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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진도홍보관 설립 운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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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2.04.11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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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적 표시 명품 특산물 서화 관람

진도가 부상한다. 진도가 떠오른다. 진도의 문화예술의 크루즈가 바다를 누빈다. 오는 5월부터 제주↔진도간 정기 여객선이 운항된다. 전남 서남해안 해상지도가 새롭게 그려진다. 진도와 제주도는 여러 인연이 많다. 툭히 역사적으로 삼별초항쟁의 직접 연관성을 가진 지역으로 같은 아픔과 호국의 정신이 서려있다. 바다는 말할 필요도 없다. 예전부터 말목장을 비롯하여 유배자들의 거처가 옮기면서 그 뱃길에는 사연이 더 커졌다.

특히 추사 김정희와 소치 허련의 관계는 그 상징적이라 할 수 있다.

진도군이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주최.주관한 2017 대한민국 길 박람회에 참가해 ‘홍보관 운영 우수상’을 수상했다.

2017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에서 개최된 2017 길 박람회에서 진도군은 진도 신비의 바닷길을 주제로 이색적인 부스운영과 특색 있는 이벤트를 통한 홍보활동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군은 2018년 5월 16일부터 5월 19일까지 개최되는 제40회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를 집중적으로 홍보했으며, 진도 아리랑 부르기와 관광퀴즈 이벤트를 진행해 관광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이제 진도 제주간 여행선 페리호가 운항된다. 진도군이 문화사절단을 꾸려 제주에 머물려 진도민속예술 특산품을 적극 홍보해야 한다. 인연도 다져야 겠다.

불교 통해 ‘畵삼매’ 든 남종화의 대가

불교 禪家에 이어진 초묵법 소치 허련, 불화에 열중…

▲ 소치 허련의 ‘소치묵묘(小癡墨妙).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조선 후기 남종화를 대표했던 소치 허련(小癡許鍊1809~1893)은 모란을 잘 그려 ‘허모란’이라 불렸던 인물이다. 한때 헌종의 어전(御前)에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명화를 함께 감상하는 영광을 누렸던 그였지만 시은(施恩)의 은택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어전에서 물러난 후 여전히 객지를 떠돌며 생활의 어려움을 겪는다.

추사는 편지에서 허 소치는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림의 격조가 날로 나아져 공재(윤두서)의 습기도 다 떨어져 버리고, 점차 대치(大痴)의 문중으로 들어가는 듯합니다. 병든 나는 이에 힘입어 (나의)번뇌를 녹여 없애게 합니다. 그대와 화삼매를 참증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습니다.

소치가 추사 댁에 머문 것은 1838년 8월경이다. 4개월 만에 추사의 뜻대로 그림의 격조가 날로 높아졌을 뿐 아니라 대치가 이룩했던 격조에 다다랐다는 것인데 이는 소치의 노력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궁벽한 섬, 진도에서 태어나 어려운 환경에서도 그림에 대한 그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그의 재주를 먼저 알아본 숙부는 “내 조카는 반드시 그림으로 일가를 이룰 것이라”고 용기를 주면서 〈오륜행실도〉를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 하였다. 어렵게 책을 구한 그는 무더운 여름 동안 〈오륜행실도〉 4점을 모방했다고 하니 그의 열의는 이처럼 뜨거웠다.

그는 청장년기인 1835년경에 초의스님을 찾아갔다. 이 무렵 초의는 경향의 이름 있는 인사들과 널리 교유했으며 호남의 유생들 사이에서 ‘호남팔고(湖南八高)’로 칭송되었다. 더구나 다산의 하명(下命)으로 그린 〈다산도(茶山圖)〉, 〈백운동도(白雲洞圖)〉는 초의가 수행뿐 아니라 시문과 그림에 조예가 깊다는 사실을 확인시켰고 추사의 1839년 12월의 편지에는 초의가 그린 불화의 격조가 얼마나 높았는지를 나타낸다. 이 관음상권(觀音像卷)은 황산 김유근상서께서 소장하려하십니다. 황산 대감께서 그대가 그린 관음상의 하단에 찬탄하는 글을 손수 쓰고자 하시니 초의 그대는 선림예단(禪林藝圃)의 아름다운 얘깃거리입니다.

선가에 전해진 초묵법(焦墨法: 진한 먹을 사용하여 그리는 것)이 초의에게 전해졌고, 이를 소치가 이었다는 사실이 추사의 편지로 확인되었다. 초의가 그린 관음상을 당시의 세도가인 김조순의 아들 황산 김유근이 소장하려고 했던 명화(名畵)이며 황산이 그 불화에 발문까지 쓰려고 했을 만큼 그림에 대한 초의의 명성은 높았다. 그러기에 그림에 열망을 지녔던 소치가 초의 스님을 찾은 것은 필연이었다.

그의 〈몽연록(夢緣錄)〉에는 당시의 상황을 “초의선사는 (나를)따뜻하게 대접해 주었고 방을 빌려주며 거처하도록 해 주었다(草衣款曲仍借榻留寓)”라고 회상하였다. 이후 소치는 대흥사 한산 전에 머물며 초의에게 불화를 배우는 한편 녹우당의 해남윤씨의 가장본 공재화첩과 〈고씨화보(高氏畵譜)〉, 그리고 공재 윤두서(恭齋尹斗緖)의 〈가전보희〉, 〈윤씨가보〉를 빌려 열람하는 등, 그림에 열중한다. 그가 윤 씨의 가전 본을 빌릴 수 있다는 사실은 꿈같은 일이었기에 “수일간 침식을 잊을 정도로” 감동을 받는다.

그의 〈몽연록(夢緣錄)〉에는 스승 초의와의 인연을 “아주 어릴 적에 초의선사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멀리 돌아다닐 생각을 하였으며 지금까지 이처럼 홀로 담담하고 고요하게 살았겠는가(早年不若草衣 何以遠遊之想 乃至今日而若是若孤淡寂也)”라고 하였다. 그에게 초의는 서화의 안목과 추사를 맺어준 은인이었다.

그가 “(초의선사와)수년을 왕래하다 보니 기질과 취미가 서로 동일하여 노년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았다(往來數載 氣味相同 至老不開)” 고 한 사실에서 가난 속에서도 담적(淡寂)할 수 있었던 속내는 초의의 영향이 컸다는 것을 드러낸다.

목단구(木丹邱)보다 그리는 법이 새로워라(若木丹邱腕法新)

동쪽 울타리 몇 송이 국화, 담담하기 그 사람 같네(東籬數朶淡如人)

국화 그림을 보더라도 다만 국화만이 아니니(縱看畵菊殊非菊)

이는 곧 소치가 (국화의)진수를 그린 것이라(便是痴生自寫眞)

소치의 그림 솜씨는 피사체의 골수를 그리는 능력을 타고났다. 정학연의 소치화첩 발문에 “마음속에 한 폭의 산수를 채비하여 늘 밝은 정신을 품어 세속을 초월하는 풍취가 있은 다음에야 붓을 들어 삼매에 들어갈 수 있으니 이 경지는 소치 한 사람뿐이다(心窩裏準備一副邱壑 神明中常蘊 傲世絶俗之姿然後 落筆便入三昧 此世界小癡一人而已)”라고 극찬하였다. 남종화의 일격을 이룬 그의 그림은 그가 온축했던 예술의 이상 세계를 드러낸 것이다.

기교를 다하지 않고 남겨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고(留不盡之巧以還造化)녹봉을 다하지 않고 남겨 조정으로 돌아가게 하고(留不盡之祿以還朝廷)재물을 다하지 않고 남겨 백성에게 돌아가게 하고(留不盡之財以還百姓)내 복을 다하지 않고 남겨 자손에게 돌아가게 한다(留不盡之福以還子孫) 간결하면서도 큰 울림을 주는 글입니다. 다하지 않는 여유, 그리고 다른 곳으로 돌아가게 하는 미덕에서 볼 때 우주가 주는 자연의 섭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직 인간만이 작은 욕심마저 다하고도 모자라 아우성이고, 넘쳐도 멈출 줄 모른 채 스스로 화를 자초하게 됩니다. 그런 세상에는 아량이나 도량도 없고 배려도 없습니다. 당연히 도덕과 신뢰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믿음이 없어지며 사막처럼 황량해질 것입니다. 나라를 이끌어야 할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에 등장하는 고정 메뉴인 재산 증식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기업가들은 편법으로 재산을 상속하기 위해 기상천외한 법적 포장술을 개발하기도 합니다. 남기지 않고 알뜰하게 챙기려는 욕심, 누구와도 나누지 않으려는 욕심이 세상을 얼룩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 물질이나 욕심을 채우고 넘쳐야 직성이 풀리는 시대입니다. 2000여 년 전에 노자는 ‘화려한 색을 추구할수록 인간의 눈은 멀게 되고, 섬세한 소리를 추구할수록 인간의 귀는 먹게 되고, 맛있는 음식을 추구할수록 인간의 입은 상하게 된다(五色令人目盲 五音令人耳聾五味令人口爽)’라고 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궁궐은 화려하나 밭에는 잡초가 무성하여 곳간이 비었다. 그런데도 비단옷 두르고 날카로운 칼 차고 음식에 물릴 지경이 되어 재산은 쓰고도 남으니 이것이 도둑이 아니고 달리 무엇이랴(朝甚除 田甚蕪 倉甚虛 服文綵 帶利劍 厭飮食財貨有餘 是爲盜과)’라고 개탄했습니다. 남김으로써 두루두루 돌아가게 하는 것, 이것이 곧 자연과 인간의 흐름이 아닐까요. 한꺼번에 챙기고 탕진하고 싶어하는 욕망, 넘쳐도 모자란다고 아우성치는 욕심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에 시달립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말을 마음에 되새기며 남기는 여유와 함께 나누는 미덕을 잃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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