 자랄 것을 심고, 죽는 것을 보며 죽은 것을 수확한다” 때를 살피는 비결을 알린다. 지리다리(地理多利)라 했다.

진도는 4면의 청정바다를 되찾아 지켜야 한다. 현재에서 미래를 관통하는 자원, 율도국과 삼별초의 정신 보물 금고·우리들의 민속은 아마존과 바꾸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맥놀이를 치는 북과 꽝과리 소리, 신의 뜻을 알리는 인간의 신탁이 살아 흐르는 곳. 진도는 몽유도원이다.

지금 진도문화원(원장 박주언)은 김정호 전남 문화재위원(전 문화원장), 박정석 전 원장에 이어 각종 진도의 예전 전적 유를 찾아 발굴 해석 번역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저 용장산골 야생차 잎사귀에 쓰인 문화경전, 호국의 경전 지혜가 다향만리(茶香萬里)를 간다. 전의이씨 이덕리가 두정리에서 조선 최초로 동다기(東茶記)를 썼다. 차문화를 되살려야 한다. 춘설차의 의재허백련을 기리자.

시창청공(詩窓淸恭)이라 했다. 굿은 굳(GOOD)음과 상통한다. 모든 의례(1만 년)는 신을 맞이하는 일이었다. 당연히 가장 장수하는 이는 신관들이었다. 기왕이면 이승에서 개똥밭을 구를 그것이 아니라 유기액 비 땅을 일구고 배산임수 안산 조산은 바다, 무병장수 수맥 차단 카르페 디엠.

진도는 바다는 곧 용궁 신전이다. 생명의 근원이다. 예로부터 최소한 3대를 이어야만 예술을 할 자격이 주어진다 했다. 벼슬과 기업을 한 후손만이 사물과 천지간의 이치를 알게 된다고 했다. 진도문화원, 진도 예총, 민속놀이보존회, 덕병리, 소포리 등 마을민속 축제 주최자들은 문화 청정바다 지킴이들이다. 진도 문화관광(산림숲과 바다) 안내인들은 진도 민속 예술특구 문화재 학예사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진도아리랑이 정작 그 본원지인 진도에서는 제대로 예우를 받지 못한다. 보존회 지정 및 자원, 활성화를 위한 진도군민요로서 모든 민속문화 축제 행사에 마무리 노래로 불려야 한다. 시작은 진도들노래로 하여 흥을 돋우어야 한다. BTS는 세계 청년들의 새로운 문화제국 왕자로 자리잡았다. 진도의 바다는 그 거센 물결의 흐름이 그 청정함을 그치지 않고 수온을 유지하기 때문에 거대한 바다영토를 지배하고 있다.

우리들의 민속은 씻김의 길이 있을 뿐이다. 문화만리 DNA는 있어도 금리는 붙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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