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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원종남 향우 ‘국제와이즈멘 엄요섭상’ 수상
목사 원종남 향우 ‘국제와이즈멘 엄요섭상’ 수상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2.06.08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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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원종남 진도읍 동외리 향우
원종남 목사

국제 와이즈멘 서울지구 고려클럽 회원으로 39년간 봉직하며 와이즈멘 이념구현 및 봉사활동 헌신에 크게 기여하여온 목사 원종남(진도읍 동외리) 향우가 지난 4월23일 국제와이즈멘 한국지역에서 실시된 제19차 “엄요섭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명예로운 축하식을 가졌다. 엄요섭상은 국제와이즈멘의 노벨상으로 평가되면서 전세계 회원국에 알려지며, 한국의 1만여 회원 중 공적이 지대한 회원과 단체에 수여되어왔으며, 금년 수상자로 원종남 향우가 선정된 것이다. 원 목사는 1963년 혈혈단신 서울로 상경, 이후 학업에 목마른 청소년교육(야학)활동가로 정열을 불태웠다. 한국종합판매(주) 대표이사. 그는 초창기 한국전화번호부 책자 제작에 새로운 편집 형식을 도입한 개척자이기도 하다. 직업과 봉사활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좇으며 개발시대 한국현대사의 '숨은 일꾼'이었다. YMCA클럽 회장 맡아 형편이 어려워 못 배운 학생들에게 40여 년간의 야학 활동을 통해 등불이 된 그의 인생은 봉사의 연속이었다. 전두환 대통령 당시 청소년 일을 함께 해보자는 제안을 거절하기도 했다.

진도초등학교 졸업 후 가정형편상 진학을 못하고 진도의 한 인쇄소에서 일했다. 공부를 하고 싶어 당시 목포에 있던 조대부고 부속 호남중학교에 입학했지만 혼자 너무 고생하다 보니 몸이 좋지 않아 다시 진도로 내려갔다. 6개월 요양한 뒤 진도중에 입학했다. 남들보다 4년이 늦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조대부고(9회)에 진학했다. 교무실에서 등사작업(수작업으로 프린트용지 원고에 내용을 새겨 직접 프린트하는 작업)을 도와주면 장학금을 받고 다닐 수 있다고 해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당시는 주먹(완력)이 상당히 판치던 시대여서 그들로부터 시달림을 많이 받기도 했고, 4.19학생운동, 5.16쿠테타로 이어지는 어지러운 시대에 고교생으로서 대학총장에 반대하는 인쇄물을 직접 만들어 뿌렸다가 혼나기도 했다. 교내 노래자랑에서 우승을 하는 등 노래를 제법 한다고 국어선생님께서 추천해주셔서 대학은 조선대 음대에 진학했다. 대학시절 역시나 데모에 앞장서다가 고생하던 기억도 많다. 결국 대학 2학년을 마치고 서울로 상경하면서 중퇴하게 됐다.

1963년 상경 후 처음 장왕사라는 출판사에서 근무하다 2년 뒤 당시 체신부 산하 유일한 사업단체인 체성회라는 곳에 들어가 일했으며, 일제 때 적산가옥 등 우편 관련 적산사업을 총괄하는 곳이었다. 이후 같은 체신부 협력업체인 1970년 한국전화번호부공사에 입사했으며, 전국 전화번호부책자를 만들어 납품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20년을 근무하면서 이사까지 승진했다. 당시 전화번호부 책자 형식의 변화는 원향우의 아이디어가 크게 작용했으며 업종별 분류, 가나다순 편집 등 대부분 그의 아이디어로 제작되었다. 퇴사 후 84년 KT협력회사에 입사하여 KT홍보상품을 취급하여 특허를 가지고 있는 것 등을 비롯해 취급 품목이 20만 가지가 넘는다고 했다.

청소년교육 봉사 활동에 대하여 원종남 목사는 “1976년 직장근무를 하면서 청소년 사업을 함께 시작했다. YMCA클럽 회장을 맡고 있을 때인데 YMCA 산하 유치원 공간을 활용해 저녁에 배우지 못한 학생들을 가르치면 어떠하겠느냐는 제안이 와 시작한 것이 40여 년간 이어졌다. 모든 야학이 그렇듯이 집세 문제로 여러 차례 옮기는 어려움도 겪었으며, 교회로 시장통 상가로. 버스 안내양이 있던 시절에는 상진운수라는 곳에서 안내양들을 교육시켜 달라고 해서 상진푸른교실을 운영하기도 했었다. 안내양들이 참 유순하고 순박한데다 또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좋았다. 검정고시를 통해 어느 대학 입시에 차석으로 입학한 학생도 있었으며, 이에 자극 받은 운전기사들도 공부를 한다기에 이들의 교육을 담당하기도 했다. 당시 야학은 당국의 주시를 받던 때여서 형사들이 강의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도 많았다. 이는 자원봉사자로 일하던 운동권 선생들의 이른바 의식화 교육 우려 때문이었다. 형사들과 교사들의 중간에서 상당히 애를 먹기도 했다.”고 회고하며 “나는 긍정적인 삶을 사는 것을 원칙으로 청소년 교육을 해 왔다. 정치적인 문제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배출된 학생들이 1000여 명, 거쳐 간 선생들(자원봉사자)이 1000명 정도 된다. 그들이 성장해 지금은 각계각층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이 모든 과정을 다른 이의 도움 없이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 진행했다. 퇴직금을 1년 반 만에 모두 써버리는 일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원종남 목사는 지난 2005년도에 광주전남 출신 고교동창회를 중심으로 구성된 재경광주전남고교대학 연합동창회 3대회장(임기 2년)을 역임했다. 초대회장은 광주일고 출신 남상용 회장, 2대 회장은 광주고 출신 박순용 회장이 맡았다. 재경광주전남고교대학 연합동창회는 광주전남고교 200여 곳 가운데 20~30개 학교 출신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같은 고향 출신으로 비록 학교는 다르지만 인재들이 많은데 서로 정보도 교환하면서 돕고 살면 좋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원목사는 “중요한 것은 서로 협력을 하자는 것이다. 그동안 전라도가 너무 홀대를 받았다. 우리 고향 출신들이 서로 화합을 하고 더 나아가 동서화합과 국가균형발전을 이루도록 하자는 마음이다.”고 강조했다.

원 목사의 좌우명은 이타(利他)이다. 남에게 도움이 되는 생활과 사고를 갖는 것이다. 이것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은 참 어렵지만 이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해왔다 말하며 “나는 객지생활을 17살 때부터 했다. 그러면서 터득한 것인데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하는가를 타인은 금방 알아챈다. 자기가 먼저 남에게 주어야 주위 분들도 도와준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일 때 다른 사람이 다가온다.”고 덧붙였다.

[학 력]

*진도초등학교 졸업

*진도중학교 졸업

*조선대학교 부속고등학교 졸업

*조선대학교 문리과대학 음악학과 2년졸업

*william.carry.lnternational University 선교사 대학원 졸업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수료

*2022년2월11일 명예 사회복지학 박사학위 취득

[수 상]

*문화체육부 장관상 수상

*국무총리상 수상

*대통령상 수상

*대한민국 문화포장 수상

*서울 YMCA 100주년 기념 우수회원상 수상

*2012년 서울 YMCA 109년 기념식에서 40년 근속상 수상

[경 력]

*한국전화번호부공사 영업이사

*서울YMCA청소년학교 교장

*서울 북부청소년학교 교장

*재경광주전남고교연합동창회 회장(206개 학교, 300만 회원)

*조선대학교 부속고등학교 총동창회 회장

*고려대학교 교우회 상임이사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사무처장, 감사, 이사, 자문위원장, 11회 회장

*서울YMCA이사, 시민사회, 양천,송파YMCA 운영위원장

*서울특별시 망우청소년수련관 운영위원장

*국제 Lions협회 1지구 지대위원장, 고경클럽 회장

*국제Y's Men 서울지구 총재

*한국YMCA연맹 청년Y전국연맹 회장

*사단법인 한국시니어 연합 공동대표

*서울경인 공예협동조합 이사장

*한국공예 협동조합 연합회 회장직무대행

*교육복지 연구원 이사장

*음악, 작사 작곡가

*경영진단사, 노인종합 상담사

*한국잡지협회 이사,감사,기금관리위원회 위원장

*한국정기 간행물 협동조합 이사장

*한국종합판매(주) 대표이사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총회 명예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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