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우거진 산 아래
하얀 눈에 쌓인 외딴 초가집이
반백년도 훌쩍 지난 옛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시절 이렇게 눈이 오는 계절이 오면
바깥 농사일이 끝나고,
장성한 아들 딸이 있는 집에서는
집 안에서 아들딸의 혼사 준비를 하고 있었지.
눈에 쌓인 저 외딴 집에서도
오는 섣달 큰 딸의 혼삿날을 잡아 놓고
혼사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군불을 지펴 온기가 피어나는 온돌방 아랫목에서는
큰 딸이 혼수품으로 가져갈 배겟잇 자수를 한땀 한땀 수 놓고 있고
어머니는 윗목에서 딸의 혼수이불 장만을 위해
배틀에서 무명배를 짜고 있으리라.
그리고 건넛방에서는 아버지가 짚 가마니를 짜며
뒤주 나락을 내다 팔아 딸의 혼수 준비를 할 궁리를 하고 있겠지
이런 날의 점심은 지난가을 아랫방 두대통에 가득 채워 둔
고구마를 찌고, 앞마당 구석에 묻어둔 김칫독에서
시원한 싱건지를 꺼내와 먹는 것이었다.
아침에 눈을 치우며 학교에 갔던 아이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아 집안이 조용한데
처마 밑에 주렁 주렁 메달린 고드름이
쩍 하고 떨어지는 소리만 가끔 씩 들리고
감나무 가지에서는 산 까치가 날아와
깍 깍 깍 우짖고 있었다.
[김영식교수 약력]
전,한국해양대학교 교수. 이공대학장. 대학원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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