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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향토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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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19.07.13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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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실록』

효종임금(1650~1659)때 진도군 관련기록

 

박병훈 사)진도아리랑 보존회장

전 진도문화원장

 

 

효종 1년(1650).11. 25.

진도군수 이효성(李孝性)을 파직시키다

 

사헌부에서 아뢰기를

진도군수 이효성(李孝性)은 고 판서 이안눌의 가노(家奴)로서 면천(免賤)된 것도 명백하지 않으며 문관도 아니며 무관도 아닌 다만 하나의 무뢰배일 뿐입니다. 오직 재산이 많은 까닭으로 김자겸(?~1126)에게 바치고 그의 사랑을 받으니 여러 차례 관리로 추천되었었으며 결국 수령의 직을 제수하기 까지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질서가 문란해져 나라의 관리들이 분노합니다.

청컨대 사판(벼슬아치의 명부)에서 삭제케 하소서. 하니 왕이 파직을 명하였다.

(주: “사판”이 된 원인인지 이효성은 진도군수 명단에서 삭제되어 있다.)

 

효종 2년(1651).11. 19.

진도군수 박길협(朴吉協)이 하직인사를 잘못하다.

진도군수 박길협이 하직 인사를 올리자 임금이 불러보고 진도의 형세를 물었는데 길협의 대답이 얼버무리고 분명치 못 하였다. 왕이 승지에게 이르기를

“그의 사람됨을 보니 보통 지역 수령은 할 수 있지만 진도는 근래 토호(土豪)의 변란이 있었던 곳이니 이 자가 포악한 백성들을 진압하고 복종시키기는 어려울 듯하다. 해당 부처로 하여금 무신 중에 명성과 민완성이 있는 사람으로 바꾸어 임명하여 보내게 하라”고하였다. 당시 진도에는 토호 이천곤(李天坤) 등이 멋대로 창고를 열고 나라의 곡식을 훔쳐가고 벼슬아치들을 살해하고 군적(軍籍)을 지워버린 일이 있어 조정에서는 바야흐로 그 죄를 다스리고자 하였기 때문에 이런 전교가 있었던 것이다.

 

 

효종3년(1652).5.21.

영의정 김육이 진도 죄인 이천곤의 억울함을 와뢰였으나 따르지 않다.

영의정 김육이 진도의 죄인 이천곤이 환천(還賤.천민으로 돌아감)이 된 억울한 사정을 아뢰었으나 임금이 허락하지 않았다.

 

효종 3년(1652).5.24

영의정 김육이 이천곤의 억울함을 또 아뢰나 허락하지 않다.

진도 이천곤의 일을 삼가 또다시 아뢰옵니다. 이천곤에 대하여 신이 두 번 세 번 계속하여 임금님께 번거롭게 고한 죄는 면하기 어렵습니다 마는 신이 어찌 바다 밖의 사람에게 털 끗만큼 이라도 사사로운 뜻이 있어서 그리했겠습니가. 진도 이천곤의 일은 지극히 공평한 마음에서 울어나온 것입니다.

어찌 다른 뜻이 있어서 이겠습니까 하고 아뢰었으나 왕이 왈 천곤의 일은 결과가 잘못된 점이 있으므로 왕법(王法)으로 단죄하지 않을 수 가 없다 하고 면천(免賤)을 허락하지 않았다.

-편집자 주-

효종임금 원년, 당시 진도읍의 토호 이천곤 등이 멋대로 창고 문을 열고 나라곡식을 백성들에게 나눠주고 듣지 않는 관리들을 살해하며 군적(軍籍)을 지워버린 사건이 있어 조정에서 이천곤의 죄를 다스리고자 이와 같은 전교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진도에는 극심한 한재(旱災)가 들어 백성들이 굶어 죽는 처지에서 듣지 않는 관리들을 해치면서 국고를 열어 백성들을 구한 그의 의거에 김육 정승도 감복을 하였던 것 같다.

이천곤은 본시 천민으로 큰돈을 바치고 면천이 되어 무과에 응시하여 무관이 되었던 사람이라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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