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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寫意의 풍경을 화폭에 담다
마음속 寫意의 풍경을 화폭에 담다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19.07.05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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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선 중시, 산·바다·사찰 등 자연풍경에 심취

                                                                                              임농 하철경

오는 7월말 서울에서 대작 전시회 가져

옛 것을 익히고 제대로 알았을 때 새로운 세계의 문이 열리는 것

아늑하며 현란한 듯 조율을 마친 선과 붓자욱들. 어느 선사가 새벽길을 걸어간 발자국을 닮았다. 사뇌의 묵적. 그 겹겹한 속에서 오히려 그윽한 안락을 보시받는다. 회화는 단면성과의 치열한 투쟁이었다. 대상의 사실성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 공간성을 이루고 그 위에 시간을 얹어놓을 때 작가와 그림과 그림속으로 투사해 간 나의 눈과 의식이 일치하는 점. 나는 기꺼이 그 점의 하나로 스며든다. 간명해지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시와 경전은 짧다. 목마른 자는 샘을 떠나라 했다. 스승도 마침내 떠나야 할 감천(甘泉)일 뿐이다. 그 물에 중독되면 평생을 벗어나지 못한다. 아류는 예술이 아니다. 닮은 것은 있을 수가 없다. 비숫한 것은 진짜가 아니다는 것이다. 참을 구하는 자는 더디어도 그 길을 반드시 걷는다. 정민 교수가 어디선가 말한 것을 기억한다. 그는 마침내 조선의 차를 연구하다 동다기가 18세기 진도에 유배온 이덕리라는 것을 밝혀낸다. 초의도 다산도 아니었다. 동다기는 그렇게 재조명되고 있다. 진도읍 쌍정리 통정리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이덕리라는 이름도 숨겨진다. 단지 전의 이씨라는 익명으로. 현장에서 답을 찾는 학자들의 치열한 탐구력처럼 화가들도 문인들도 현장을 벗어나서는 아무 것도 제대로 작품을 창조할 수 없다. 이덕리를 읽고 넘지 않으면 소치도 의재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한 동안 그의 그림을 바라보면 나무의 어떤 결을 느끼게 된다. 소목장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나무 하나를 다듬고 깎는 수행의 과정이 투영된 맑은 결을 만나게 된다. 그는 부처를 직접 그리지 않는다. 단지 뭔가 머물고 있을 법한 산과 집을 그릴 뿐이다. 그렇다고 그가 부처를 닮아가는 지는 모르겠다. 수행의 길만 피어오른 하얀 연기 속에서 언뜻 내보이지만.

그는 피카소처럼, 스승인 남농처럼 시대의 아이콘은 아니었다. 논란의 중심에 서 있지도 않았다. 예술창작과 예술의 사회적 공여의 가치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당대의 소전(素荃)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임농은 두 번 씩이나 한국예총회장을 맡아 이 소임을 완수하고 있는 중이다.

“임농의 작품세계는 특별하다. 어디서나 언제나 나에게 다가오는 일정한 정감이 있어 반갑다. 나는 그것을 굳이 평화라고 지적하고 싶다. 평화스럽다는 것은 자연스럽다는 뜻이다. 조작이나 과장이나 가식이 없다는 뜻일진데 애써 현학적이거나 독선적인 그림하고는 거리가 멀다.

 

… 굳이 말하자면 자연과 인간의 일체감을 위한 조용한 몸부림이자 소리 없는 의지의 발산일 게다. 예부터 동양미술의 특징을 산수화에서 찾았고 진경산수는 곧 우리 남화의 뿌리라고도 주장해 왔다. 그러나 林農의 그림이 산과 나무와 물과 숲과 호수에서 그 소재를 얻었을지언정 그것은 모사가 아니라 화가 자신의 성품과 자연과의 동화이다. 일체감을 의식한 창조라고 굳이 말하고 싶다.

그렇다. 林農의 그림에는 당연히 林農의 체취가 짙게 풍긴다. 임농의 산수화에서는 남도사람의 섬세하고도 아기자기한 정감이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일찍이 사사했던 南農이나 稻村(도촌), 一初(일초), 田丁(전정)의 화풍을 이어받았으면서도 결코 그 스승들의 화풍을 답습하거나 계승하는게 아니라 독자적이고도 지속적인 각고 끝에 무려 20여회의 개인전을 가짐으로써 그 독보적인 미의 세계를 구축했다는 사실은 누구나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니다.

(靑)청색이 원래 (藍)남색에서 생겨난 물감이지만 그 푸르름이 더 짙고 아름답다는 격언처럼 화가 林農은 확고한 자기의 세계를 가지고 있어서 믿음직하다.

"삶의 방향과 자연의 밀도, 고요, 억제된 힘, 정확한 필묘, 극도의 세묘, 그것이 임농 하철경의 작품들이 호흡하고 감동을 준다"라고 평했던 프랑스의 미술 비평가 마틸드 클라레의 평문은 어쩌면 林農의 작품세계를 가장 정확하게 지적한 글이 아닌지 모르겠다. 차범석(극작가,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

‘기와집’ 화가라고 불리는 임농 하철경 화백(한국예총 회장). 그는 전통에 기반을 두면서도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내며 독창적 수묵산수의 세계를 선보이고 있는 한국화가다. 24세에 남농 허건선생을 사사(師事), 스승의 엄격한 지도속에 한국화에 발을 디뎠다. 이후 도촌 신영복, 전정 박항환, 그리고 대학원 시절 일초 이철주 선생 등과의 만남은 그의 44년 화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하철경 화백은 “산수화를 즐겨 그리는 이유는 산수화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가 보더라도 편안함을 갖는 예술성을 구현하기 때문이다. 저는 관념산수와 실경산수를 주로 그린다”라며 “그리고 제 그림에는 산·바다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들은 마음이 넓어지고 편안함을 가져다준다. 산사 역시 고즈넉한 분위기가 사람들에게 평화로움과 안락감을 줘 소재로 삼는다”고 말했다.

하철경 화백은 남종 산수의 전통을 근간으로 하면서 고졸(古拙)·단아하면서 선비적인 문기가 넘치는 한국수묵화의 정신을 잘 살려내고 있다. 초기 그의 수묵산수에는 스승인 남농의 흔적이 강렬하게 느껴졌지만, 중기 이후 그는 스승의 품을 떠나 독창적인 세계관이 구축되기 시작했다. 고루한 수묵작업에서 탈피, 전통의 근간에 현대성을 가미하기 위해 야외로 사생을 나서며 소재와 기법에서 스승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대흥사, 송광사 등 유명사찰의 기와라든지, 먹과 담채의 발묵을 극복한 수묵담채와 백묘법 혼용 등이 바로 그것이다.

임농의 관념산수가 마음속의 사의의 풍경을 담아낸다면, 실경산수는 사생을 통해 현장감을 살리고 현대성이 가미되어 있다. 또한 그는 필선을 중요시해서 필선으로 그림을 시작해서 필선으로 마무리한다. 그의 풍경에 나타나는 간결과 압축, 생략과 여백의 미는 이러한 필선 작업에 기반하고 있다.

한편, 하철경 화백은 광주 호남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교수로 지난해 8월 정년퇴임하고, 현재 초빙교수로 교단에서면서 후학양성에 힘쏟고 있다. 또한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으로서 활동하며 예술인들의 권익신장과 창작환경 조성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하철경 화백은 오는 7월말 서울 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에서 대작 전시회를 열 계획으로 전시후 200여점을 선정해 고향인 진도군에 기증한다는 계획이다.

때 바로 그때부터 중립이 아닌 것이다. 천을 둘러 눈을 감은 여신이 손에 든 저울은 균형을 맞출 수가 없다.

물론 세한도를 담보하면서까지 정치에 연연했던 소전과 달리 아직까지 정치의 길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영화인이었던 신영균은 예총회장직으로 비례대표로 국회의사당에 입성할 수 있었다. 이것은 예술과 전혀 무관한 한 개인의 경력에 불과하다.

임농의 작품을 읽으면서 석현 박은용의 물푸레나무와 자꾸 견주어보는 습성이 하나 생겼다. 분야가 다른데도 자구만 연상된다니. 박은용도 모든 작품에서 평화가 만연한다. 식로이라는 공간의 제한 속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덕성은 고도의 절제력에서 발현한다. 무위자연의 철학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 많은 붓자국 속에서도. 그는 대인관게의 뛰어난 대가이다. 성실과 진솔함이 가장 강한 힘으로 작용한다. 화려한 언어구사나 순발력을 발휘하는사교게의 스타는 더더욱 먼 이미지다. 그의 예술세계에서 보수와 진보라는 단순한 이분법은 적용되지 않는다. 민예총과 보다 진보적인 정부의 등장도 그를 압박하는 요인이 될 수는 없다.

세상에 중립은 없다라고 한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중립이라고 할

나는 나를 사랑해야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살아 있는 것이다. 내가 없는 세상은 있을 수가 없다. 모든 예술이 그렇더.

작가 약력

1953년 전남 진도에서 태어난 임농 하철경은 남농 허건, 도촌 신영복, 전정 박항환, 일초 이철주 선생에게서 화업을 닦은 뒤 목포대학교 미술학과와 세종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79년부터 2002년까지 목포, 광주, 서울, 파리 등지에서 22회의 개인전을 가졌고, [새천년 전라남도 미술대전 조명전](남도예술회관), [한국화 동질성의 회복전](광주시립미술관), [새 천년의 만남 그리고 희망], [현대한국화협회전](갤러리 상, 공평아트), [목포개항100주년기념전](목포문화회관), [오늘의 한국미술전](예술의전당 한가람), [한국전통산수화](국립현대미술관), [한국의 풍경](국립현대미술관], [한중화가교류전](서울 경인, 대만 예술교육회관), [파리목포작가교류전](파리 에스빠스블라망또), [독일 괴테연구소 초대출품](괴테박물관), [독일루카스화랑초대전], [한국현대미술전] (2000.오스트리아), [한국현대미술전](2001.조달청) 등의 전시에 출품하였다.

2004년 현재 호남대학교 교수이면서 한국미술인협회 이사장, 전남예총 회장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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