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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매화 기품 그윽한 ‘진도 홍주’ 탄생 배경
  홍매화 기품 그윽한 ‘진도 홍주’ 탄생 배경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2.03.09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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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를 아는 예술문화인사들이 사랑한 술

전통술은 그 지역의 자연과 인물들의 성품을 담게 마련이다.

 

천년의 기다림 끝에 빚어내린 ‘진도홍주’. 진도홍주는 붉은색을 자랑하는 전통주로, 허균·허난설헌·허련 등으로 유명한 양천 허씨로부터 시작된 술이다.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고산자 김정호의 찬시는 말 그대로 홍일점이다.

진도홍주의 명가 대대로영농조합법인은 한국과 일본의 주류 전문가가 추진한 홍주의 첨단 주조기법 연구 용역을 통해 재래식 비법을 접목, 세계적 명주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진도홍주를  다양하게 상품화했다. 2010년 일본 수출을 시작해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서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상을 휩쓴데 이어 2015년 벨기에 몽드셀렉션에서 금상, 미국 샌프란시스코 국제주류 품평회에서 금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으로 품질과 맛을 입증했다. 벨기에 몽드셀렉션은 영국 런던의 국제주류품평회,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국제주류품평회와 함께 세계 3대 주류품평회로 손꼽힌다.

전통주에서 새빨간 색을 자랑하는 술. 이름 자체도 ‘붉은 술’이라는 ‘진도홍주’(珍島紅酒)다. 일단 진도홍주의 붉은색은 지초라는 나무의 뿌리에서 나온다. 맑게 내린 증류주에 붉은 지초 뿌리를 침출시켜 빚는 술이 진도홍주다. 그렇다면 왜 이 홍주는 진도에서 만들게 됐을까? 진도홍주 전설은 조선 성종 때 우의정까지 올라간 허종이라는 인물에서 시작한다. 성종은 연산군의 아버지로,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의 폐비를 결정한 인물이다. 성종은 윤씨를 폐비하기 위해 어전회의를 열었다. 당시 허종은 아침에 마신 ‘홍주’의 취기로 궁궐에 가던 중 낙마를 한다. 그로 인해 어전회의에 참석하지 못하지만, 화가 오히려 복이 됐다. 연산군이 즉위한 직후 벌인 갑자사화를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연산군은 윤씨 폐비에 엮인 신하들을 처형하고 그들의 가족과 제자들까지도 처벌했다. 유독 허종만 멸문지화를 피했다. 허종 집안에는 특별한 인물들이 많았다. 홍길동전의 허균, 조선 중기의 여류 문화가 허난설헌, 그리고 동의보감의 허준이다. 모두 양천 허씨 인물이다. 허종도 단순한 정치가가 아니었다. 바로 ‘의방유취’와 더불어 조선 3대 의서라고 불리는 ‘향약집성방’을 언해(諺解·한국어로 번역)한 인물이었다. 향약집성방은 우리나라 약재 사전의 효시라 불린다. 총 85권으로 된 이 책은 세종대왕의 명을 받아 만든 것으로, 중국 약재를 국산으로 대체하기 위해 한국의 토종 약재를 연구한 의서다. 전문가들은 향약집성방이 없었다면 동의보감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허종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했다면 허균이나 허준과 같은 인물들도 없었을 것이다. ‘홍주’라는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홍길동전과 동의보감을 이 세상에 있게 했다. 여담이지만, 동의보감에는 진도홍주의 원재료인 지초의 효능에 건위, 강장, 해독, 해열, 청혈, 황달에 효능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이후 허종의 후손인 허균이 역모죄로 몰리면서 허씨 집안은 진도로 낙향한다. 진도로 내려간 허씨 집안 중 조선 말기 소치 허련이라는 화가가 유독 눈에 띈다. 추사 김정희의 제자로, 동양화의 한 화법인 남종화를 조선에 정착시킨 인물이다. 추사 김정희는 “압록강 동쪽으로 소치 허련을 따를 만한 화가가 없다”고 할 정도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이 허련이란 인물이 화실을 운영했는데, 바로 진도의 명소 중 한 곳인 ‘운림산방’이다. 본디 선비들에게는 시주화(詩酒花)가 삼위일체다. 주향천리 먼 곳의 벗이 찾아오게 하는 진도홍주. 꿈속의 인연을 부르는 몽유신선주. 배우 배용준과 전도연이 출연한 영화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에서 두 사람은 운림산방의 연못에서 술잔을 놓고 뱃놀이한다. 두 사람의 뱃놀이 장면은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며 많은 관심을 끌었다. 연지 한 가운데 배롱나무꽃이 더욱 붉다. 진도로 내려간 허씨 집안은 진도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족적을 남긴다. 특히 홍주 또한 허씨 집안을 따라 진도로 내려가면서 ‘진도홍주’가 되어 진도의 술로 자연스레 자리를 잡는다.

 

진도는 천여년 동안 동아시아 전란의 중심에 있었다. 몽골 중국 일본 군사들과 사신들이 왕래하면서 홍주를 탐닉했다. 삼별초항쟁과 명량대첩을 이룬 민족자주의 정신이 깃든 진홍의 빛깔. 김애란(진도대대로홍주 대표)씨는 뛰어난 사업가이자 감수성 높은 시인이다. 해를 따라 세방낙조대에 가 보면 그의 시비가 반긴다.(박남인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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