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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해전 승리의 길 탐사기행(진도 녹진 - 벽파진 10km)
명량해전 승리의 길 탐사기행(진도 녹진 - 벽파진 10km)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2.04.29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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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도역사문화의 길

 

4월은 잔인하지만 이충무공의 탄신일이 있다. 왜군들에겐 천추의 한이 되는 날이다. 지난 3월 19일(토), 비가 내리고 추운 날씨다. 오전 8시 경 출발을 앞두고 귀한 손님이 찾아왔다. 전남도청에 근무하는 이돈삼 씨, 전라남도가 조성한 조선수군 재건로에 관여한 향토문화인이다.  배준태 제독을 통하여 우리 일행의 명량해전 승리의 길 탐사 일정을 알게되어 종료에 맞춰 탐사 경로와 일화 등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자 일부러 와 준 것, 덕분에 악천후에 부담이 되는 배낭을 승용차에 싣고 홀가분한 차림으로 걸을 수 있어 다행이다. 잠시 대화를 나눈 후 승용차로 진도대교 턱밑까지 이동, 비바람 속에 울돌목의 회오리 물결을 바라보며 주변경관을 폰에 담았다.  한 시대의 역사를 바꾼 거대한 승리를 바라보는 진도대교를 출발하여 벽파진 쪽으로 이어지는 진도 일주도로에 들어섰다. 몇 차례 울돌목을 자동차로 통과하였지만 좁은 해협의 거센 물결 일렁이는 해안길을 한 발씩 걸으며 살피는 발걸음이 뜻깊다. 가는 길목 녹진관광지에 세운 조선수군 재건로의 안내판 내용, '1597년 8월 29일부터 9월 15일까지 충무공은 벽파진에 머물며 수군의 전투력을 높이는데 골몰하였다. 결과는 용의주도한 조선수군의 완승, 일본 수군 수천 명의 시신이 녹진 앞바다에 떠올랐다. 진도군민은 이들 시신을 수습하여 왜덕산에 묻어주었다.' 전장에서도 인간의 기본 도리를 다한 민초들의 성심이 마음에 닿는다. 걷는 길에 '강강술래터'라 적힌 넓은 공터가 보인다. 전날 우수영 관광지에서도 강강술래의 내력을 살핀 터, 그 내용은 이렇다. '왜적을 막는데 남녀노소가 없었다. 왜적에 비해 군사 수가 적은 조선군은 왜적들이 볼 수 있는 인근 산자락에 부녀자들이 빙빙 돌며 군사처럼 보이도록 하였다. 따라서 강강술래는 지역민의 헌신과 지략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위기의 나라를 지키는 자 누구인가?

계속 이어지는 진도일주도로의 길이는 120km,  두 시간 넘게 그 길을 10km쯤 걸어 벽파항(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에 접어드는 언덕에 이르니 승용차로 먼저 도착한 이돈삼 씨가 진도군 문화관광해설사 이평기 씨와 함께 기다리고 있다.이들의 안내로 비탈길을 오르니 언덕 안쪽에 위용을 갖춘 충무공벽파진전첩비(1956년 제막)가 우뚝하다. 이평기 씨의 설명, '880여 자에 이르는 비문은 이은상 씨가 짓고 진도 출신 서예가 손재형 씨가 한글과 한자를 혼용하여 새긴 예술작품이다. 육중한 대리석의 원석은 전라북도 고창에서 해상으로 운반한 것이다.' 고 한다. 비문에서 살핀 노래가사 한 구절, '열두척 남은 배를 거두어 거느리고 벽파진 찾아들어 바닷목을 지키실제 그 심정 아는 이 없어 눈물 혼자 지우시다.' 어찌 고개 숙이지 않으리라.  새벽부터 출발할 때 비가 내리더니 마지막날에도 비바람 친다. 이곳에 설치된 조선수군 재건로 안내판에는 충무공과 조선수군이 이곳에 주둔한 며칠 동안 북풍이 강하게 불어 배를 제어하기 힘들었고 바람이 잠잠해진 후에는 추위가 엄습하였다고 기록하였다. 마지막 행로가 그때의 정황을 재현하는 듯.         진도 토박이 이평기 씨의 진도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은 후 벽파항에서 그와 작별, 12시 경 이돈삼 씨의 승용차에 올라 진도대교 쪽으로 향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살피니 넓은 들판이 눈에 띤다. 거대한 간척지, 섬이 많은 진도에서 쌀이 많이 생산된다는 것도 일깼다. 진도대교 건너 우수영의 식당에서 점심식사, 일행과 여러가지 대화를 나누고자 일부러 찾아온 이돈삼 씨와 명량해전 승리의 길 탐사 목적과 경과 등을 설명하며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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