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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리는 기차에 중립은 없다
 달리는 기차에 중립은 없다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2.04.05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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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늘 수평을 지향한다. 섬과 섬이 열리기도 하고 배를 통해 왕래가 늘어나지만 물길을 막으면 오히려 너울성 파도나 해일이 덮친다. 바다사람들은 그 지혜를 배운다. 배 안에서는 편을 가르지 말라고 했다.

진도의 사회는 그 수평의 공동체를 끊임없이 추구해 실행하는 샹그릴라 그들만의 낙원을 이루고자 했다. 노래는 그 매개체요 주문이요 신탁이다. 그런 진도앞 만호바다가 요동을 친다. 해남 어민들이 해상시위를 열고 ‘생존권 사수’라는 머리띠를 묶고 현실적인 힘을 과시한다. 중재를 외치는 전남도지사나 국회의원은 불행하게도 분명한 해법을 갖고 잊지 못하다.

'미국의 양심'으로 불리는 하워드 진(1922~2010)은 가난한 조선소 노동자였다. 그는 27세에 공부를 시작해 대학교수가 된 뒤 흑인 인권과 베트남전 반전운동의 상징이 됐다. 백인 지식인으로 차별받는 흑인의 인권을 위해 투옥과 해고를 감수했다.

무엇이 그를 달라지게 만들었을까. 조지아주의 흑인 여자대학인 스펠먼 대학 교수였던 그는 캠퍼스를 둘러싼 높은 석벽과 철조망의 용도에 의문을 품었다. 구조물이 외부 침입 방지용이 아니라 학생들을 못 나가게 하는 통제 장치라는 불편한 진실이 양심을 깨웠다.

하워드 진과 노엄 촘스키라는 실천적 지식인,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를 포함한 비판적 언론은 미국 주류의 일탈을 견제해 왔다. 하지만 그런 미국의 시스템도 극단주의의 도전에 힘을 잃어 가고 있다. 세계에서 소득 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가 돼버린 미국의 '화이트 푸어(가난한 백인)'는 미합중국의 기존 가치를 전복시킬 기세다.

한국의 기층권과 MZ시대는 민주주의라는 나무가 무엇을 먹고 자라는지 잊고 사는 듯하다. 그들은 요구한다.내가 누리는 모든 것에 대한 권리와 신장을, 더 높은 펠리스 타워를,

잠시 세계정세를 살펴보자.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서방과 대치 중인 푸틴은 적진의 균열로 한숨을 돌렸다. 시진핑의 사정도 복잡하다. 영국을 통한 미국의 유럽 컨트롤이 불가능하게 되면서 중국 봉쇄가 실제 목적인 오바마의 '아시아 회귀전략'(Pivot to Asia)이 흔들려 안보적으로는 유리하게 됐다.

개방주의와 세계화·자유무역을 통해 '하나로 연결된 세계'의 최대 수혜자인 한국엔 힘센 파트너들이 한꺼번에 몸살을 앓는 상황은 불길하다. 유럽에서 수출 침체를 겪게 될 중국이 한국으로부터 중간재 수입을 줄이는 순간 내수와 고용이 바닥을 친 한국 경제는 최악의 3중고를 겪게 될 것이다. 

한국에 비관적인 신호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양극화의 속도를 누구도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총선에서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온 것은 브레이크 없는 양극화에 분노한 민심이 기성 정치에 경고를 날렸기 때문이다. 성장이라는 대전제 아래 고용과 분배·복지를 확대하고 저출산을 해결할 의지와 실행력을 갖춘 위기관리 컨트롤타워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한국의 소득 격차는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심각하다. 그래서 경제학자와 관료들은 저소득 층의 높은 한계소비 성향에 주목해 왔다. 평소에 잘 먹고 입지 못하는 저소득층은 부자와 달리 돈이 생기면 쓴다. 아니 쓸 수밖에 없다.

지나간 박근혜 정부는 소비를 통해 경기를 활성화한다면서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려주는 정책을 한다고 요란하게 선전했다. 효과는 전혀 없었는데 그걸 따지는 사람조차 없었다. 그렇다면 나를 지켜주지 못하는 공동체의 가치를 거부하는 최악의 상황이 이 나라에서 벌어지지 말란 법도 없다. 바다는 오늘도 흐른다.

한국에는 폭주기관차가 달리고 있다. 아무리 돌아봐도 돈 많고 힘센 기득권층은 양보할 생각이 전혀 없다. 말로는 양극화와 저성장이 문제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내 배를 채우느라 남의 고통은 외면한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는 하워드 진의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의와 양심이 고장 나고 민주주의와 관용이 무너진 극단주의의 세계를 선포하는 폭주열차를 멈추게 할 것은 무엇인가.

중립이라는 말 속에는 자의식의 발현을 포기하는 국외자 입장을 숨기고 있다. 바다는 수시로 제 몸을 뒤집어야 정화를 이룬다고 한다. 김양식의 최적지로 알려진 만호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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