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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우작가 / 눈 쌓인 초가집의 옛이야기
향우작가 / 눈 쌓인 초가집의 옛이야기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2.01.14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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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군내녹진출신.한국해양대학교 명예교수]

 

숲이 우거진 산 아래

하얀 눈에 쌓인 외딴 초가집이

반백년도 훌쩍 지난 옛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시절 이렇게 눈이 오는 계절이 오면

바깥 농사일이 끝나고,

장성한 아들 딸이 있는 집에서는

집 안에서 아들딸의 혼사 준비를 하고 있었지.

눈에 쌓인 저 외딴 집에서도

오는 섣달 큰 딸의 혼삿날을 잡아 놓고

혼사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군불을 지펴 온기가 피어나는 온돌방 아랫목에서는

큰 딸이 혼수품으로 가져갈 배겟잇 자수를 한땀 한땀 수 놓고 있고

어머니는 윗목에서 딸의 혼수이불 장만을 위해

배틀에서 무명배를 짜고 있으리라.

그리고 건넛방에서는 아버지가 짚 가마니를 짜며

뒤주 나락을 내다 팔아 딸의 혼수 준비를 할 궁리를 하고 있겠지

이런 날의 점심은 지난가을 아랫방 두대통에 가득 채워 둔

고구마를 찌고, 앞마당 구석에 묻어둔 김칫독에서

시원한 싱건지를 꺼내와 먹는 것이었다.

아침에 눈을 치우며 학교에 갔던 아이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아 집안이 조용한데

처마 밑에 주렁 주렁 메달린 고드름이

쩍 하고 떨어지는 소리만 가끔 씩 들리고

감나무 가지에서는 산 까치가 날아와

깍 깍 깍 우짖고 있었다.

[김영식교수 약력]

전,한국해양대학교 교수. 이공대학장. 대학원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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