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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인 열전 / ‘살짜기 옵서예’의 뮤지컬 배우 겸 가수, 김하정의 삶
진도인 열전 / ‘살짜기 옵서예’의 뮤지컬 배우 겸 가수, 김하정의 삶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2.04.1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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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슬픈 길을 알고 왔어도 ...곱게 피다 지리라’

 

‘야생마’. ‘금산 아가씨’, ‘소라의 노래’, ‘살짜기 옵서예’의 가수 김하정씨는 1968년 이광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사랑’의 주제가를 부르며 데뷔했다.

MBC 드라마 주제가 ‘야생마’ 그리고 예그린악단의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 등에 출연하며 다재다능한 실력을 발휘했던 실력파 가수.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 그야말로 만능 엔터테이너였지만 이후 누구보다도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야 했던 가수 김하정.

이광수 원작소설, 영화주제가 ‘사랑’으로 데뷔

1. 사랑이란 슬픈 길을 알고 왔어도/젊음의 꽃밭에는 찬비만 내려/운명이라 달래보는 백의의 천사/행여나 오실까 아~ 못다한 사랑/그늘에서 곱게 피다 지리라.

춘원 이광수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사랑’의 주제가다. 유한철 작사, 황문평 작곡의 김하정 데뷔곡이다.

‘거룩한 사랑의 노래, 뭉클한 사랑의 테마’라는 캐치 플레이즈가 그렇듯 진실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강대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신영균, 김지미, 문희가 주연을 맡았다. 1968년 2월 11일 국도극장에서 개봉되었으니 이날이 가수 김하정의 데뷔일이기도 한 셈이다.

영화가 연일 매진사례를 이어가며 주제가를 부른 신인가수 김하정 또한 점차 주목받기 시작한다. 맑고 호감이 가는 이 새 목소리에 신곡 제의가 잇달았고 점차 스케줄이 늘어나면서 급기야 스케줄만을 따로 관리하는 매니저까지 둘 정도였다. 진도 출신의 ‘촌닭’에서 ‘가요계 신데렐라’로 부상하다

영화주제가 ‘사랑’으로 일약 신데렐라로 떠오른 김하정은 사시사철 동백꽃이 피어난다는 섬, 진도의 고군면 신리에서 부친 김대봉, 모친 박정납 사이에 3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본명 김지숙.

“진도에서 교장선생님으로 계시던 아버지께서 초등학교 5학년 때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그때부터 활달하던 성격이 내성적으로 바뀌면서 혼자 노래 부르며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지요.”

부친이 타계한 뒤 생활이 어려워지자 모친은 작게나마 농사일을 시작했고 그때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큰 언니 은순씨가 광주로 나가 직장생활을 하며 동생들을 뒷바라지했다. 하정 역시 언니의 권유로 광주 수피아여고에 들어간 뒤 졸업 후 언니가 차린 ‘화니미용실’에 미용사로 들어갔다. 언니의 권유로 방학 때 미용학원을  다니면서 미용사 자격증을 딴 것.

“낮에는 미장원에서 일하고 밤에는 음악학원에 다니며 기타를 배웠어요. 손님이 없을 땐 혼자 기타 치며 노래하기도 했고 나중에 손님이 많을 때도 손님들 요청으로 노래를 불러 박수를 받곤 했지요. 단골 중에서는 내 노래를 듣기 위해 미용실에 오는 사람들도 제법 많았었죠.”

점차 노래를 잘 한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주위의 권유로 광주문화방송이 주최한 ‘호남가요콩쿠르’에 출전한다. 이때 패티김의 노래 ‘내 사랑아’를 불러 1등 상을 차지하며 광주 MBC 전속가수로 활동을 시작한다. 1967년도의 일이다.

“조금 전 시골서 막 올라온 촌닭이 하나 있는데 노래를 패티김처럼 잘해요. 아, 내일요? 그러지요.” 손사장은 전화를 끊더니 됐다며 내일 다시 한번 오라고 했다.

다음날 김하정은 황문평 선생 앞에서 심성락 선생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내 사랑아’를 다시 불렀다. 노래를 다 듣고 난 뒤 황선생은 좋다며 연습을 해보자고 했다.  “그때 황문평 선생님은 곧 개봉할 영화 ‘사랑’의 주제가를 부를 가수를 찾고 있었어요. 본래는 패티김이 부를 예정이었는데 해외공연 관계로 녹음이 늦어져 급하게 대체할 가수를 찾고 있었던 거죠.”

“대형스크린에서 내 목소리의 노래가 나오는 순간, 몸이 얼어붙었어요. 그러면서 동시에 너무나 황홀했지요.

‘내 사랑아’는 당시 기존가요들과 다르게 상당한 성량과 가창력이 요구되는 노래였다. 이 노래는 작곡가 길옥윤의 곡으로 그가 일본에서 요시아준이란 이름으로 활동할 당시 잠시 귀국해 가진 공연에서 만난 트럼피터 이봉조·가수 현미 커플에게 선물로 건네준 노래다. 1962년, 길옥윤 첫 데뷔작이자 현미의 데뷔곡이기도 하다. 이후 패티김이 불러 크게 히트했다.(정리 박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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